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그대, 복날의 오리를 좋아하나요
상호: 산골에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다불로 113
7월 17일은 삼복三伏 중 초복初伏입니다. 복날을 챙기는 걸 개인적으로는 빼빼로데이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도 복날이니 뭐니 그런 걸 챙기시는 분은 아닌데... 아내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봅니다. "얘야, 괜찮다"하는 말 뒤에 혹시나 있을 섭섭함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던 걸까요. 곧 복날인데 연락해야하지 않냐고, 수박 사들고 가야되지 않냐고, 식사 한 끼 같이 해야되지 않냐고 자꾸 물어봅니다. 부모님은 뭐.. 오려면 오고, 밥 같이 먹으려면 먹고, 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네요.
그런 연유로 복날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한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마치 기념일의 꽃 선물 같은(먹을 수도 없고 오래 가지도 않는, 도대체 왜 돈 주고 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납득시킵니다.
어머니가 저기 어디 좋은 집 있다더라고 하시길래 식당으로 향합니다.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동궁원이 있는쪽과 포항(안강)쪽을 잇는 지름길에 위치한 식당입니다.
비 오는 날에는 귀곡산장의 느낌도 좀 날 것 같은 언덕위의 하얀집이군요. 간판을 보면 염소고기 전문입니다. 굳이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피하지는 않겠지만 맛있는 소, 돼지, 닭, 오리를 두고 굳이 개와 염소를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가 이 집은 누룽지오리백숙이 맛있다고 하기에 그걸로 주문합니다.
왼쪽은 식당 입구의 가격표, 오른쪽은 식당 내부의 흑염소 먹으세요 하는 설명판입니다. 글 내용으로 보면 버릴 부위가 없네요. 병원에서 환자식으로 내어준다면 그 병원은 치료 잘하는 병원으로 대박날 판입니다.
4인 테이블이 대략 20개쯤. 안쪽에는 방도 두어개 있는 것 같습니다. 최첨단 어린이 놀이방도 있습니다. 놀이방에 오락기가 없는 점이 마음에 들고, 에어컨이 없는 건 별로네요. 가족단위 손님이 많이 오긴 하지만 주 고객층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해봅니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간 탓에 50분을 대기했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놀이방의 미끄럼틀을 좋아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마침 내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도 들어오는 바람에 애들이 줄서서 미끄럼타고 자기네끼리 친구하자고 끌어안고 웃고 떠들고 잘 놀았습니다. 덕분에 어른들은 조금 편하게 밥을 먹었고요.
기본 상차림. 새콤한 반찬 일색입니다. 다양한 절임반찬들이 입맛을 돋굽니다. 한입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한 식초의 맛. 그 자체로도 좋지만 나중에 나올 메인요리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핫 뜨거.
국자로 한 바퀴 휘휘 저어보면 오리고기가 제법 많이 있는게 보입니다. 국물에서는 고소한 맛이 좀 나지만 고기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맛이 없습니다. 닭가슴살을 3시간 끓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걸쭉한 국물과 고기, 기본차림에 있는 초절임 풀반찬과 한꺼번에 먹을 때 이게 이렇게 어울리는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누룽지탕은 따로 한 냄비 나옵니다. 아마 밥알 탓에 국물이 졸아드는 걸 막기 위해 따로 내는 것 같은데 이것도 제법 괜찮습니다.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네요.
요렇게 두 냄비가 한 셋트, 4만 5천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글 쓰면서 침이 고이네요.
정말 뜨거운 날이었습니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뜨거운 자갈밭에 나와서 따가운 햇살을 받으니 정말 죽을 것 같네요. 그 와중에 식당은 만석, 주차장은 만차가 되었습니다. 경주에 놀러왔다가 들른김에 복날이라고 찾아온 손님이 많아 보입니다.
영양과잉 시대에 복날 보양음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 식사보다는 식사 후 보문관광단지로 이동하여 먹은 커피 한 잔이 '뜨거운 여름나기'에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뜨거운 음식을 앞에 두고 가족과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후후 불어가며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 나쁘지 않습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한 시간도 즐거웠습니다. 예약을 하고 갔다면 대기시간은 없었겠지만 그게 더 좋았을지 이게 더 좋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복날, 몇 년전만 하더라도 나도 안 챙기고, 부모님도 안 챙기고, 아내도 챙기지 않던, 소서小暑나 대설大雪만큼이나 의미없던 날이었는데 결혼과 출산이라는 계기로 다소 부담을 느끼며 챙겨야하고 모여야 하는 날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네요. 지금 찾아보니 복날은 24절기節氣에도 끼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날이네요.
맛집정보
산골에
이 글은 Tasteem 컨테스트
내가 소개하는 이번 주 맛집에 참가한 글입니다.
#tasteem-curation
안녕하세요, 테이스팀 서포터 @hyokhyok입니다. @daegu님의 퀄리티 높은 <산골에>포스팅에 감동받아서, 테이스팀에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앞으로의 멋진 활동 기대하며 이상테이스팀이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선물이 크네요ㅎㅎ
안녕하세요 muksteem 전국 맛지도 등록 알림봇입니다. 본문에 있는 주소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다불로 113]로 본 글이 먹스팀 전국 맛집 지도에 등록되었습니다. (혹시 주소가 틀리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확인하러가기먹스팀 맛집 지도는 https://muksteem.com에서 이용가능하며, 새롭게 업데이트 됐습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약소하지만 보팅 하고 갑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내가 소개하는 이번 주 맛집 콘테스트에 응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daegu님의 포스팅으로 테이스팀이 더 매력적인 곳이 되고 있어요.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길 바라며, 보팅을 남기고 갈게요. 행운을 빌어요!
이렇게 좋은곳이 있었네요 그렇게 먼곳이 아니라 가볼수도 있겠습니다^^
수도권 위주로 활동하시는 전국구 스티미언인 줄 알았는데.. 경주와 가까이 계시는군요.
복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ㅎㅎㅎ복날에 곰은 좀 과하네요. 이 분들처럼 잡혀서 뉴스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그런..영화제목이 있었죠? 이유없이 머리에서 툭 튀어나오길래 예고편을 봤는데 배두나가 참 예쁘게 등장하는군요.
정체불명의 날 복날 ㅋㅋ 당일에는 진짜 식당마다 꽉꽉 차서 미리 몸보신하시길 잘한거같아요 ㅎㅎ맛있겠습니당 ㅎㅎ
댓글감사합니다. 미리 잘 먹고 온 것 같습니다.
요즘 닭보다 오리가 좋더라구요
경주는 자주 가는 편인데 한번 들려야 겠군요
닭요리 값이 점점 오르면서 오리와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결혼하고 아이낳고 하면 챙겨야 할 날들이 많으시죠 ㅎ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고 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