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스팀잇에 처음 글 쓰는 초보입니다.
초보 스티미언이자, 막달 임산부이자, 예비 맘입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오늘까지 지내온 얘기를 하려 합니다.
목표는 담담하게 쓰기입니다.
No 스트레스
임신하고서 제가 가장 주의한 건 '스트레스 받지 않기' 입니다. 한 번일지, 두 번일지, 세 번일지 모르지만, 임신을 괴로웠던 기간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임신 기간 내 호르몬 변화로 생기는 감정의 기복과 우울감을 0로 만들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 요인을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했습니다.
임신 전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계획했는데 임신과 맞물리며 자발적 (아니 비 자발적인가요) 백수가 되었습니다. 경제력이 없어지며 기분이 가라앉았는데요. 지나고 보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저를 두고 이래라 저래라며 훈수두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임신한 산모를 보면 다들 한마디씩 하고 싶은가 봅니다. 오늘도 병원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남자였습니다)이 아이 성별 묻고, 언제 낳느냐 묻고, 영어 교육하는 법 가르쳤습니다. 제가 임산부가 아니었으면 듣지 않았을 말이지요. 본인이 아이를 키워봤다며 저에게 친근감을 느낀 모양인데 교육 전문가도 아닌 분이 하는 조언 듣기는 피곤했습니다. 제가 요청한 것도 아니었고요. 처음 본 사람이 20분 남짓한 시간에도 이렇게 간섭하는데 에효.
저는 임신 기간 동안 양가 부모님에게 제 몸과 아이에 대해 시시콜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린이집 처음 들어가는 서너 살 아이가 아니니까요. 병원에서 들은 얘기, 몸의 변화, 감정의 기복, 출산 계획까지 상의하는 건 아니지 싶었습니다.
부모님과 얘기하는 걸로 걱정을 덜 수 있겠으나 피드백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양가 부모님 어느 쪽이든 걱정하는 마음은 같으니, 어떤 얘기를 듣든 함께 고민하려 할 테고, 뭔가 도움될 만한 말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테고, 그러면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한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하고 지식이 없으니 주위에 물어물어 얻은 해묵은 정보를 제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겠죠.
시대와 맞지 않고 저와 맞지 않는 조언인데 부모님이 하는 말씀이므로 쉽게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하면 할수록 정도는 심해집니다. 공부는 할수록 실력이 늘고, 책은 읽을수록 그 분야의 지식을 넓고 깊게 습득합니다. 고민은 할수록 걱정이 커지고, 말은 할수록 많아집니다. 조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엔 조언이 잔소리와 간섭으로 들릴 겁니다. 조언하는 사람은 조언을 멈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임신하여 불안한 마음을 어린 아이처럼 부모님에게 털어놓는 건 지양하는 게 낫습니다.
만나서 기분 나쁠 사람은 피하기
태교가 별 게 있나요. 엄마가 기분 좋게 지내면 되지요. 그러면 아이는 그 기운을 이어 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겠지요.
그런데 임신하고 일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외롭습니다. 하루 일과가 단순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우며, 만나는 사람이 적어 대화도 덜하게 됩니다. 저는 스몰토크의 힘을 믿는데요, 이 스몰토크를 나눌 사람이 남편 외에는 없게 됩니다. 농담 따먹기 할 사람이 없는 생활은 단조롭다 못해 지루하죠.
제가 그랬습니다. 막상 백수가 되니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울적했습니다. 대화하는 법을 까먹을 것만 같았습니다. 무리해서 약속을 잡을 생각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연락하고 싶은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제 성격을 이해하고, 저와 맞는 사람만 보고 싶더라고요. 호르몬으로 예민해진 상태인데 만나서 기분 상할 말을 할 사람을 굳이 만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사람이요. 매사에 부정적이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 자기 말만 하는 사람. 제가 기운이 넘칠 때에는 이런 성격의 사람일지라도 만나서 기운이 빠지진 않습니다. 저와 다른 삶은 어떤지, 책 읽고 잡지 보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임신하면요,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왔다갔다 합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 임신 중 끊이지 않고 변화하는 몸, 실버 세대가 되어 가는 관절, 틈만 나면 들어오는 주변의 잔소리 어택. 이런 가운데 제 기운을 뺏어갈 사람을 굳이 만나는 건 시간 낭비, 감정 낭비입니다.
한 번은 먼저 연락온 김에 친구를 만났는데요. 이 친구의 발화 대부분은 부정적입니다. 희망찬 얘기를 잘 안 해요. 저와 워낙 다른 생활을 하니 들을 에피소드가 무궁하고 저도 호기심이 일어서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는데요. 임신 중 만났는데 제게 요즘 부모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 놓더라고요. 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요.
대꾸할 말이 없었습니다. 민망했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또는 나는 안 그럴 거다, 라고 대꾸해야 하는지, 아니면 화를 냈어야 했는지.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온갖 생각이 들었어요. 웃으며 헤어졌지만, 280일 뿐인 임신 기간 중 하루의 6분의 1을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에 집착하지 않기
전 입덧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없진 않았는데요. 토하거나 굶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속이 비면 울렁거리고, 눈 앞에 음식이 차려 있으면 먹지만, 먹고픈 음식은 없는 정도였습니다. 오밤중에 무슨 과일이 먹고 싶다, 하는 에피소드는 제게 먼 얘기였습니다.
2018년 대한민국은 먹을 게 풍족합니다. 과일의 제철을 모를 정도입니다. 겨울 과일의 대명사 귤이 여름에도 나옵니다. 딸기 철을 놓치면 냉동 딸기라는 대안이 있습니다. 배달앱을 이용하면 집에서 요리를 먹을 수 있고요.
지역 명물이라는 음식은 가까운 백화점에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로마의 유명 젤라또를 약간 비싸지만, 백화점 가면 사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 못 먹으면 내일 먹으면 됩니다. 게다가 전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 언제든 식당이든 마트에든 가서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임신 초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고요. 남편의 독려와 조언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과식과 폭식을 피했습니다. 임산부는 소화제도 임신 중임을 밝히고 처방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배탈 날 상황은 만들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출산이 다가오고 아이가 커지면 자궁이 명치까지 커지며 폐와 위, 창자 등 장기가 눌립니다. 위염 환자 같은 날을 보내게 됩니다. 장기가 움직이기 어려우니 변비가 생기고요. 철분제를 복용하면 그 정도가 심해집니다. 따라서 산부인과 의사나 간호사는 과식과 폭식보다 소식을 추천합니다.
화를 가라앉히기 어렵고 마음이 불안하면 운동을
제가 아무리 조심해도 불시에 당하는 스트레스 어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조금 전 날 치고 간 사람, 기형아 검사를 앞두고 슬그머니 올라오는 불안함,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찾아온 허리 통증, 이렇게나 고통스러운데 지하철, 버스에서 20분 앉기 어려운 상황, 뱀 같은 눈빛으로 내 배를 쳐다본 지하철 이상한 노인.
임신하고 아이가 자라며 배가 불러오면요, 기분이 나쁘면 배가 부풀고 딱딱해집니다. 배가 뭉친다고 하는 증상입니다.
위염 걸려본 분은 알 겁니다. 화가 나거나 하면 속이 쓰리죠? 스트레스 받으면 변비가 오고요. 저는 집이 아닌 곳에서 지내면, 여행지이든 출장지에서든 변비에 걸립니다. 자궁도 스트레스에 민감한 장기입니다. 피곤함에도 민감하고요.
일시적 배뭉침은 쉬면 금세 풀리는데요. 지속하면 좋을 게 없습니다.
저는 화가 나면 숨이 편하게 안 쉬어지더군요. 주의를 다른 데로 쉽게 돌리지 못합니다. 짜증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제게도 아이에게도 좋을 게 없는데 말입니다.
이런 날이면 전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을 빠지지 않았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집중하니 호흡이 깊어집니다. 짜증도 조금씩 사라지고요. 사실 다 별 거 아니고, 제 능력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을 다스려야지 불평불만한다고 바뀌지 않고요.
아이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랄지, 건강하게 태어날지, 출산 과정에서 문제는 없을지에 대한 걱정도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압니다. 아마 모든 엄마가 알 거예요. 할 수 있는 거라곤 임신 기간 동안 잘 먹고 운동 잘하는 것뿐. 그럼에도 그 걱정을 떨치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마음이 드는 시기에 요가원 출석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위염으로 병원 다닐 때에 의사가 그랬어요. 사지를 움직이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요.
남편과 집 근처 산책하며 라일락 향기, 나무 냄새 맡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태교는 개뿔
아이를 무탈하게 낳고 싶은 마음에 산모 교실, 출산 교실 등등 여러 교육을 들었는데요. 다들 태교를 강조하더군요. 특히, 임신 전 3개월 태교를요. =_=;;; 그런데 왜 수강 대상자는 임신 16주 이상인 거죠?
전, 이런 것 무시하고 저 하고 싶은 걸 하며 지냈습니다. 태교 동화, 태교 음악, 태교 여행... 다 제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그보다 못해본 공부, 어려서부터 배우고 싶던 악기, 잊고 있던 취미, 바빠서 엄두 못낸 전집 읽기(애거서 크리스티입니다. +_+)를 시도했습니다. 직장 다닐 땐 꿈도 못꾼 평일 이른 아침 카페에서 책 읽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임신 기간 280일이 모자릅니다. 출산하면 몸이 일시적으로 허약해지니 혼자서 움직일 수 있을 때에 움직여야죠. 출산 전까지만 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는데요. 그 점이 더 열심히 하는 동력이 됩니다. D 데이 정해놓고 공부하는 수험생이 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전 학원도 개근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학원 등록하면 수업 일수 절반 채우기 어려웠는데 되레 몸이 불편한 임산부가 되고선 개근은 물론이고 예복습까지 철저히 해서 학원에서 모범생으로 꼽혔습니다. 공부가 제일 재미나다는 걸 느꼈습니다. @.@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이런 글을 썼지만, 남은 한 달 어떻게 보낼지 모르겠습니다. 임신은 신의 영역이며, 출산도 신의 영역 같습니다. 임산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임신 중독이나 임신성 당뇨, 양수색전증, 전치태반, 태반 조기박리, 역아, 횡아를 방지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난 임신 기간 잘보냈다'며 자신있게 말하지만, 내일은 울고 있을지 모릅니다.
설령 그럴지라도 지금을, 오늘을 담담하게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보내려 합니다.
이제 엄마 아닌 날이 (뱃속에 아기가 있지만요) 채 한 달이 안 됩니다.
저에게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 날입니다.
포스팅 재미있게 읽었어요 ^^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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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나름 저도 정리해둔 팁이구요 ^^
우리소통해요 ^^

다양한 kr 댓글이 있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넵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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