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성추행 논란을 보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in #metoo6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오늘은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관련해서 한마디 적어보겠습니다.

정봉주

아침 출근길에 정봉주의 성추행 의혹을 다룬 프레시안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솔직히 안희정 때보다 더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안희정에 대해서는 그냥 '이미지 좋은 정치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언행에 대해 특별히 관심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안희정의 성폭행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역시 정치인은 겉과 속이 다른 존재구나'라는 정도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봉주 건은 좀 달랐습니다. 올해 초 저는 정봉주 사면에 대해 잘한 결정이라는 취지의 글을 쓴 바가 있습니다.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글도 썼습니다. 과거 나꼼수 때부터 그의 방송을 여럿 챙겨봤고, MB정권 막판에 억울하게 감옥을 갔다온 과정 등을 보면서 어느정도 정봉주라는 정치인에 대해 여러모로 공감을 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정봉주의 이미지는 안희정과 많이 다릅니다. 안희정이 신사적인 원칙주의자 느낌이 강하다면, 정봉주는 좌충우돌 저격수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정봉주가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이미지이기 때문에 '정봉주는 그럴만한 인간이야'라는 편견도 편견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봉주 성추행 논란의 내용은 무엇인가

위에 링크한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현직 기자 A씨는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통해 2011년 당시 정봉주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을 밝혔다고 합니다. 나꼼수 애청자였던 A씨는 정봉주의 강연을 듣고 같이 사진도 찍고 뒤풀이도 하면서 친해졌다고 합니다.

이후 정봉주는 무슨 이유인지 A씨에게 자주 연락을 시도했고, 감옥 수감 직전에 여의도 켄싱턴 호텔 1층에서 A씨와 만나기까지 했습니다. 정봉주가 A씨에게 보고 싶었다느니, 성형수술도 해주고 싶다느니 등 부적절한 말을 이어가자 A씨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하지만 정봉주가 마지막으로 포옹이라도 하자면서 A씨를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입니다.

기사 이후의 정봉주 대응에서 큰 실망

기사가 나가는 날은 정봉주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발표하기로 한 날입니다. 기사는 오전 9시 30분에 발표됐고, 오전 11시 경에 정봉주의 출마 선언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KBS에서 담은 출마선언 이 취소된 현장)

저는 여기서라도 정봉주가 제기된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밝히기를 기대했습니다. 기사에 나온 정봉주의 첫 대응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는 프레시안 기자에게 "답변할 이유가 없다"며 "명예훼손 등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월 27일 채널A 외부자들 방송에서 정봉주는 미투 운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위키트리 기사를 보면 정봉주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미투 운동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발언했고,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가해가 벌어지는 세태를 비판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자신을 향한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것이 첫 입장 발표였으니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물론 프레시안 기사가 가짜뉴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봉주는 실제로 자신이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성형수술을 해주겠다느니 하는 것도 듣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성희롱입니다)을 했다면 정확히 사과하면 되고, 사실이 아니라면 '사실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입장을 발표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어정쩡하게 넘어가고 법적 조치를 운운하고 있으니 더욱더 정봉주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억울하게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곽도원을 참고하자

미투 운동이 계속되면서 (저도 자주 다니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미투 운동이 피곤하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범죄 고발 때마다 나오는 '알고 보면 여자가 꽃뱀이다'라는 식의 논란도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매년 성범죄는 2만 건 넘게 발생하는 반면, 성범죄 관련 무고죄로 유죄를 받은 사람은 150명 내외입니다. 성범죄와 '성범죄 관련 무고죄'는 동일 선상에서 볼 성질의 범죄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미투 운동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혐의를 명쾌하게 벗은 사람은 곽도원씨 뿐입니다. 곽도원의 소속사는 곽도원을 향한 성희롱, 폭언 의혹제기에 대해 빠르게 사실 무근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게다가 거짓 글에 대해서도 고소하지 않겠다는 추가 입장도 나왔습니다. 자칫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것이 미투 운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봉주가 정말로 억울하다면 곽도원의 사례를 참고하여 지금이라도 빨리 제대로 된 입장을 내야 합니다. 우선 사실관계에 대해 정확히 밝혀야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에 나온 A씨와 자주 연락하고 지낸 것은 사실이었는지, 자신이 감옥에 가기 직전 여의도 호텔 카페에서 A씨를 만난 것은 사실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또한 A씨에게 계속 치근덕대면서 성형 수술을 운운했다거나, 결정적으로 A씨를 강제로 껴안고 키스를 시도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만약 프레시안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치고 방송이고 나발이고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공개사과가 필요합니다. 기사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봉주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서울시장 출마까지 예고하고 있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는 있어도 이 또한 일종의 '검증'의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나중에 정봉주의 성추행 의혹이 모두 '무고'로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법적 대응은 그때 가서 운운해도 늦지 않습니다.

수년간 방송활동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정치인으로써, 이정도 검증에 발끈하며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제3자들의 시선이 정봉주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정봉주가 자신을 향한 의혹의 '사실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저를 비롯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점차 차가워질 것입니다. 본인이 당당하다면 '가해 사실이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됩니다.

7년 전 일이라 자신도 정확히 기억을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입장 발표까지 정봉주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아 보입니다. '정봉주 저거 구린 게 있으니까 입장 발표가 늦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점점 커질 것입니다.

한때 좋은 정치인으로 생각했던 봉도사 정봉주, 더이상 지지자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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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이 이제 권력계층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네요.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상대편의 허물을 저격하여 성장한 정치인들의 한계점으로 보여집니다.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면 망할 수 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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