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쓰기 - 감옥에서 배운 삶의 문법

This is a story of a man who found his soul through the darkest time in prison. A Korean essay about rewriting life with a pencil.

[고쳐쓰기] -바다로만든 나무

서문 – 연필을 다시 들다

한동안 나는 멈춰 있었다.

삶이 내게 건넨 문장은 너무 낯설었고, 그 문장들 속에서 나는 나를 읽어내지 못했다.

수많은 날들이 스쳐갔다.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문장은 지워지지 않았고,

어떤 문장은 너무 서툴렀으며 , 또 어떤 문장은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는 몰랐다.

삶이란 고쳐 쓸 수 있는 원고지라는 것을.

펜이 아니라 연필로 써도 괜찮다는 것을.

지워진 자리에는 흔적이 남겠지만, 그 흔적 위에 또 다른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감옥에서 펜을 다시 들었다.

창살 너머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가 무너뜨린 시간 위에 새로 써야 할 문장들을

하나씩 상상했다.

그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해내야만하는 시작이었다.

이 책은 그런 시작의 기록이다.

쓰고, 고치고, 다시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바뀌었는지,

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담아낸 여정이다.

나는 이제 감히 말할 수 있다.

고쳐 쓸 수 있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고.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을 읽는 당신도, 혹시 자신을 지우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면 기억해줬으면 한다.

삶은 언제든 다시 고쳐 쓸 수 있다.

우리 모두 그런 펜 하나쯤은 마음속에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그러니, 우리 함께

고쳐 쓰자.

살아가자.

그리고 쓰자, 끝까지


1장 – 징역문이 열렸다

“이곳에 들어온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희망이 없는 곳,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영원히 이어지는 곳.
그곳이 진짜 지옥이다.” – 단테의 『신곡』, 지옥편 중

대구구치소.

평생을 대구에서 살아왔지만, 그곳이 감옥이라는 걸 단 한 번도 생각을 안해봤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회색빛 건물.

그 안이 감옥이라는 것을, 또 그 안에 내가 들어가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징역문이 열렸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발을 들인 감방은 텅 비어 있었다.

코로나 격리 수용 중이라, 일단은 혼자였다.

마치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침묵처럼, 공간은 적막했고 마음은 떨렸다.

드라마에서 보던 신입식, 집단 린치 같은 장면이 떠올랐고,

나는 전투를 대비하듯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선택한 삶의 끝이 이토록 어두운 방일 줄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명이 더 들어왔다.

전신 문신을 한 젊은 건달,

법조계에 몸담았던 중년 남성,

섹스에 자부심을 가진 흰색머리 아저씨,

그리고 누범이자 주폭이라는 또 다른 아저씨.

이렇게 다섯 명이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일주일간의 격리 생활.

우리 사이엔 조심스러운 침묵이 흘렀고,

서로의 죄명은 묻지 않았다.

어쩌면 모두가 각자의 지옥을 품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이곳에선 선택지가 없다.

식사, 설거지, 청소, 화장실, 잠… 그리고 대화.

그저 살아내야만하는 일상 속에서 우린 조금씩 말을 섞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녁시간이 되었다.

TV에서 보던 장면처럼,

문에 뚫린 작은 네모 구멍으로 식사가 들어왔다.

플라스틱 통을 내밀면, ‘소지’라 불리는 봉사자가 밥과 반찬을 채워준다.

처음 먹은 콩밥(?)이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늘 먹던 집밥을 떠올렸던 나는, 곧 충격에 빠졌다.

물처럼 밍숭밍숭한 국, 몇 조각 되지 않는 김치,

형체조차 애매한 반찬.

그 모든 것이 지금 내 수준, 내 형편, 내 처지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곳이 얼마나 차갑고 무력한 공간이었는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었다


2장 – 감옥의 문법

8시 30분.

이불을 깔아도 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1인용 매트리스 한 장, 모포 두 장, 베개 하나.

그게 내 몫이었다.

이불을 펴는 순간, 마음이 먼저 구겨졌다.

침구 상태는 엉망이었고, 먼지는 뿌연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이불이 왜 이래...”

난 원래 잠자리에 예민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망했다.

어쩌겠는가.

이 안에선 뭐든 ‘적응’이 정답이다.

더럽다고 새 걸 달라 할 수도 없고,

예민하다고 따질 수도 없다

별 방법은 없다

그냥 적응할 수 밖에…

9시가 가까워지자 방 안의 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 이제 자라는 뜻이구나.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루가 어찌나 긴지,

자리에 누워 잠들 준비를 했다. 참 하루가 길었던 거 같다. 감옥 첫날이 이렇게 긴데

남은날은 어쩌나..그래 자자! 자야 내일이 올거잖아......

그런데… 젠장.

사람들이 코를 곤다.

이건 견딜 수 없는 데시벨이다.

게다가 불도 꺼지질 않는다.

‘나는 예민하단 말이다.’

아침이 밝았다. 결국엔 자게 되어있다

예민하다고 생각했던 내 스스로가 머쓱하게도 생각보다 잘 잤다

이불을 개고 멍하니 앉아 있으니 점검이 시작된다.

군대와 다를 바 없다.

줄 맞춰 점호 받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이제는 아침밥 시간이다.

없을 줄 알았던 입맛이

그럴리 없다는 듯 어서 입에 무엇이라도 넣어달라 아우성쳤다.

이쯤되니 난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임이 틀림없다. 어제 그렇게

'형편없다' 생각한 밥상이 이젠 '먹을만한' 밥상으로 변해 있었으니 말이다

식사 후엔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누범이자 주폭이신 갈곳없다던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설거지는 앞으로

자기가 다하겠다고하신다.. 잉?

돌아가면서 하는 거 아닌가?

어제도 저분이 했는데… 왜?

알고 보니,

그분은 ‘법자’였다.

영치금을 넣어줄 가족도, 지인도 없는 사람.

그러니까, 돈이 없는 사람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생존법.

그 어르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할게’라는 말로

무언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조금씩, 나는 ‘이곳의 언어’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배워야만 하는 언어.

살아남기 위해선 꼭 필요한 감옥의 문법이었다.


3장 – 감옥마저도 돈은 있어야 했다

감옥이란 곳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러니 ‘감옥 안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진짜 감옥 생활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구매물품 신청서가 나왔다.

코드번호, 품목, 가격이 적힌 물품 리스트와

OMR 카드 한 장.

이제부터는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컵라면, 소시지, 참치, 참기름, 간장, 고추장, 맛김, 과자, 빵, 음료수…

밥을 안 먹어도 될 만큼의 식량을

돈 있는 사람들은 아낌없이 주문했다.

맛없는 밥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건

참기름 한 방울, 고추장 한 숟가락이었다.

그것만 있어도 식사의 품격이 확 달라졌다.

잠자리도 달라졌다.

먼지 폴폴 날리던 모포 두 장 대신

극세사 침낭, 두꺼운 이불, 얇고 깨끗한 모포.

잠의 질마저 돈이 결정했다.

고무신 대신 운동화,

관에서 주는 싸구려 비누 대신 향기 나는 사제 비누,

샴푸와 린스, 클렌징폼, 로션, 바디로션, 영양크림, 면봉까지.

깨끗이 씻고, 향기까지 품고 자는 것은

돈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였다

우리 방에도 ‘돈 많은 양반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문 한도까지 꽉 채워 음식과 생필품을 구매했고,

‘법자’ 어르신에게는 먹을 것을 따로 챙겨주었다.

대신 어르신은 그 사람들 몫까지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겨울의 한가운데였다.

그 어르신에게는 두꺼운 이불이 없었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 사줬다.

그제야 알았다.

어르신이 왜 설거지를 자처했는지..

내 영치금엔 1만 원쯤 있다.

(들어올 때 가지고 있던 돈은 바로 영치된다.)

‘나도 곧 설거지하게 되겠구나…’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설거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무시당할까 봐 겁이 났던 거다.

나도 모르게 허리가 굽혀 졌다

하루가 지나자,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졌다.

현금 천만 원을 들고 들어온 조폭 동생.

(영치금은 300만 원 한도지만, 나머지는 계좌로 관리된다.)

이미 ‘감옥 생활을 완벽히 준비하고 입소한’ 법조계 출신 양반.

그 둘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이 방 안에 생겼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

그 생각이 목줄처럼 내 안에 감겼다.

내가 그노무 돈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곳마저도 돈이 없으면 서러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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