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3-1. 생존설명서 (Hokkaido Prefecture), #3-2 무제

in #photograph7 years ago (edited)

[홋카이도-오타루로 가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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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생존설명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빈털터리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두렵고 걱정되시겠지만 괜찮아요. 생존전문가인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전문가의 조언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들도 삶을 연명해보자고요.
일단 편도로 비행기를 끊고 주머니에 꼬깃꼬깃 3만 엔을 가지고 홋카이도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왔냐고요? 여행을 누가 편도로 비행기를 끊고 오나요?
아는 지인이 있냐고요? 한국에서도 절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일본어는 할 줄 아냐고요? ‘이따다끼마쓰!’ 한마디 알아요.
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생존 전문가니까요.

제일 먼저 우리는 숙소를 구해야 해요.
아무리 돈이 없어도 노숙은 위험해요. 현지 경찰에게 잡혀갈지도 모르고 위험한 사람들을 만나면 굉장히 피곤해질 수가 있어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숙소를 구해봅시다. 숙소를 구할 때는 3가지를 고려하세요!

  1. 가격 – 언제나 이게 제일 문제죠. 무조건 저렴한 곳! 호텔에서 하루 편하게 자면 그대로 하루살이로 생을 마감! 우리는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하니까 무조건 저렴한 곳을 찾아보죠.
    백팩커(게스트하우스)가 그나마 무난한 선택이네요. 하루 2,000엔인 백팩커를 구했어요. 숨만 쉬고 잠만 자면 15일 생존이 가능하네요. 디파짓 만 엔을 맡겼으니 10일로 줄었네요.

  2. 조식 – 가격 다음으로 중요한 건 조식을 제공 여부에요. 여기는 아침에 식빵과 우유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요. 일이 없어도 아침 8시에 일어나서 토스트를 구워 먹어야 해요.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우린 생존할 수 없어요. 눈치 보이지만 몰래 식빵 하나에 잼을 발라 가방에 챙겨요. 용기 내서 두 개를 챙기는 것도 좋아요. 이건 점심이에요. 가난은 절 구질구질하고 양심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생존전문가에게 자존심은 사치에요.

  3. 위치 -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자금이 없으니 도보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도서관이 필요해요. 도서관은 무료로 인터넷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어요. 10일의 시한부 인생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해요. 정보 없이는 일자리도 없답니다.

더 많은 생존방법을 공유하고 싶은데 도서관 컴퓨터 이용시간이 끝나가네요. 일요일엔 종교가 없어도 교회에 나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예배드리고 점심 배부르게 먹고 오기! 등 아직도 전해드릴 꿀팁이 많은데 그건 다음에 이어서 써드릴게요.

궁금한 게 많으실텐데 질문 몇 개만 받고 글을 줄여야 할 것 같네요.
한국에서는 뭐 했었냐고요? 타지에서보다 구질구질했던 기구한 인생기 여러분께 들려드리면 눈물 쏙 뺄 텐데 그건 제 히든카드라 아직 비밀이에요.
왜 타지 와서 고생하냐고요? 젊은이들이 빚이 쫌 있어야 파이팅이 있다고 누가 그러던데, 생존게임은 좀 더 파이팅 넘치지 않나요?
지금은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세요? 조그마한 식당에서 열심히 접시 닦기로 삶을 연장했어요! 저 진짜 설거지에 재능 있나 봐요. 두 명 몫을 한 명분 임금으로 해내고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게 제 평생 업은 아니니까 무시당해도 괜찮아요. 그래도 이제 눅눅한 눈물의 토스트를 먹지 않아도 된답니다.

마지막 질문만 받고 이제 진짜 가야 해요.
생존 전문가로서 생존을 위한 제일 중요한 것 하나만 말해보라고요? 하…. 이런 얘기를 아직 안 하고 싶었는데…. 헤헤 타지에서 허드렛일 하는 게 꿈인 사람이 어딨겠어요. 저 파란 홋카이도 바다 보이시죠. 매일 일이 끝나면 바닷가에서 공책에 끄적거리고 있어요. 비록 지금은 비루한 행색에 외국인 노동자지만, 내일은 조금 더 나은 글쟁이가 될 거에요. 이 구질구질한 삶도 나중에 멋진 글을 위한 양분이 되지 않겠어요? 멋진 예술가들 보니까 다 젊을 때 고생한번씩 하던데요. 뭐.

뒤에 일본인 할아버지가 저 째려보고 계세요. 이용시간을 초과해 버렸네요. 여러분들 때문에 어글리코리안이 되었어요.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여러분과 저의 생존을 빕니다.!


3-2

여름의 홋카이도라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출장 관련하여 떠도는 이야기는 현실감이 없었다. “홋카이도 출장이래.” “그 제품 계약 때문에?”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신입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는 언제나 점심의 활기를 뚫고 귀에 뚜렷하게 와 닿는다. 작년에는 틈만 나면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왔다. 한 번 나갔다 오면, 나름 안면을 텄다는 이유로 계속 출장을 보낸다. 모든 회사가 그렇다. 출장에는 낭만이 없다. 현지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를 하다가, 저녁에는 회식이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술과 여자로 가상의 친밀성을 쌓아올릴 뿐이다.

나는 그런 기억이 너무 싫었다. 의미 없는 관계와, 누구라도 상관없을 업무들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제 내 차례는 아니라 생각했다. 같은 팀에 동기와 후배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여름과 홋카이도라는 조합이 갖는 비현실성을 강하게 느낀 것은 이번 출장 당사자도 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네?” “자네가 출장을 다니는 동안 각자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래. 이번까지만 고생해주게. 다만, 중국에서 했던 것보다는 훨씬 편할 거야. 출장이라기보다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게”. 그 ‘이번까지만’이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미친 척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을 뿐이다. 여자친구와도 헤어진지 오래이고 말이다. 기왕이면 겨울에 보내지… 온라인에 ‘홋카이도’를 검색해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이라도 구글 검색에 나오는 이미지와 같기를 원했다.

호텔에 체크인 하면서, 유창한 한국어에 놀랐다. 일본인이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기 보다는, 한국사람 특유의 한국어 억양처럼 느껴졌다. “한국 사람이세요?” 구태여 물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뗐다. 호텔에서 잔뜩 끌어올린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단단한 근육을 옷 너머로 내비치는 남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는 읽은 적이 있다. 결국 한국을 떠나도, 한국의 것들과 별개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카운터에서 한국어로 여행객을 맡듯이 말이다. 문득, 이 홋카이도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졌다.

현장 담당자와의 미팅은 형식적이었다. 각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역할은 서류로만은 돌아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위한 것이다. 업무가 굴러가기 위한 기름칠일 뿐이다. 다행히 오카다 씨는 자리를 일찍 파하고 싶은 눈치였다. 연배를 짐작해보니 나와 같은 처지로 나왔겠구나 싶었다. 중요한 일들은 위의 선수들끼리 서면으로 마무리 짓고, 우리와 같은 졸개들은 돌 하나 굴리는 정도이다.

취업 준비는 오래도록 했다. 동아리 활동에 미쳐서 졸업 전까지 시간을 쏟았다. 후배들에게는 멋진 선배였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잘 하는 선배’는 취업도 보란 듯이 해야 했다. 후배들의 시선만이 취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게 했던 힘이라면 어폐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번듯한’ 기업에 가기를 원했다. 그 번듯한 기업이 나를 번듯한 인간으로 바라보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깨달은 것은, 나는 기계일 뿐이라는 점이다.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내 꿈과, 이상과, 노력은 하나씩 하나씩 점수가 매겨진다. 차라리 공평하기라도 하면 좋을 것이지.

혼자서 호텔 근처 술집에서 실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호텔 방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사건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소설 속에서 일어날 법한 그런 만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머리는 아프고, 몸에서는 냄새가 난다. 샤워를 하고 나도 몸에 붙어있는 피로는 가시지 않는다. 인생은 소설보다 역동적이기도 하지만, 소설보다 훨씬 비루하기도 하다. 소설과 달리, 인생의 첫 장에 등장한 총은 결코 마지막까지 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점심의 호텔은 한산했다. 비틀거리며 나가서 바라보는 하늘은 파랬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행 속에서 일상을 확인하면 복잡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이번에는 좋지는 않았다.


  • 사진 @mingo
  • 이 글은 사진을 보고 작성된 픽션입니다:)
  • 3-2 는 지인분께서 같은 사진을 보고 작성해 주신 글입니다. (해당 글 백일장 미참여)
  • @marginshort 재밌는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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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mingo this food is very tasty and very interesting to try, I want to try sometime, is it your own made? :)
Do not forget to visit also my page, I also have some interesting ostingan for you see @wahyusaputra

뉴비는 언제나 환영!/응원!이에요, 조사한바에 따르면. 텍스트가 공백제외 1000자 이상이면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포스트가 된다네요. - kr-newbie 보안관 봇! 2017/07/06일 시작 (beta)

3-1번 아무리 생각해도 픽션이 아닌거 같은디요...흑흑

혹시 글에서 추억을 떠올리신게 아닌가요? 아마도 픽션일거에요.. 흑흑

사진이 정말 예술입니다~ 특히 두번째 사진은 특이하게도 일본스러운 느낌이 많이 느껴지네요.. 저런 풍경은 우리나라에도 있을텐데, 이런 걸 보면 일본은 참 희한한 느낌을 가진 나라입니다~ ㅎㅎ

이번 백일장 글 이후로도 시리즈가 궁금해지네요 ! ㅎㅎ 일본에서의 생존설명서는 더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뒤에 나올 꿀팁들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ㅎㅎ 참여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ㅎ 비루한 글실력이지만 백일장이 풍성해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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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osphere and color of the beach is very beautiful @min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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