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구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순례길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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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 때쯤 첫 마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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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첫 마을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비가 와서 밖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거의 젖어 있어서 사람들이 전부 식당 안에 들어와서 아침을 먹는다.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할 사람까지 모두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식당이 꽤 큰 식당인데도 매우 복잡하다.
복잡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는데 보니 또 새로운 단체팀이 보인다.
이번에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데, 어째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순례자들이 걷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는지, 이제 갓 시작했는지는 금방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모두 복장도 컨디션도 아주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뭔가 설레임이 가득하고, 뭐든 의욕적이다. 그리고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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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침에 너무 늦게 출발했는지 전 마을에서 출발했을 동지들이 벌써 우리를 따라잡아서 여기서 거의 다 만났다.
어제 처음 만난 파블로도 만났다. 우리가 길에서 찍은 사진을 파블로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보내주었는데, 그걸 잘 받았다며 “반가워, 친구.”라고 인사를 한다.
뭐, 우리가 파블로보다 엄청 나이는 많겠지만 이들은 나이 불문하고 친구라고 하니까, 우리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브라질팀인 로지 아주머니와 엘리오 아저씨도 커다란 우비로 배낭까지 덮고 오더니 우리와 같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노인네들의 컨디션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벳토 아저씨는 또 길을 잃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보니 바로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혼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식당에서 브라질팀 보다 먼저 식사가 끝나서 길을 일찍 나섰는데, 우리를 본 벳토 아저씨는 자기가 또 길을 잃었나 보다고 한다.
우리가 길을 잃으신게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 곧 오니까 여기서 기다렸다가 만나서 오라고 하니, 알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벳토 아저씨는 도대체 왜 자꾸 길을 잃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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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에서 온 공석찬과 권대열 사촌형제도 만났다.
사실 이들은 중간에 큰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 관광을 갔다왔다.
그러니까 하루를 본진과 떨어져서 하루 전 마을을 걸어야 하는데, 아는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걸으려고 하루 50킬로를 걸어서 본진을 따라잡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본진에서 떨어져 봐서 안다. 왠지 걷는 길이 외롭고 심심하다.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마드리드 관광하다가 발에 물집이 잡혔어요.”라며 며칠 간의 일탈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한다.
젊고 튼튼한 데다가 매우 열심히 걷는 친구들이라서 며칠 지나면 우리를 앞질러 가서 다시 못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보면 젊은 사람보다 나이든 사람이 더 많다.
특히나 어른들과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그래서 좀 심심하게 다닌다.
공석찬 형제도 항상 둘이서만 걷고, 둘이서만 맥주 마시고, 둘이서만 밥 먹고 그런다.
우리가 자꾸 말을 걸어도 그들은 어색한지 길게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도 그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어른에 속하는 것 같다.

외국 젊은 친구들은 저녁에 바의 바깥 테이블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술 마시며 늦게까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논다.
한국 친구들이 이럴 때 그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장벽 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확히 그들의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며칠 동안 지켜본 상황으로 봐서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여행에 있어서 더 많은 노하우를 쌓아 더 잘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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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티아고 길의 풍경은 그간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모두 색색의 우비를 입고, 색색의 가방 커버를 하고 걸으니 알록달록한 색이 줄줄이 걷고 있어서 보기에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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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후에 아직 걷히지 않은 하늘의 구름도 우리를 덮칠 듯이 바로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
마치 구름 속으로 계속해서 걸어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지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주변 풍경도 비온 후가 색이 좀더 짙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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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걷는 내내 로지아줌마와 엘리오아저씨가 우리 앞에 걷고 있었다.
비도 오고 이제 산으로 올라가는 거라 길도 계속 오르막인데 잘 걸으신다.
벳토아저씨는 좀전에 우리가 일행을 찾아드렸는데, 또 혼자 떨어져서 뒤에 오시는가 보다. 그러니 자꾸 길을 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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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밥 먹으면서 봤던 고등학생팀이 앞에 간다.
오전에 전라도 광주에서 오신 분들이 어제 저녁 저 친구들이 떠들어서 밤에 한잠을 못잤다고 했는데, 이들의 정체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만약 어제 아저씨들의 권유를 듣고 우리도 그 아저씨들과 같은 숙소에서 묵었으면 우린 또 저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온갖 궁리를 해야 했을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도 다시 아는 영어 다 동원해 그들의 정체를 물었다.
이들은 이탈리에서 온 21살의 사제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25명이 한 팀인데, 어제 스페인에 도착해 오늘부터 걷기 시작했단다.
그러니 어제 처음 산티아고 길에 도착해 숙소에서 얼마나 떠들었겠는가, 뭔가 신나고 설레였을 것이다.
목적지는 산티아고이고 오늘은 산 아래서 묵는다고 했다.
사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라고 하더니 얼굴이 모두 모범적으로 생겼다.
그리고 이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어권이 아닌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하면 서로 잘 알아듣는다.
말을 할 때도 쉬운 단어로 말하고, 대답도 주로 단답형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중에 한국 아저씨들 만나서 우리가 알아낸 것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래서 아저씨들도 이들을 피해 숙소를 잡았다.
정말이지 숙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모든 순례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민폐이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구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순례길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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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어른들과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그래서 좀 심심하게 다닌다.

왜 그런걸까요?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도 반갑고,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텐데...ㅎㅎ 뭐 다 그런건 아니겠죠?
25명이 떠들어 대는데 잠을 잘 수가 있나요!!
잠도 못자고 광주에서 오신분들 고생하셨겠어요~

사람마다 다른 건 분명한 거 같아요.
얼마전에 산티아고에서 같이 걸었던 친구를 만났는데, 최근에 한국 젊은이들이 숙소에서 늦게까지 삼겹살 구워 먹으며 소란을 피워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더라구요.ㅜㅜ

저 하늘만 쏙 가져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러게요.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파란하늘에 하얀 구름이네요.^^

사진을 보니 정말 구름 속으로 걷는 듯 하네요~
정말 멋있어요~
걷는데 자신이 없어 산티아고는 꿈도 못꾸는데 읽으면서 대리만족하네요~
고맙습니다~^^

저 언덕만 넘으면 구름 속으로 쏘옥~ㅋㅋ
산티아고를 걷는데 필요한 건 잘 걷는 다리가 아니더라구요.

지난 번 브라질에서 오전 오후 합해서 5킬로 정도 걸으니 발바닥, 발가락이 아파서 더 이상 걷기 힘들던데요~
왜 그런지 걷기를 많이 못해서 산티아고는 정말 꿈도 안꾸고 있네요~
정말 가고 싶긴 한데 말이죠~^^

선량한 사람이 훨씬 많지만
가끔은 영어권 사용자랑 말하다가 열받죠...-ㅅ-ㅋㅋㅋㅋ
일부러 빨리 말하면서
'이런 쉬운 영어도 못알아듣냐'
는 티를 노골적으로 팍팍 내는 친구들도 있구요 ㅎㅎ

저도 비영어권 사람들이랑 영어로 말하는게
마음도 혀도-ㅅ- 편하네요 ㅋㅋ

저희도 산티아고 걸으면서 제일 말이 안 통하던 사람들이 미국 사람이었어요.ㅋㅋ

끝이 없는 길을 걷는데 무시무시한 먹구름이 앞을 가로 막는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거기까지 걸어가면 구름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ㅋㅋ

타고난 건강과 친화력으로 순례를 잘 하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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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은 아닌데, 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이 단련이 되었습니다.^^

여행하면서 누굴 만나고 좋은 경치도 접하는 느릿느릿 하지만
만족도 높은 여행이 바로 트레킹인것 같네요.^^

한국의 올레길이나 둘레길도 참 좋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하는 곳도 좋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더 도전해 보고 싶답니다.^^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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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여행하면서 젤로 많이 들은얘기가 '헬로 마이프랜' 인데~ ㅋ
외쿡애들은 서로서로 처음봐도 스스럼없이 얘기 잘 하더라구요
어릴때부터 옆집 가족 그 옆집 가족 잘 지내서 그런지
친구 없는데 친구집가서 친구 아버지랑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우리는 어른들이 아직도 어렵기만 해서 그런거 같아요
어른들을 대할때 예의 외에 강요하는것들이 마음속에 많아서 그른가~

맞아요, 우선 나이 불문하고 모두 친구라고 하더라구요. 외국 사람들은...
장단점이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해요.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문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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