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제주도 자전거 일주 3. 송악산-모슬포-중문

1편과 2편에 이어 하루 단위로 나눠 쓰고 있습니다.
첫날 같이 다녔던 친구들과는 헤어졌다. 나는 시간이 많았고 그들은 시간이 없었다. 나는 운동하러 온 것도 아니고, 뒤에서 뭐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휴가 일정도 다소 넉넉해서 5일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3일만에 제주도를 일주하기로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숙소에서 다소 늦은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한림공원 앞까지 같이 와서 헤어졌다.
한림공원은 어릴 때 가족여행으로 들렀던 기억이 있어서 뻔하지만 들어가고 싶었다. 막상 들어가니 제주도 어딘가에서 옮겨온 전통가옥 몇 채, 공원 내의 작은 자연동굴 하나, 연꽃과 선인장과 야자수 같은, 지금에야 어디에서나 모두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전부였다.


짚으로 만든 지붕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하려면 이 정도로는 묶어줘야 하는가보다.
개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내용들이 있었다. 제대로 된 중장비도 갖추지 못했고 식물들에 대한 전문지식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공간을 만들어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전시해두었는데 오늘날 관광제주의 뿌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 표지판이 보여서 방향을 꺾었다. 좀 돌아가긴 하지만 해안도로라서 풍경을 더 느긋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안도로를 만나는 순간은 와!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지만 20여분 정도 지나면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내 몸을 뒤로 밀어내는 바람이 원망스럽고 다른길로 갈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휴식을 겸해서 이런 이상한 짓들을 하게 된다. 카메라를 바위에 얹어놓고 타이머로 찍었다. 혼자 중얼거리면서 찍고, 보고 낄낄거리고.
훈련소에 있을 때 주말에 종교를 꼭 하나 골라서 가야된대서 매주 다른 종교를 갔다. 불교에 가면 부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고기만두를 먹을 수 있었고, 개신교에 가면 초코파이와 콜라를 손에 쥐고 예쁜교회 누나동생들의 하늘하늘거리는 댄스를 보며 성령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천주교는 주는 건 없이 자꾸 일어나라 앉으라 해서 싫었던 기억이 난다.
오후 두 시쯤, 성김대건신부표착기념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출발하여 표류하듯 제주에 도착할 당시의 모습을 디오라마로, 당시의 배를 실물크기로 재현해 놓았고 조선의 초기 천주교에 대한 이런저런 내용들이 있었다. 훈련소의 천주교와 달리 만족스러웠다.
밭 한 가운데 있는 무덤들을 보며 저 무덤의 주인은 자식들에게 정말 존경받은 분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밭의 일부를 못 쓰게 되더라도 곁에 두고 무덤을 지키려는 의도가 없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혼자 다니니 뭘 챙겨먹기도 귀찮다. 편의점에서 빵이나 삼각김밥 같은걸 적당히 사서 학교 구석에서 먹었다. 학교 운동장의 야자수가 낯설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앞에 보이는대로 가다보니 공사중인 도로가 있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넓은 도로가 마음에 들어서 신나게 달렸는데 갑자기 앞이 언덕으로 막혀 있었다. 달려온만큼 다시 나가야했다.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넘으려고 잠깐 시도해봤다가 넘어가본들 길이 있겠냐는 생각에 이르자 '잠시 기분 좋았으니 그걸로 됐다'며 자전거를 돌렸다. 짜증내봐야 나만 손해다. 기분을 표현해본들 들을 사람도 없다. 그래서 무표정으로 짜증도 냈다가 무표정으로 즐거워하기도 한다.
오후 다섯시 쯤 송악산. 자전거를 타면서 본 올레꾼들이 부러워 자전거를 묶어두고 두어시간 걸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계속 갔고 나는 자전거를 가지러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람은 지나갈 수 있고 말은 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하늘색의 장애물이 올레길 마크와 비슷해보였다. 절벽의 포진지를 파내야했던 사람들과 포를 안고 작은 동굴을 지켜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늦었다. 해가 지기 전에 좀 달려야겠다. 늦었다. 해가 졌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자지? 조금만 더 가서, 조금만 더 가서... 하다가 해가 지고 컴컴해지고 나서야 폰으로 부근의 숙소를 뒤적거린다. 두어군데 전화를 했는데 모두 만실이라한다. 조금 더 가서 부근의 숙소를 또 찾아본다. 만실. 만실.
밤 아홉시와 열시의 어느 시간에, 중문을 한참 지난 어느 지점에서 다행히 빈방을 찾았다. 주인은 돈을 계좌이체로 받아 확인만하고는 '알아서 주무시고 가세요'라는 말을 수화기 너머로 남겼다. 거실 서가에는 볼만한 책들이 많았고 주방에는 조리도구들과 식빵이 많았지만 바다를 향해있는 거실의 긴 식탁에서 물 한잔을 마시며 멍하니 앉아있는걸로 하루를 끝냈다.
아마 하룻동안 움직인 거리는 이 정도였을 것이라고, 뽀빠이돌공원 사진으로 추정해본다.
여행지 정보
●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저도 전달에 갔다 왔어요.
방금 다녀왔습니다. 저는 오래전이라 사진도 내용도 어설픈데.. syskwl님 여행기는 사진이 좋던데요ㅎㅎ
와~~~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하고 정말 딱 좋은 코스네요. 저도 다음에 도전을... ㅎㅎㅎ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면 참 좋은 여행인 것 같습니다. 가다가 궁금한 길이 있으면 한 번 가보고, 괜찮은 숙소가 있으면 일찍 자리잡고 쉬기도 하고.
자전거는 베네통 하이브리드 시리즈인가여???
알톤자전거에서 샀는데 특별한 기능없는 유사 산악자전거였습니다. 당시에 10만원~15만원 정도의 가격이었던 것 같네요. 쓸데없이 넓은 바퀴탓에 허벅지 운동은 많이 하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trips.teem입니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 꼭 해봐야겠어요~ @daegu,@syskwl님 다녀오신 여행기 보니까 너무 가고싶어 죽겠습니다. ㅋ 앞으로도 멋진 여행지 많이 많이 소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트립스팀이 있어서 가깝거나 먼 여행지들을 정리해서 올리는데 더 재미가 납니다.
자전거로 제주를 일주하고 계시나봐요~
의외로 길이 복잡하고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조심하세요.
바람도 엄청 불어서 바람을 맞서서 달릴 때는 속도도 많이 나지 않을텐데...ㅋ
아무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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