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립스팀] 날씨가 열 일 했던 연말여행 3. Historic Jamestowne, VA, USA

Historic Jamestowne은 1607년 영국인(English)들이 현재의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딛은 장소이다. 참고로 Jamestown Settlement라고 검색하면 대규모의 박물관이 먼저 검색되는데, 거기는 입장료가 여기보다 비싸서 ^^;; 조금 더 싼 야외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12월 말 치고는 무척 포근했던 날씨 덕을 봤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안내 입간판
연방정부 셧다운의 여파인지 주차장 옆 비지터센터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입장료를 받는 사람은 길 입구에 나와 있었다. 천막 밑에서... 그들도 따뜻한 날씨에 감사했으리라.
유적지 입구에 서있는 탑 탑이 있으니 일단 찍는다
이 탑은 20세기 초에 세워졌다고 한다.
근방 지도
지도를 보면 위는 강으로, 아래는 늪지대로 둘러싸여있다. 초기 상륙 지점으로는 괜찮을 지 몰라도 정착하기에는 좁은 땅이었고, 후에 사람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초기 정착지 요새(?)의 모형도
위키 페이지에 따르면 크게 2가지 외부 위협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 원주민 인디언들과 현 플로리다 지역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이다.
요새 내부의 교회터
1700년 정도에 버려진 후로 1900년 지나서 다시 주목받았을 때에는 아마 지금 보이는 흔적조차 없었을 듯 하다.
400년 전 지형은 지금과 달랐다.
400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인데, 보면서 조금 놀랐었다.
이제 유적지 한쪽 끝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가본다.
이 박물관은 17세기에 존재했던 영국 식민지의 의회 건물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버지니아회사
당시 유럽에서는 식민지 지명을 딴 회사가 일반적이었다 보다. 마치 "동인도회사" 이런 것 처럼.
여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의료 기기들
당시 유럽의 의료 기술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니.
식인의 흔적
1609년 가을에서 1610년 봄까지 먹을 것이 모자랐다. 당시 약 500명의 인구가 약 6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첫번째 이유는 정착지가 강과 늪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이어서 여기 사는 동물들 씨가 금방 말랐다는 것이고 더하여 강 하구라서 물에 소금기가 있어 좋은 물을 섭취하지 못한 결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양 면에서 위태로운 상태였다. 둘째는 주변 인디언 부족과 위태로운 거래를 이어가던 중, 거래를 잘 해왔던 정착민의 우두머리 John Smith 선장이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입어 영국으로 후송되었고 (그래서 거래가 원활하지 않았고), 세째는 자연이 도와주질 않았다. 당시 가뭄으로 인디언들 역시 먹을게 풍족하진 않았으며, 더하여 영국에서 출항한 보급선이 버뮤다 부근에서 폭풍에 휘말려 좌초했던 것이었다.
포카혼타스
당시 인디언 부족장의 딸이 바로 포카혼타스였다. 포카혼타스는 정착민에게 인질로 잡혔으나 본인은 개종, 개명 (Rebecca) 및 정착민 남성과 결혼하여 인디언 부족과 정착민과의 평화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후 포카혼타스/레베카는 영국으로 보내져 버지니아 회사의 살아있는 광고 ("civilized savage!!!")로 역할을 하였다. 다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영국 땅에서 죽었고, 이후 인디언 부족과 정착촌 사람들간의 반목의 한 원인이 되었다.
차를 실어 나르는 Ferry. 매일 제임스강을 건넌다고 한다.
400년 전, 영국인 정착민에게나 인디언 원주민에게나 모두 격동의 시기였을 것이다. 작은 이유로도 쉽게 죽을 수 있던 시절, 내일의 삶을 보장할 수 없던 시절.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이 그런 시절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행지 정보
● Jamestown, VA, USA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zorba님의 [2019/1/6] 가장 빠른 해외 소식! 해외 스티미언 소모임 회원들의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이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는 시절이어서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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