[city100] 알고 있지만 늘 듣고 싶은 말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언제 접신이 되시나요?"

약속을 잡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없던 오라클과 갑작스럽게 전화 연결이 되자 당황한 초모가 가장 먼저 물어본 말이다. 오라클은 11시까지 찾아오라고 했다. 피터님이 떠나기 전 꼭 오라클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던 초모의 집념으로 만든 약속이었다. 초모의 차를 타고 일찌감치 오라클에게 향했다. 우리 넷 모두 사주 경험은 있지만 신점을 본 적도 없었다. 대체 무슨 질문을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중간에 가게에 들러 카탁을 샀다. 카닥은 출생이나, 장례식, 결혼식 등의 다양한 의식 행사와 환영의 의미로 사용되는 흰색 천인데 점을 보는 데 카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좀 의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집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앉아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구석에 쪼로록 넷이 앉았다.

"초모, 한명씩 들어가는 거야? 그럼 초모가 매번 들어가서 번역을 해줘야하겠네."
"나도 전혀 몰라. 좀 물어볼게."

옆의 아저씨의 말을 빌리자면 모두 다 함께 들어가서 고민거리를 돌아가며 이야기한다고 했다.

"아니, 프라이버시는 없는거야?"
"그러게 사적인 질문은 할수도 없겠어."

딱히 남들 듣기에 민망한 질문을 할건 아니었지만 철저히 1:1로 이뤄지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한국의 신점 문화하고는 상당히 달랐다. 영적인 치유자이자 미래를 예언해주는 라다크의 오라클은 라모(여성), 라파(남성) 라고 불린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만날 라모를 목빠지게 기다렸다. 길어지는 시간을 활용하여 피터님이 춘자와 초모의 사주를 봐주기도 했다. 코리안 오라클이 사주를 보는 모습에 사람들이 시선이 쏠리기도 했다.

드디어 라모가 등장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염집 아줌마였다. 평범한 차림과 평범한 외모의 그녀와 함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던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가니 작은 방은 금세 꽉 찼다. 방 역시 특별할 것은 없었다. 라모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제단같은 게 있었는데 가장 위쪽은 린포체들의 사진이 그 아래에는 놋그릇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바쁘게 방을 몇번 들락날락하던 오라클은 추바(티베트 전통의상)로 갈아입고 나타나서 본격적인 의식을 행하기 시작했다. 차례로 놓인 놋그릇에는 물, 밀, 볶은 보리 등으로 채워졌다. 의식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한 오라클은 제단의 신들에게 절을 하며 만트라를 읊었다. 그리고 오라클은 늘어지지 않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한쪽으로 가누고 이윽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 와중에 작은 보따리를 풀어 더 많은 옷들을 겹쳐입고 붉은 복면을 쓴 것 처럼 붉은 천을 얼굴에 감았다. 마지막에 다양한 보살이 그려져있는 왕관 같은 걸 머리에 썼는데 이는 신탁의 상태에 있다는 표시라고 한다. 굉장히 생소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며 등줄기가 이따금씩 서늘해졌다. 접신이 끝난 뒤 한명씩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아픈 것에 관련된 것이었고 가족 문제도 가끔 있었다. 재미난 것은 분위기가 경건하기 보다는 굉장히 편안했다. 오라클은 대부분 티베트말에 조금의 라다크어를 섞어서 했기에 티베트말을 잘하는 아줌마가 부연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두 끼어들어 한마디씩 거들기에 바빠서 더 그러했다. 우리는 통역사 초모를 옆에 끼고 앞으로 나가 미리 준비한 카닥을 내고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쭉 이어가는 게 좋을까요?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게 좋을까요?"

부가적인 설명이 더 붙긴했지만 나의 질문의 요지는 이러했다. 라모는 밀 몇 알을 던졌다. 곡물이 떨어지는 위치에 따라 질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얏뽀둑, 굉장히 좋아, 잘될 거야. 너를 의심하지말고 자신감을 가져."

사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도 새로운 것도 어떤 얘기를 듣던지 간에 했을거다. 단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없어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었던 걸 꿰뚫린 거다. 잘하고 있고 잘할 거니까 의심하지마, 자신감을 가져. 알고 있지만 늘 듣고 싶은 말에 위로를 받아 눈물이 왈칵 났다.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지 말자. 자꾸 의심하는 나에게 되뇌였다. 모든 상담이 끝나고는 아픈 사람들의 치유하는 시간이 있었다. 칼을 들고 만트라를 외우며 숨을 투투 불어넣고, 긴 막대기를 아픈 부위에 대고 빨고 뱉는 행위가 이어졌다. 과연 저런 행위로 아픈 게 나아질까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게 되는 마음이 생긴다. 오라클의 능력이 얼마만큼 신묘하느냐를 넘어서 이들의 존재 자체가 치유이고 어떠한 일에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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