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주미크론 35밀리 6군8매 Leitz Wetzlar Summicron 35mm f/2steemCreated with Sketch.

in #leica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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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학적으로 더 우수한 짜이즈의 올드 렌즈들 또는 레트로포커스 디자인의 현대식 라이카 렌즈들 보다 라이카의 올드 렌즈들을 좋아한다. 물론 그 호감의 많은 부분이 역사성과 아름다운 디자인에서 기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렌즈들이 표현해주는 톤을 좋아한다. 사실 그런 아름다운 사진을 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이 라이카이건 보잌틀랜더이건 또는 다른 제조업체의 것이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별로 큰 차이는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그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라이카의 역사는 과거 엘마 디자인의 모태가 되었던 Cooke사의 3군 3매 (Triplet) 디자인과 더블 가우스(Double Gauss) 디자인을 채용한 렌즈들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으며 끝났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의 라이카 렌즈들이 보여주는 사진에서는 라이카만의 개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올드렌즈들은 제각기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하여 뒤섞어 놓더라도 제 것을 찾아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으나 현대식 렌즈들에서는 그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렇게 말하자면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현대식 렌즈가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찍어내는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미인들과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예쁘고 아름다운데 별로 정감이 가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사람을 보는 스타일도 그러하니 그런 심미관이 사진에 그대로 적용되는건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라이카 렌즈로 찍어낸 사진은 맑고 투명하며 입체감이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맑고 투명한 렌즈들은 최신의 비구면 렌즈를 채용한 주미룩스(Summilux) 렌즈들이다. 현행의 50밀리와 35밀리의 주미룩스 렌즈를 맑고 투명하다고 일컬어지는 과거의 올드렌즈들과 비교하면 대부분 현행 렌즈의 압승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무코팅 렌즈가 본연의 색을 잡아내니 어쩌니 하지만 대부분의 무코팅 렌즈들은 채도가 낮고 빛의 투과율이 높지 않아서 하이라이트의 많은 색을 잃어버리고 그냥 허옇게 나온다. 이 허옇게 떠버린 하이라이트를 혹자들은 자연상태의 원초적 빛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특히 흑백사진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그 당시의 무코팅 올드렌즈들은 대부분 색이 뉴트럴하지 않으며 엘로우가 강하고 채도가 낮은 편이다. 사실 라이카의 올드렌즈들이 가지는 전설의 대부분은 그 당시에 같이 경쟁하던 수 많은 렌즈와의 비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들은 당시 함께 활동하던 광학 회사로 짜이즈나 슈나이더, 니콘이나 캐논 등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들은 현대까지 살아남은 제조업체이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많은 회사들이 당시 렌즈를 만들었다. 가끔 해외여행을 할 때 기회가 되면 오래된 사진기 가계를 들러보곤 하는데 생소한 렌즈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라이카 올드 렌즈들의 신화는 대부분 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들과의 비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라이카 렌즈들의 브로셔를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해상력이 높고 명암대비가 강렬하다는 문구가 꼭 따라다니는데 현대의 렌즈들과의 비교에서 올드렌즈들이 더이상 그런 장점을 가지지 못하는데도 그러한 평가가 요즈음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미 그들을 훨씬 더 능가하는 렌즈들이 즐비한데 말이다.

얼마 전 누군가 온라인에 라이카의 올드렌즈 중 하나인 주미타의 개방조리개 사진이라며 올려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아는 주미타의 사진이 아니었다. 정말로 샤프하고 컬러가 화려했다. 그 사진을 올려놓은 이의 설명에 의하면 자신이 사용해본 가장 상태가 좋은 주미타였으며 개체의 차이에 따라 사진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하였다. 정말로 그러할까? 상태가 완벽한 렌즈를 사용하면 올드렌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식 렌즈가 주는 그런 강렬한 컬러와 놀라운 해상력을 보여줄까? 나는 이러한 오해가 전적으로 웹으로만 사진을 보는 풍토에서 생겨난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정말 많은 이들이 M9 나 M-P 같은 디지털 사진기에 올드 렌즈를 이용해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에서 적절히 편집해서 웹에 올려서 공유한다. 과거보다 한 장의 사진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드는 노력이 정말로 많이 줄어들었고 누구나 손쉽게 촬영 이후의 후반 작업들을 마치고 사진을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그 렌즈의 성능이 웹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고 만다. 하지만 대부분 올드렌즈들의 개방조리개 사진들은 8R로만 인화하더라도 못 봐줄 정도로 형편없다. 최소한 조리개 f/4.0 아니면 좀 더 적절하게는 조리개 f/5.6 ~ f/8.0 정도가 되어야 봐줄 만한 사진이 된다. 웹에서는 그러한 결함이 티가 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 웹용 사진파일은 72dpi 를 기준으로 하고 인쇄용 사진파일은 300dpi 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현대식의 레트로포커스 디자인의 렌즈들과는 달리 더블가우스 디자인의 렌즈들은 f/8 ~ f/11로 조리개를 조이더라도 사진의 화질저하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현행 렌즈들에 비해서 최적의 성능을 내는 조리개의 밝기가 좀 더 뒤쪽에 위치해있다. 그러니 많은 경우 올드렌즈들의 개방 조리개는 밝은 렌즈라는 의미로 그러한 밝기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개념으로 생각을 하는 게 더 이롭다고 생각된다. 현행의 주미크론 28mm 렌즈처럼 개방부터 본격적으로 엄청난 화질을 보여주는 렌즈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나마 2세대 이후의 주미크론 50밀리 렌즈 이후로 개방조리개에서 그럭저럭 쓸만한 화질이 나오지 그 이외의 다른 여러 렌즈는 화질이 열악하다. 물론 그것도 개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 개성이기는 하다. 하지만 웹상으로는 개성이던 것을 막상 프린트하면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웹에서 볼 수 있는 사진들 대부분은 사실 렌즈의 성능이라기보다는 디지털 사진기의 성능 또는 후보정의 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렌즈의 특성보다는 디지털의 특성이 더 강하게 보인다. 많은 이들이 원본 사진을 얻은 이후 리사이즈를 하고 약간의 언샵마스크 또는 샤픈을 주고 레벨 조정을 하거나 명암대비를 조정한다. 아예 이러한 조정을 디폴트로 하거나 프리셋으로 만들어놓고 쓰는 경우도 허다하고 처음 촬영할 때부터 촬영시 선명도/채도/대비를 모두 최고로 높게 설정해 놓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보정을 하는 순간 그 사진은 그 렌즈로 만들어낸 것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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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역광하 개방조리개에서 촬영한 사진. ISO 400 필름에다가 셔터스피드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촬영한 것이라는 것은 감안하고 보면 좋을 거 같다. 주미크론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데 렌즈의 중심부 (중간사진)와 비교해보면 렌즈의 가장자리 (아래사진)에서 약간의 광량저하와 왜곡이 관찰되기는 하는데 선예도면에서는 티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라이카 올드렌즈들의 사진은 대부분 조리개 f/5.6에서 만들어진다. 50밀리 렌즈를 기준으로 내가 촬영하고 싶어 하는 대상과의 거리 10 ~ 15m 그리고 조리개 f/5.6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팅이다. 조리개를 f/8.0에서 f/11 이상 조이게 되면 공간감이 너무 압축되고 f/4.0 이상 조리개를 열게 되면 내가 눈으로 보는 공간감보다 더 얇아지게 된다. 흔히들 개방 조리개에서 배경을 날려주고 주제를 부각하는 사진이 가장 입체적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선호하는 입체적인 사진은 실제 눈으로 편안하게 보는 공간감보다 아주 약간만 더 조리개를 열어서 우리의 시각과 미묘한 균열을 일으켜낼 때 만들어진다. 이 지점에서 재미난 것은 현대식 렌즈로는 내가 선호하는 이 세팅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참고용으로 구입해둔 주미크론 50밀리 현행 렌즈가 하나 있다. 이 렌즈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샤프하고 컨트라스트도 강하고 미묘한 컬러도 잘 잡아내는 대단한 작품이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해상력이 높은 것이 문제다. 내가 원하는 수준보다 더 샤프한거다. 내가 원하는 미묘한 균열에서 그 균열의 틈을 메워버린다. 현대식 렌즈들이 보여주는 극도의 샤프함 때문에 배경이 흐려질 때도 샤프함이 유지되어 흐리기는 하지만 형태가 너무 잘 보존된다는 게 문제다. 흑백으로 인화하면 확실히 맛이 덜하다.

또 한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 사실 더블 가우스 구조가 레트로포커스 디자인의 렌즈들에 비해서 가지는 결정적 약점은 주변부의 화질저하이다. 대부분의 렌즈들이 중심부 해상력이 높은 것에 반하여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해상력이나 명암대비가 더 떨어지며 광량 또한 저하된다. 다른 구조를 가지는 엘마는 상대적으로 이 문제가 덜하기는 하지만 현행의 렌즈들과 비교하자면 여전히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대단한 장점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것이 레인지파인더 사진기인 라이카의 본질에 더 근접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라이카를 사용한 지 오래되지 않은 많은 이들이 그 이전에 일안반사식 사진기, 소위 말하는 SLR 사진기의 사용경험이 많고 그 기간도 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SLR은 당연히 더욱 정확한 프레이밍을 할 수 있고 광각이나 망원 렌즈의 제한이 적기 때문에 풍경이나 건축 그리고 전문적인 상업 사진에 더 광범위하게 널리 쓰인다. 이런 류의 사진에서는 사진의 모든 부분에서 일관된 해상력과 톤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때문인지 대구경의 렌즈들이 더 많이 개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SLR 사진기와 비교하여 레인지파인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작고 가볍고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그 장점을 십분 활용한 스냅사진의 영역에서 그 특기가 잘 발휘된다. 풀프레임의 SLR 사진기에 밝은 조리개를 가지는 줌렌즈라도 들려고 하면 모두의 시선을 끌기 딱 좋지만, 레인지파인더 사진기는 상대적으로 그런 부담이 좀 더 적다. 물론 이 부분에서의 정점은 작은 사이즈의 콤팩트 디지털 사진기다. 레인지파인더 사진기로 촬영하는 사진은 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서 정확한 프레이밍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상황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더 중요한 덕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배경에서 주제를 부각할 때 더블 가우스 구조의 렌즈들이 가지는 물리적 특성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된다. 또 미묘하게 느껴지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차이는 앞서 말한 조리개와 더불어 입체감에 한몫한다고 여겨진다. 1세대의 주미룩스 50밀리나 35밀리 같은 렌즈는 그 차이가 너무 극단적이고 주변부 화질을 상당히 개선했다고 여겨지는 35밀리 1세대 주미크론 렌즈가 보여주는 정도가 딱 알맞다고 여겨진다. 올드렌즈가 가지는 해상력의 한계와 조리개에 따른 적당한 배경 흐림 그리고 주변부와 광량 저하가 어우러져 호사가들이 말하는 올드렌즈의 입체감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건 나의 경험에 의한 주관적 견해일 뿐이고 또 다른 많은 경험을 가진 분들이 다르게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유는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야기가 1세대 35밀리 주미크론렌즈로 옮겨오는데 바로 이 렌즈가 그 유명한 소위 6군 8매라고 불리는 렌즈이다. 이 렌즈는 조리개 f/3.5의 주마론(Summaron) 35밀리 렌즈가 단종되어갈 즈음인 1958년에 조리개 f/2.8의 주마론과 함께 생산을 시작한다. 총 8매의 렌즈를 사용한 대칭형 더블 가우스 구조로 군용으로 납품되었던 74밀리 엘칸(Elcan)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특히 이 즈음 라이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던 고굴절율을 가지는 란타늄(Lanthanum)이라는 이름의 방사성 광물을 통해서 색수차를 좀 더 잘 제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외형적으로 대략 3가지 타입으로 구분되는데 스크류 마운트 타입은 1963년까지 생산되었고 베이요넷(Bayonet) 마운트 타입은 1969년 까지 생산되었으며 별도의 고글을 장착하여 M3의 뷰파인더로 35밀리 프레임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타입이 1974년까지 생산되었다. 대략 22,500개 가량 생산되었다고 하니 그 명성에 비교하자면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렌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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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용으로 별도의 고글을 단 채로 생산된 이 렌즈는 동일한 광학구조에도 불구하고 좀 더 무겁고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고글이 없는 일반 M2/M4용 렌즈 가격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더 오랜기간 생산되었고 비교적 더 보존상태가 좋은 렌즈들이 많으므로 우선적으로 추천할만한 렌즈이다.

자연스럽고 맑고 따스한 톤을 지닌 이 렌즈는 그냥 테스트를 해보면 생각보다 별것 없다는 느낌을 받기에 십상이다. 채도가 약간 높은 편이기는 하나 명암대비가 떨어져서 막상 다른 렌즈들과 비교해보면 심심한 느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비싼 돈을 들여서 대단한 명성을 가진 렌즈를 구했음에도 막상 사진을 받아보니 특별하게 시선을 잡아끌 만한 인상을 주지 못하다 보니 뜻밖에 혹평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유사하게 생긴 조리개 f/2.8을 가지는 35밀리 주마론과 비교할 때 색의 포화도가 높지 않아 컬러가 더 심심한 느낌이 드니 그런 실망감이 더 클 수 있다. 실제로 이 렌즈의 물리적 특성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주마론과 비교해서 해상력이 특별히 더 우수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는데 조리개 f/8 ~ f/11 에서는 오히려 주마론이 한 수 위라는 생각마저 든다. 조리개를 한단 올리기 위하여 명암대비의 감소와 주변부 해상력 저하라는 단점이 너무 큰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조리개 f/5.6에서 보여주는 이 렌즈는 여전히 주마론의 그것보다 더 샤프하고 더 맑고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주마론은 다 좋은데 주미크론보다 채도가 좀 떨어진다. 강렬하고 색이 화려한 걸 좋아한다면 차라리 짜이즈로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상력은 현행의 비구면 렌즈를 가진 35밀리 주미크론 보다는 떨어지지만 4세대 렌즈와 비교해서는 특별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물론 개방조리개에서는 확실히 밀린다. 하지만 내가 주로 쓰는 영역에서는 크게 확대하지 않는한 별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체적인 쓸만한 해상력에도 불구하고 명암대비는 중간이상의 점수를 주기 쉽지 않다. 하지만 렌즈에 대한 애정으로 그 느낌을 그냥 자연스러운 톤 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앰버코팅을 가진 6군 8매를 사용해보지 않으면 결코 그 진가를 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50밀리 주미크론과는 달리 이 1세대 35밀리 주미크론의 컬러는 뉴트럴하지 않은데, 아주 살짝 Cyan이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렌즈의 코팅과 정확히 일치하는 노을빛이 드리우는 저녁 하늘 아래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6군 8매가 주는 느낌은 참으로 오묘하다. 물론 이런 표현은 다소간에 나의 과장이 섞인 표현이다. 내가 느끼는 것이 나의 주관적 편견인지 정확한 렌즈의 성능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다른 렌즈들과 삼각대를 가져다 놓고 스튜디오의 일정한 조명 아래에서 테스트를 해본 것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렇나 느낌을 받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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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Eric Rohmer’s film, The Green Ray (1986)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의 한 명인 에릭 로메(Eric Rohmer)라는 사람이 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명감독들과 함께 호흡하던 감독이었는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녹색광선(Le Rayon vert)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델핀느는 모두가 휴가를 떠나는 무더운 여름의 파리에서 사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무작정 혼자 비아리츠라는 휴양지 해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남성과 함께 해가 지는 순간 하늘이 녹색으로 물드는 녹색광선을 보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에릭로메감독은 맑은 날 아주 짧은순간 내리쬐는 실제 하늘의 녹색광선을 담아내기 위해서 꽤 오랜 기간 허탕을 치며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젊음의 혼란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에의 갈구와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다룬 작품인데 그 영화를 보던 때가 마침 스무 살 즈음이어서 나에게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영화를 처음 본 것은 한 시네마테크의 조그마한 구석 감상실에서였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가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들어온 VHS 테이프를 EBS 같은 프로에서 틀어주곤 했는데 VHS 매체의 한계였는지 편집의 문제였는지 그 영화에서는 해변의 녹색광선이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한참 후 8밀리 영사기를 통해서 녹색광선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녹색광선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이 아니다. 우리는 해가 뜨고 질 때 남색에서 자주빛, 노랑빛, 붉은빛 등을 볼 뿐이다. 물론 이야기는 이렇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6군 8매가 우리가 보지도 못하는 녹색광선을 잡아낸다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내가 느낄 때 아주 아주 약간 미묘하게 그러한 성향이 보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 무시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하지만 우연인지 아닌지 몰라도 6군8매를 그토록 칭송하는 일본의 여러 사진가 또는 사진 잡지에서 보여주는 작례에 해가 질 무렵 사진이 많다는 걸 우연으로 봐야 할까? 싶기도 하다. 그들 역시 그러한 순간 어떤 다른 느낌을 받았던 건 아닐까?

컬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6군8매는 흑백의 묘사가 더 좋은 렌즈이다. 대부분의 흑백필름에서 아름다운 톤을 보여준다. 컬러의 경우는 지금은 단종된 코닥의 엑타크롬(Ektachrome) 64 그리고 골드100과 함께 할 때 6군 8매의 색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색이 너무 강렬한 벨비아(Velvia) 같은 필름 만이 남아있고 프로비아(Provia) 역시 컬러가 강하기는 매한가지라 조금 아쉽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필름 E100VS와는 천성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닌지 몰라도 앰버코팅을 가진 6군8매는 확실히 컬러가 아닌 흑백사진에서 빼어난 표현을 보여준다. 흑백사진에서 엘로우 계열의 필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이 자리에서 적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컬러를 흑백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구분되지 않는 색들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흑백의 농담으로 표현해준다. 조리개 f/3.5를 가지는 주마론처럼 렌즈군의 특성으로 인하여 이 차이가 비교적 또렷이 보이는 특이한 경우도 있고 토륨(Thorium) 유리를 사용한 50밀리 주미크론 1세대 렌즈의 초기 모델처럼 렌즈의 색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6군8매의 흑백이 앰버코팅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내가 코팅들 간 비교를 해본 일이 없으므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6군 8매 렌즈의 흑백은 확실히 계조가 좋다. 주마론처럼 너무 무겁지도 않고 주미룩스처럼 너무 가볍지도 않다. 컬러에서와 달리 흑백에서 정말 균형 잡힌 농담을 보여준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35밀리 주미크론 1세대 렌즈는 그리 대단한 렌즈가 아니다. 오히려 결함이 많은 렌즈이다. 개방조리개에서 화질은 극악이고 현행 렌즈에 비교하자면 모든 물리적 특성이 다 떨어지는 렌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색이 뉴트럴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모여서 하나의 렌즈의 특성이 되고 나는 그 특성이 좋은 것이다. 이건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이나 모델이 눈앞에 있어도 나와 함께 오랜시간 동행하고 있는 나의 여자 혹은 남자친구가 나의 남편 혹은 아내가 더 좋고 사랑스럽고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여겨진다. 그렇다 나는 이 렌즈를 십수년 전에 처음 접하게 되었고 오랜시간 이 렌즈가 보여주는 사진에 길들여졌다. 이게 좋냐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익숙하고 친숙하다. 그러니 그 이후 어떤 새로운 멋진 렌즈가 오더라도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자연스러운 집밥의 느낌을 주고 레퍼런스가 되는 렌즈가 바로 이 렌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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