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부탁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세 가지 꿈



어릴 적 '너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늘상 떠오르던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검사, 운전기사, 작가.' 뭔지도 모르면서 검사는 왜 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성격에 검사가 됐으면 전 정권의 모 검사처럼 됐을 것 같아 안 하기를 잘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압니다. 마법사보다 검사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 대신 행복검사(行福檢事)가 되어 사람들의 행복(行福)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정밀검사하고 인생 법정에 기소합니다. 신랄하게 파고들어서 왜 그따위로 사는지 날카롭게 몰아붙입니다. 그리고 선고는, 자신이 하는 겁니다. 행복검사로서 마법사는 그저 기소하고 운명의 선택장에 구속할 뿐입니다. 잘해왔습니다. 보상이 없어 허덕였을 뿐, (돈은 변호사가 버는 거니까) 행복검사로서의 마법사는 훌륭했습니다.



운전기사는 역마살 때문에 그런 걸 겁니다. 어디든 마구 쏘다니려면 내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는 이동수단 하나는 있어야겠죠. 어릴 적 택시기사셨던 이모님이 멋져 보여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운전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겹도록 했습니다. 내 차 타고 전 세계를 일주하는 일, 완주는 아니지만 만족할 만큼은 돌아다닌 듯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할 일이기도 하구요. 자전거부터 2.5t 화물차까지 몰고 다녔으니 이제 남은 건 자가용 비행기일까요? (아, 요즘 마법의 양탄자, 지팡이, 구름, 빗자루 따위는 트렌드가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작가는 말이죠. 저렇게 세 가지 장래 희망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림자에 가리워진 그런 느낌입니다. 세 가지 꿈에 속하기는 하지만 한 번도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학창 시절, 교회 주보에 연재라는 걸 처음 시작했을 때도, 너 글 잘 쓴다며 나중에 자기가 출판사 차릴 테니 책을 내자던 친구의 말에도, 작가가 될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만일 작가라는 호칭을 듣게 된다면 내 옷이 아닌 듯 어색할 것 같습니다. 그건 마치 현대인들이 느끼는 마법사라는 호칭처럼 생경하고 낯선 어떤 것입니다.



하지만 글은.. 언제나 썼습니다. 작정하고 쓰지는 않았으나 글쓰기의 역사를 생각하자면 족히 30년은 된 듯합니다. 그것은 문학이 아닌 기록이었습니다. 마법사의 글쓰기는 리포트이고 상호작용의 기록입니다. 또한 지치고 한계에 부딪혀 내지르는 비명이고 탄식입니다. 그것을 주기적으로 기록해 왔습니다. 비탄에 빠져 적어 내려간 역사가 30년. 모인 글들이 꽤나 되었습니다.



출판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무명작가들의 통과의례인 '감사합니다만, 저희 출판사의 방향성과 맞지 않아..'로 시작하는 반려 메일이 산처럼 쌓여 있기는 하지만, 출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첫 시도는 10년 전쯤 일본 여행기였습니다. 출간하고 싶었던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이 터지고 출간계약은 무산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도는 지금 진행중인 텀블벅 프로젝트의 그 원고였는데 먼저 출간하고 싶다 제안한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나보니.. 이 원고는 아무나 펴낼 수 있는 그런 원고가 아닙니다.



생각했습니다. 마법사의 글이 종이책으로 나올 운명은 아닌가 보다. 그래서 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온라인 북스토어를 만들고 매우 비싼 가격으로 봉해버렸습니다. (연회비 365,000원) 역시나 얼씬도 하질 않더군요. 다행입니다. 보상 없이 천지사방에 널린 찌라시 수준의 글이 아닌, 1,000년 뒤 30세기의 미래 인류에게 읽힐 21세기의 기록을 남기는 일이 마법사의 사명이니까요.



책 한 권 내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네. 책 한 권 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시도해 본 사람은 압니다. 시도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더더욱 잘 압니다. 제작비라고 해봐야 1,000만 원 내외. 하이파이 오디오를 사 모으고 피규어, 명품 백을 사들이는 돈이면 책 한 권을 출간할 수 있습니다. 평생을 따져보면, 온갖 스트레스 해소비용, 여가생활비용의 일부를 투자하면 자신의 글을 담은 책 한 권을 출간할 수 있습니다.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원하는 출간은 그것이 아닙니다.



유명 출판사의 타이틀을 단 그것, 또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갈 그것. 사람들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을 만한 그것. 제목에는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며 위로와 힐링, 응원과 지지를 내세우지만 다들 많이 팔지 못해 안달이 나 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 괜찮은 작가들과 이렇게도 저렇게도 안 된다는 출판사들이 저물어가는 출판시장의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 시장에 들어가고 싶은 겁니다. 그 시장에서 인정받고 싶은 겁니다.



내 글 모음 한 권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내 주위 사람들에게, 한 줌의 팬들에게, 내 책 한 권을 전달하는 일이 명절 때 선물 세트 사 보내는 일보다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결과물 하나를 내는 일.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유전자를 남기는 것만큼 엄청난 일입니다.



마법사는 비록 종이책이 아닐지언정 끊임없이 글을 출간해 왔습니다. 게다가 작가로서의 명성 따위를 열망해 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니 종이책 출간 따위에 목맬 일이 없지만, 이번에는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마법사의 첫 번째 종이책이 세상에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들 엄두를 내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너무들 어렵게만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너무들 팔리는 책만 내려 하니 그렇습니다. 너무들 혼자만의 기록을 팔려고 하니 그렇습니다.



성장하는 이들은 평가받는 일을 두려워해선 안됩니다. 평가는 성장의 잣대입니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더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알려면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마법사는 종이책 출간에 마음이 크지 않지만, 원고를 완성하면 늘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것은 나의 글들에 대한 예의이고 최소한의 모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원고를 쌓았고 거절메일도 쌓았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도서출판 춘자를 만나게 되었고 춘자는 용기 있게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시도하겠다 선언하였습니다.



<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



이미 6년 전의 기록입니다. 인생의 저주에 휩싸여 동쪽으로 쫓겨난 마법사가 씩씩거리며 분에 차 세상을 뒤집어 까던 위험하고 거친 기록의 모음입니다. 원고를 탈고하며 첫 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굶어 죽자 氏發



삶의 기로에서 망설이지 않고 나의 길로 내달리려고 마음을 다잡으며 써 내려간 100편의 기록. 그것을 춘자가 발견하고 종이책으로 담아내겠다 선언하였습니다. 춘자의 선언,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마법사는 이미 세상에 내어놓은 기록이지만 춘자의 손에 의해 종이책으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도서출판 춘자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올 많은 글들이, 작가들이, 자신의 운명의 때를 기다리며 세월을 견뎌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6년 전의 마법사에게, 6년 뒤 누군가 나타나 이 글을 종이책으로 세상에 내어놓을 거야 전해 준다면, 6년 전의 마법사는 기쁘고 신이 날 겁니다. 6년이나.. 할 수도 있지만 정해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그것 자체로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언입니다. 6년 뒤의 너, 1년 뒤의 너, 10년 뒤의 너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춘자가 찾아갈 거라고 약속을 전하는 일입니다. 미래기억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굶어 죽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글을 써 내려 가십시오.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내십시오. 그리고 춘자가 찾아갈 때까지 버티십시오. 간답니다. 춘자가 반드시 찾아간답니다. 지구를 돌고 또 돌아 너를 찾아낼 때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겠답니다. 지친 마법사를 찾아낸 춘자가 너를 반드시 찾고 또 찾아내겠답니다.



그러니 이 펀딩 꼭 성공해야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밀어주십시오.



마법사의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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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된다는 것 <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 텀블벅 펀딩 진행중







[choonz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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