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구우후(鷄口牛後)
계구우후라는 말은 중국 전국시대 종횡가였던 소진(蘇秦)에게서 유래했다. 사마천의 사기 소진 열전, 사마광의 자치통감 주기(周紀) 현왕(顯王) 36년 기사에 한(韓)나라 선혜왕(宣惠王)과 소진의 대화에서 등장한다. 소진은 6국을 순방하면서 합종책을 제시하면서 선혜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전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 영위계구) 소의 항문은 되지 말라(勿爲牛後 물위우후)'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이후 소진은 이렇게 한나라의 주변 6국의 왕에게도 선혜왕에게 했던 전언과 같은 상소를 올려 한나라를 주축으로 한 주변 6국의 합종책을 15년 동안 유지하였고 이 덕에 진나라의 간섭도 견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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