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멕시코 (2) 코요아칸의 프리다 칼로

in #tripsteem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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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멕시코 (2) 코요아칸의 프리다 칼로 박물관


지극히 개인적이며 현실적인 그림들

Pinto autorretratos porque estoy mucho tiempo sola.
Me pinto a mí misma porque soy a quien mejor conozco.

나는 자주 혼자이기에 자상화를 그린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나 자신을 그린다.

멕시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 가장 좋았던 곳을 고르라면 주저않고 코요아칸(Coyoacán)의 프리다 칼로 박물관(Museo Frida Kahlo)을 뽑는다. '파란 집(Casa Azul)'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박물관은 별 기대없이 간 내가 프리다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나오는 길에 홀린 듯이 기념품으로 5만원을 쓰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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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o Frida Kahlo by Yusuke Kawasaki under CC BY 2.0 license.

프리다 칼로 박물관은 조용한 코요아칸에서 온종일 붐비는 곳으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온라인으로 선예매를 한 뒤 시간대에 맞춰 줄을 서야 한다.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소액을 더 지불하고 '사진 촬영을 허가받았다' 라는 의미의 스티커를 몸에 붙여야 하는데, 꼭 받을 것을 추천한다. 박물관에서는 프리다의 그림들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은 프리다 칼로의 생가이다. 프리다의 아버지가 짓고 프리다가 태어났으며, 열차사고 후 누워있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곳,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생활을 하고, 레온 트로츠키를 은신시키기도 한 곳,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 곳. 프리다가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난 지 사 년 후 디에고는 이 집을 정부에 기증했고, 곧 프리다의 생과 예술을 담은 박물관으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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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 Kahlo study by Biggs under CC BY 2.0 license.

그만큼 집이라는 느낌을 세심하게 살린 장소이다. 복도를 따라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침실, 부엌, 식당, 작업실 등을 재현해 놓았다. (쾌적한 감상을 위해 전시실마다 인원수를 제한해주어 좋았다.) 또 멕시코 냄새가 물씬 나는 프리다와 디에고의 수집품들, 책장에 꽂힌 책, 이젤과 물감, 휠체어까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배치되어 있어 마치 프리다의 집에 초대를 받아 둘러보는 듯하다. 꽤나 큰 집인만큼 계단을 오르내리며 여러 손님방의 모습까지 감상하다보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와보면 프리다를 위한 재단(ofrenda), 잘 가꿔진 정원, 없는 게 없는 기념품샵이 보이고 그 모든 것을 새파란 담벽이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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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o Frida Kahlo by Enrique Vázquez under CC BY 2.0 license.
부상 악화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할 즈음에 썼다는 일기.


Pies para qué los quiero si tengo alas pa' volar.

나에겐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발이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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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의 작품에 대한 평을 요약하면 '고통의 승화'가 아닐까 싶다.

프리다는 자신의 인생의 큰 사고는 두 번, 열여덟 살의 전차 사고와 디에고와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두 사고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사랑의 아픔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동시에 예술적 영감이 되었으며 잔인한 현실을 그림에 비춰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박물관에서는 프리다의 슬픔 뿐만 아니라 열정과 상상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었다. 사고로 척추가 부러진 프리다, 유산을 한 프리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프리다만 기억하고 있던 나는 공산주의에 심취해 사회운동에 참여한 프리다, 피카소와 미로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프리다, 카메라를 보며 미소짓는 프리다, 자기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고독을 탐구하던 프리다도 알게 되어 반가웠고, 감동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주목을 받은 배경에는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열린 여성 예술가 전시회가 있었다. 여성의 몸을 에로틱한 대상이 아니라 고뇌하며 고통을 느끼고 그를 극복하는 주체로서 표현했다는 점은 70년 후인 현재를 사는 나에게도 새롭게 다가온다. 또한 임신과 출산을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나타낸 그림, 두 여성 혹은 자신의 두 자아가 손을 잡거나 위로하는 그림, 머리를 자르고 앉아 결연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그림들은 당시 사회가 다 담지 못했을 프리다의 생각을 얘기해주는 듯하며, 당시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프리다의 인생을 산 여성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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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é si mis pinturas son o no surrealistas,
pero de lo que sí estoy segura es que son la expresión más franca de mi ser.

나의 그림이 초현실주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내 존재의 가장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박물관을 다녀온지 며칠 후 영화 <프리다(2002)>를 찾아보았다. 프리다 역을 맡은 셀마 헤이엑이 실제와 꽤 닮게 나와서 놀랐다. 디에고도 참 닮았다.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제작되어 살짝 아쉽지만 실제 이야기와 감정선을 따라가면서도 초현실적인 연출로 프리다의 예술 세계를 그려내려고 한 점이 인상깊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드린다.

나무틀과 종이는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표지를 보고 살 수 밖에 없었던 노트.

파란집을 닮은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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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러운 듯 아련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여행지 정보
● Museo Frida Kahlo, Londres, Del Carmen, 멕시코시티 연방 정부 멕시코



내가 본 멕시코 (2) 코요아칸의 프리다 칼로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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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 올리셨네요! ^^

잘 읽었습니다! 영화 개봉했던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기회되면 보고 싶네요 ^^

출국 준비하느라 오늘에야 올렸네요. 앞으로 중미 이야기도 쓸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중미 남미는 가본적이 없어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참 멋진 여행하고 계시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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