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 여행지에서 생긴 일]

sklara (66)in #tripsteem • 6 years ago (edited)

지난 달 보르게세 미술관 [Galleria Borghese in Rome, Italy]이라는 포스트를 통해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보르게세 미술관과 그곳에서 관람한 조각가 쟌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 몇 점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곳은 사전예약이 필수인데 간혹 운이 좋으면 예약 없이도 표를 구입할 수가 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방문했던 시기는 현지인들의 부활절 휴가기간과 겹쳐서 사전예약도 일찍 매진된 상태였는데요.

저는 운 좋게도 표를 구해서 입장을 하게 되었고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지난 여행기에서 말씀 드렸죠 ^^

그때 비하인드 스토리를 궁금해 하신 분이 계셨는데 이 기회에 그 에피소드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이미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곳이기도 하고, 또 방향감각이 둔한 탓에 복잡한 대도시 보다는 적당히 길을 잃어도 되는 소도시 위주의 여행을 즐기던 나에게 로마는 그다지 마음 설레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토스카나 였는데 피렌체로 들어가는 항공권이 로마나 밀라노로 들어가는 항공권보다 2-30만원 더 비쌌던 것 같다.
상업적인 느낌이 강한 밀라노보다는 그래도 예술품들이 가득한 로마가 나을 것 같아서 로마 인/아웃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동행했던 지인들은 유럽여행이 처음이라 자유여행을 꺼리다가 모든 동선을 나와 함께한다는 조건으로 같이 떠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시골 마을들을 여행할 것이라고 얘기가 된 상태였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기로 했지만 ..

그래도 유럽여행이 처음이면 유명한 도시 한 두 군데는 가야 할 텐데 너무 내 취향대로만 밀고 나가기도 미안해서.. 그렇게 로마엘 다시 가게 되었다

당연히 로마 여행 준비는 미흡했고 보르게세 미술관에 대해서는 출국 직전에 알게 되었던 것 같다. 2012년에 갔는데 벌써 기억이 희미하다;
출국 직전 인터넷으로 그리고 현지에 도착해서도 전화로 표를 예매하려고 해보았으나 당연히 불가능했고 나도 거의 포기한 상태로 원래 목적지인 토스카나로 향했다

https://pixabay.com/

토스카나 지방 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다시 돌아왔을 때 호텔 직원으로부터 한가지 정보를 듣게 된다

혹시 누군가 취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무작정 가보라는 것이었다; 너무 막연한 얘기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로마의 필수 코스 관광을 끝내고 귀국 당일 ..우리 비행기는 늦은 오후 출발이라 오전 시간이 비어있었다. 동행들은 입장권이 없으니 굳이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며 늦은 아침을 먹고 스페인 광장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다.

전날 다녀온 곳이고 숙소에서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으므로 혹시라도 국제미아가 될 염려는 거의 없었기에 나는 그러면 미술관으로 일단 가서 표가 없으면 스페인광장에서 합류하는 것이고 있으면 관람하고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미술관 지하의 매표소엔 예매권을 입장권으로 교환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나도 약간 긴장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두 명의 매표소 직원 중 한 명이 앞에 있는 남자에게 큰소리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요약하면

표를 예매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왔느냐..

인데 듣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계속해서 면박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긴장해 있는 상태인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무서워서 물어보기나 하겠나.. 이대로 그냥 돌아갈까

고민했으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남아있었다
그리고 제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소리지른 매표원 앞으로 가게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내가 물어볼 말을 속으로 계속 연습했다

우리말도 논리적으로 잘 못하는데 긴장하면 더더욱 버벅 거리기에....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문장을 다듬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는데..
이런~ 하늘도 무심하시지 ㅠㅠ
그 사람이 날 보고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가가 말을 시작했다

예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는데 혹시나 해서 와봤다

문장 하나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짜증 섞인 큰 소리의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진 않은데..;;

이런 훌륭한 예술품들이 있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왜 아침부터 이 사람은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는 건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나도 약간 짜증이 나려고 했다.

다시 말할 기회를 잡고 내가 연습했던 문장을 빠르게 뱉어냈다. 준비한 말을 끝내기 전에 혹시라도 그 사람이 다시 끼어들어 화를 낼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잘 안다. 하지만 가끔 당일 취소한 표가 있다고 들었기에 와본 거다. 나는 오후에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등등 간절하게 몇 문장을 더 얘기했던 것 같다. 사실 겉으론 의연한 척 했지만 속으론 너무 긴장해서 내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말을 끝내고 보니 다른 사람을 응대하고 있어야 할 옆 자리의 직원도 나를 보고 있었나 보다 ;; 할말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님 여전히 화가 난 상태인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내 앞의 매표원 대신 옆에 있던 매표원이 친절하게 답해준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오늘 아침엔 취소한 표가 없다

나도 최대한 예의를 지켜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한 다음 돌아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으니 후회 없이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출구를 향해 서 너 걸음 걸었을까..
어떤 사람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그 사람의 손엔 예매권 두 장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나한테 혹시 표를 원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OMG
나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 나다니!

당연하지!! 너무 고마워!!!

상황을 보아하니 동행과 오기로 했는데 한 명이 못 오게 된 것 같았다! 내 바로 뒤에 줄 서 있었는지 곧장 카운터로 가서 입장권으로 바꿔와 한 장을 나에게 건네준다,
그때 그 직원 표정이 어땠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약간 머쓱한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입장권이기에 크게 신경도 안 쓴 것 같다
표를 받아 들고 그 사람에게 20유로를 주고 (그 당시 표가 12~3유로 했던 듯..) 고맙다고 다시 인사한 다음 돌아섰다

지금 생각해보니 입장할 때까지 좀 더 얘기라도 나누든가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당시엔 표를 얻은 기쁨과 직전에 겪은 사건 때문에 아무 경황이 없었다

이 글을 쓰며 수많은 if 가 떠오른다

만약 내가 그냥 포기하고 갔더라면...
만약 그 사람이 이미 표를 교환하고 나간 다음 내가 들어 갔다면…
만약 그 표가 아침 첫 타임 입장권이 아니었다면…
...
나에게 일어난 이 작은 기적 같은 우연 덕분에
그렇게 베르니니를 만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