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버너 자매
뉴욕시가 활기 없는 마차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사람들이 음악 아카데미에서 소프라노 가수 크리스티나 닐슨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며,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벽에 걸린 허드슨 리버화파의 풍경화 속 노을빛을 따사로이 쪼이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쇼윈도가 하나밖에 없어 사람들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던 조그마한 가게 하나가 스타이브센트 광장 근처 여성 고객들에게 꽤 알려져 사랑을 받았다.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은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빳빳하고 생긋한 느낌이 좋아 빌려온 회색 표지의 책, 버너 자매의 첫 문단은 내 마음을 그리운 곳으로 이끌고 갔다. 크리스티나 닐슨, 허드슨 리버화파, 스타이브센트 광장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것을 모른다는 이유로 겪어보지 못했으나 어딘가에 존재했을 세상이 내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있었다.
이야기의 탄탄한 흐름과 짜임새가 좋은 작가가 되는 자질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공식은 글을 쓰려는 이에게는 기본 전제가 되겠지만, 그것만큼이나 외적인 요소도 중요해진 것이 요즘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그런 요즘의 글에 젖어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정공법을 택한 작가의 묵직한 한 방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책에는 버너 자매, 징구, 로마열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 모두 각자의 색으로, 각자의 힘으로 생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