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무대] 큰, 내겐 너무나도 큰.
때는 작년 5월.
어느 평화로운 토요일에 문자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당장 돌아오는 주에 시간 괜찮냐며 곡 하나를 들어오라는 것이었어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열심히 들어서 갔습니다:)
연락을 하신 분은 제가 음악적으로도, 인생에 있어서도 존경하는 분인데요.
늘 이렇게 알듯말듯한 미션을 주십니다.
약속 당일! 약속 장소로 갔어요.
어딘지 몰라 헤매다 도착한 곳!
바로 이곳입니다.
처음 와본 곳이었는데 창문으론 햇살이 가득, 무대 위에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진 공간이었어요.
저를 부른 이유인즉슨, 다음주에 이 곳에서 공연을 하는 데 같이 두 곡을 피아노 연탄으로 하자는 이야기였어요.
피아노 연탄은 피아노 한 대에 두명의 연주자가 함께 연주를 하는 형태랍니다.
기쁠 새도 없이 다짜고짜 연습에 투입 된 저는 엄청나게 틀리고 말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것도, 그 분의 곡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긴장이 되었는데!
거기에 처음 듣는 곡을 초견으로(악보도 없었음) 해야했으니...
절망적인 마음으로 연습 꼭 해오겠다고 수없이 말하고 내려왔습니다.
두 번째 연습날.
나름대로 열심히 해갔는데, 당시는 저도 바쁜 때라 역시나 연습이 부족했어요.
점점 더 큰일 났다는 생각만 머릿 속에 맴돌았습니다.
처음 연습 땐 정신이 없어 어리둥절 했다면,
두 번째 연습 때는 깊은 불안함이 저를 뒤덮기 시작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주는 힘이라는 게 있는지 점점 이곳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푸른 나무와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서 이 곳이 내 연습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지요.
시간이 엄청나게 빠르게 흘러 공연 날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예쁘게 꾸며 공연 장소에 도착했는데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깁니다.
연주의 수정이 있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연습한대로 못한다는 좌절감에 하루종일 패닉.
그날 제 대기실이자, 연습실이었어요.
멘붕인 와중에 다행이었던 건 가와이 피아노라는 점이었어요.
유독 저는 가와이 피아노를 좋아합니다.
소리가 따뜻하고 제 손에 잘 맞는 기분이 들거든요.
너무나도 고요해 새소리 밖에 들려오지 않는 곳에서 저는 발발 떨면서 공연 준비를 했습니다.
차마 공연 곡을 쳐보지도 못하고 연신 스케일을 쳤던 기억이 나요.
리허설을 해야하니 내려오라는 말을 듣고 공연장에 갑니다.
조명도 설치하고, 조율도 완벽하게 되어있었어요.
마지막 리허설 때까지 수정한 부분은 틀리고..
점점 제 불안함은 커져갔습니다.
완벽한 조율에, 관리가 잘된 그랜드 피아노를 치면서 이 피아노에 내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기분은 살면서 처음이었는데 피아노 음정도 너무나 정확하고 소리도 너무 영롱해서 제가 한 음 한 음 소리를 낼 때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어요.
제 파트는 고음역인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고음도 너무 땡땡하고 쏘게 들려서 더욱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대에 올랐어요.
이 날은 제 레슨생들도 많이 왔고, 공연도 매진이었어요.
넓은 관객석이 꽉 차있는 모습을 보면서, 또 길게 줄 서있는 관객 분들을 보면서 갑자기 미친 듯이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긴장을 많이했던 공연이 아닌가 싶어요.
원래도 공연 땐 많이 떠는데 이 날은 죽어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늘 그렇듯 무대에 올라가서는 기억이 없어요.
정말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끝났다는 기억 뿐...
그날 학생이 몰래 찍어 보내준 영상입니다.
부족한 부분만 보이지만 용기 내 올려봅니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뒷풀이도 마다하고 조용히 공연장을 나와 집으로 가던 제게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거셨어요.
"오늘 연주 정말 좋았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저는 멋쩍게 웃으며 감사하다 말했지만 속으론 눈물이 날 것 같았죠.
큰, 제겐 너무나도 큰 무대와
너무나도 큰 사람, 너무나도 큰 마음.
그리고 그 앞에 너무나도 작던 저.
벌써 1년이 지나가네요.
잊혀지지 않을 고요하고 평온한, 단단한 저녁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 이름, 공연장을 올리진 않았는데요.
혹시 이 곳을 아는 분이 계실까요?)
바깥창문이 무슨 갤러리 같네요. 영화에서 일부러 촬영을 위해 고른 장소처럼 완벽하네요. 들어보니까 공연에 올라가기 전에 긴장되는 마음은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라 하더라구요. 보여주신 영상 보니 피아노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잘 연주하신걸로 보입니다!!
어머낫! 풍경이 정말 예쁘죠? 오랜만에 사진을 보니 다시 이곳이 그리워지더라고요. 흐흡... 연습이 부족하니 긴장만 되는... 다정한 격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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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컷 한 컷이 예술이에요... ㅎㅎ 공연을 통해 모든 것을 태워버리셨을 모습이 그려지는군요 멋집니다
공간이 주는 힘이겠지요? 공연은 그럭저럭입니다. 뭔가 몰두해 쏟아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공간도 너무 예쁘네요
그 긴장감 상상한해도 아찔하네요. 거의 공포수준이겠어요
그쵸... 실은 공포지요! 공포스런 순간들이 지나가면 추억이 되는 것이죠!
연주 하시는 모습 잘 봤어요!!
나루님의 음악 이야기 앞으로 자주 접할게요^^
'연탄'이라는 표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연탄은 연주자들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구성은 아닌데요. 덕분에 저도 첫 연탄 데뷔를 하였습니다:)
창문을 통해 햇살이 가득 안으로 비춰져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내는군요. 덕분에 저도 연탄이 뭔지 알게되고 연주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또 이렇게 존경스럽습니다. ^^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하지 않아... 늘 괴로운 마음으로 무대에 서게 되지요... 늘 똑같은 실수를 ㅎㅎㅎ 어쨌건 참 아름다운 공간임엔 틀림 없습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꺼내놓고 보니 더 5월에 싱그럼이 느껴지네요.
올해 5월에도 작년의 5월과 같이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겠네요. 제가 대역죄인이 된 것 같은데 제 블로그 글을 읽어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