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e\가능성

가능성과 현실성

열린 문을 제대로 통과하려면, 그 문에는 견고한 문틀이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 이 기본원칙은 실제성에 대한 요구이다. (특성 없는 남자)

이 문장은 놀라우리만치 매우 상징적이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마음껏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능성의 세계는 적어도 ‘실제’라는 문틀(Rahmen: 범주)의 폭/반경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다. 즉 실제성으로부터 멀어진고삐 풀린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성에 기반을 둔 개연적인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이문장에서 읽어낼 수 있다.12) 이 관점은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상상력 apriorischeEinbildungskraft”13)과도 밀접하게 맞닿는다. 장희권(2015)

(12) “열린 문이라 할지라도 견고한 문틀을 통해” 지나가야 한다는 무질의 비유는 디터 퀸이 습작 형식으로 쓴 작품의 제목 열기구(氣球) 타는 소풍 Ausflüge im Fesselballon (1971)의기저에 깔린 컨셉과 정확히 일치한다. 열기구를 타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지만, 그 열기구는밧줄로 지상의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 활짝 열린 문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같지만 이는 문틀이 전제하는 범주 내에서의 가능성이라는 점 (...)장희권(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