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in #kr-diary4 years ago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던 나는 안경이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시각교정수단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간편하게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안경이다. 나는 가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상상하면 안경이 없어서 헤메고 있는 내가 보여, 안경을 예비용으로 몇 개 두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 안경에 대해 예민하게 굴었다. 어릴 때 친구와 다투다가 안경이 망가졌을 때는 나도 안경을 때려버렸다. 친구는 내가 '분명히 안경을 노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 안경은 알아서 고치고 용돈을 털어서 친구 안경을 고쳐주었다. 악몽도 자주 꿨다. 안경이 마구 뭉쳐져서 마치 회전초와 같은 형태가 된 꿈인데, 사실 안경 다리가 2m씩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뭉쳐도 그렇게 엉망진창인 모습은 될 수 없겠지만 꿈이니 가능하다. 하루는 그 꿈을 꾸고 깨서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가, 협탁에 있는 안경을 보니 정말로 망가진 상태에 있어서 다시 경악하다 또 깨어나는 꿈까지도 꾼 적도 있다.

 그렇지만 안경이라는 게 조심한다고 또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몸을 거칠게 다루는 편이라 몸에 붙은 안경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다. 안경을 끼고 잠들어버리는 날은 반드시 코받침이 엉망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코받침이 엉망이 된 안경을 손으로 마구 만지다가 납땜한 부분이 끊어져서 테만 같은 걸로 새로 교체한 적 있었다. 이번에도 또 안경은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다시 직접 해보기로 했다. 동영상을 한 3분 보고, 바로 실전에 나섰는데 너무나 편안한 상태로 교정되었다. 이제 뛰어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나는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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