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완벽한 지혜는 경험되어질 뿐이다
아난다여, 이 방의 문과 창문이 동쪽으로 향해 활짝 열려 있다.
해가 하늘에 떠 있을 때 빛이 있으며,
달이 지거나 안개나 구름에 가리운 한밤중에 어둠이 있다.
너는 열린 문과 창문을 통해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내다볼 수 있으나
벽이나 집에 있을때는 눈앞이 가려진다.
아난다여, 지금 이러한 변화 상태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설명하겠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 원인을 무엇일까?
변화를 일으키는 조건 가운데 빛은 해로 말미암는다.
해가 없으면 빛이 없기 때문이다.
빛은 해에서 나오므로 해는 빛의 기원이다.
어둠은 지는 달로 말이암는 것이며,
시야가 트이는 것은 열려진 문과 창문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시야가 가려지는 것은 벽과 집으로 말리암는것이며,
원인은 다양성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혼란한 환경은 무의식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분명한 인식은 깨달음으로 말미암는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이러한 조건을 초월할 수 없다
<수능엄삼매경>
"수보티여, 네가 자비를 실천하고자 할 때
자비심의 원인이 되는 어떤 대상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말에 의존해서도 안된다.
말이란 단순한 상징일 뿐이다.
네가 원인이나 상징에 집착하지 않고 실천한다면
그 행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수부티여, 동쪽의 공간을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붓다여."
"서쪽, 북쪽, 남쪽, 혹은 위, 아래의 공간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붓다여."
"마찬가지로 수부티여, 네가 자비를 실천하고자 할 때
어떤 개념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인 행복은 공간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금강경>
사람에게 끊임없이 이것이 되어라 저것이 되어라 하고
억누르는 것이 떨어지고 사라짐으로 써 얻어지는 깨끗하고 조용하며
흠없는 달 같은 특성을 나는 지혜라 부른다.
거칠며 위험한 미혹과 반복의 순환을 초월하는 사람,
명상적이고 집착하지 않으며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이 사람을 나는 현자라 부른다
<숫타니파타>
수부티가 물었다.
"명상을 통하여, 혹은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혹은,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붓다가 대답했다.
"아니다, 수부티여, 완벽한 지혜는 배움으로 얻어질 수 없으며,
구별될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없으며,
혹은 감각을 통하여 발견할 수 없다.
완벽한 지혜는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끝내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경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물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완벽한 지혜는 만물과 떨어져서 경험 될 수 없고
고요한 공의 상태로 존재하는 만물의 본성을 보는 법은
단지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이 완벽한 지혜와 물질적 세계는 두 개가 아니며
분리되지 않는다.
본성의 결과인 고요한 공 상태의 완벽한 지혜는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천송반야경>
바르게 살고 자비를 베풀 때
그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깨닫는다.
그는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노여움과 미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지혜롭게 행동을 한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봄으로써
얻어지는 균형 잡힌 완벽한 행동이 드러내는
순수성, 이것이 자유이며 무지를 끊는 것이다
<숫타니파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