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는 오늘도 뚠뚠

in #kr3 years ago (edited)

머리 숏컷치고 출근하는 길. 몹시 뒷목이 서늘하고 유난히 추웠다. 태생 찐따라 사람들 쳐다볼꺼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고, 괜히 아는 사람 볼까봐 움츠리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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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게된 H라는 여후배가 있다. 나이는 나보다 9살 어리고, 원래 성격이 그런것 같은데 둥글둥글 친화력 만랩인 편. 원래가 그림자 사회생활 컨셉이라 최대한 말을 자중하는 편인데 왜때문인지 나한테 서글서글 먼저 인사도 하고 심지어 그 비싼 캬라멜을 나한테 하나 까서 건네 줌. 여기가 심쿵 포인트인데 그 뒤로도 가끔씩 간식거리 생길때마다 내 손에 쥐어줬다. 나를 공략하는 법을 잘 아는 친구군. 훗. 까까 공략법.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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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받고 웃음으로 넘기는 태도를 줄곧 보여왔다. 왜냐하면 굳이 긴 말을 섞을 필요는 없으니. 그러나 그 친구 결국 내 심쿵 포인트 만렙채워버림. 코인 단타를 친다며 나한테 심지어 제3자 아니 제5자쯤 되는 나한테 본인의 계좌를(?) 보여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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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나보다 더 적은 돈으로 열심히 업비트에서 뚠뚠하고 계셨네. 남친이 칠리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흥분 상태로 연설하는 부분에서 이 친구 왠지 나랑 친해질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나 살짝 말하는 빈도를 높여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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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타인이고 같은 현장에 근무하는 일개 로동자일 뿐이기에 인사정도하며 안부한마디 정도를 더 추가하는 선에서 그녀와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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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는 역시나 역시. 그 H 나한테 먼저 말거는 이유를 알아버렸다. 별거 없는데 같이 밥먹는 패밀리 안에 있던 아이였는데 하는 일이 잠시 바뀌어서 안 먹고 있었던 것. 그즈음부터 우리 무리와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결국 밥친구라서 미리 인사해둔 거였네. 나 찐따녀. 또 설렐뻔했는데. 역시 찐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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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기분 언짢(왜?)아서 그뒤로는 인사만 가끔 하며 냉담표정 장착하고 열일만 했음. (이거 글 쓰다보니 남자가 쓴거 같은...? 혼자서 '그녀가 날? 그녀가 날???'하다가 혼자 맘상하고 혼자 짜지는...그런 류의 짝사랑 남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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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또 그녀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줌. 나님 내심 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렸나봄. 이번엔 좀 마음을 열고 티키타카함. 자기는 회사 근처 옥탑방에 남치니랑 같이 살고 있다고. 거기까지 알아버렸네;; 하하하. 근데 지금 글쓰며 생각해보니 그녀는 자신에 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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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역시 10살쯤 어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뭔가 신선하고 발랄한것 같음. 특유의 천진난만 분위기 너무 좋아. 나 갑자기 중, 고등 학교 선생님 하고 싶어졌다. 이유는 묻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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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저번주 금요일 마지막 일하는 날. 한시간 정도 뜻하지 않게 여유가 생겨서 아무 종이에 요즘 내 심경을 잔뜩 적고 꾸낏꾸깃 직사각형으로 돌돌 말아 접어서 네모 만들었다 세모 만들었다 동그라미 만들었다 만지작 거리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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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십분쯤 찐따녀 답게 가만히 서서 고개숙이고 종이를 만지작 거렸음. 종이 모서리가 너덜거리기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내옆에 와서 딱 멈춰서는게 느껴졌음. 고개를 드니 H넹! 반가웡! 헤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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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모해영? ^^ ...

하고 묻기에 또 나오는 대로 바로 아무개 소리 시전함. H 빵터짐. 그러다가 웃는 그녀의 입을 보니 읭? 교정기를 했네?

아..네....좀 오래됐어요. 5년.

5년? 키스는 어떻게 한거래?하고 말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안에 아줌마가 튀어나와 벌임. 아놔.

어멋... 이 언니 훅 치고 들어오네?

당황하더니 내 책상옆에 기대셨음. ^^;;;;;아씨 ㅈ망했다 생각하며 어색웃음 장착.

기대는 손목을 또 바라보니 문신이...

아, 이거? ㅎ... 언니 이것만 있는건 아니예요. 요기도 있어요

하면서 보여주는데 옴마놔. 팔뚝에 대형 나침반 문신이 뙇. 손목에 정체모를 영어문구 뙇. 귓속에도 장미 문신이 뙇. 어깨선 쪽에도 뭔가가 있다며 자랑을 뙇. 발목부분에도 알수 없는 형체문신 뙇.

언니? 놀란거예요? ^^하하. 뭐 고작 7군데 정도 한거 같아요. 더하려다 참았네요.

이 친구에게는 편하게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옷장에서 보니 그녀의 상체의 부유함이 가난한 나를 넘어서길래 사이즈를 물어봄. 역시나 쿨하게 사이즈를 말해주면서 자신의 아랫뱃살 구경도 같이 시켜줌. 아항. 너란 여자 왠지 잘 알거 같음 ㅋㅋㅋㅋㅋ

그러면서 상체가 부유해지는 법에 대해 일장연설이 시작됨. 나름 한귀로 듣고 흘려보낸듯. 듣고 싶은 말만 몇 마디 골라들었음.(역시 나답다. 병ㅅ...) 본지 얼마 안됐는데 한 십년지기들끼리 할 법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도중 그녀의 깊은 고민의 한숨소리를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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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치니는 백수인데 취업하는대로 바로 결혼할꺼라고.

근데 결혼한다는 애 얼굴이 말이 아니네;;; 근심 무엇?;;; 왜 한숨쉬냐 했더니 첫남자래. 그리고 자신의 집에 같이 얹혀산다고. 맙소사. 재산이 좀 있는거냐니까 걍 개풀..이라는....

부유한 상체와 깔끔한 얼굴, 모난거 없는 친근한 성격에다가 섹쉬한 문신 장착, 이뻐보이려고 눈물점도 만들고 교정기도 한 그녀를 힘들게 하는건 남친!?

이쯤에서 내 안에 아줌마가 튀어나와서 완전 ㄱ지랄을 해주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가장 치명적인 말은 함구하는 버릇이 들어서. 휴우. 거친 말이 입까지 나왔다가 목을 타고 배로 들어가는걸 느꼈음. 어떻게 돌려말하지 생각하다가 가장 무난한 문장을 시전함.

내 친구도 첫 남치니랑 결혼까지 했는데 만날때 마다 후회하던데^^) 너도 한번 결혼전에 다른 분을 사겨보는건 어떨지...

했더니.
했더니 ㅋㅋㅋ 어디선가 내안의 외침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음.

못생겼다 뭐 나는 찐따다, 머리가 휑해서 어휴, 인스타도 안한다, 자신없다, 화장해도 ㄱ존못 뭐

혹시....

너 내안에 살고 있냐????? ㅋㅋㅋㅋㅋㅋ
평소 내 생각이 H의 입에서 대량으로 튀어나옴. 뭐하나 거를게 없는 평소 내생각들 ㅋㅋㅋ아....아 얘 얘도 나랑 같은... 겉은 멀쩡해도 속은 개찐따......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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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세상 참 .............

H..........힘내라 너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고 나한테도 하는 말이긴 하지만...너는 너무 정이 많은 아이구낭 ㅠㅠ) 너에게 나의 페르소나를 하나 넘겨주고 싶어졌어. 개철벽왕싸가지라는 페르소나인데 졸라 유용하게 쓰일거 같아...잠깐 한달 정도 쓰고 살면 인생이 바뀔거.......

/

말은 이렇게 해도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살아가리.
나도 나의 인생을 살고.

모든 결혼이 꼭 선남, 선녀, 궁합이 최고인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닐터. 모든 결혼이 부자들만의 의식은 아닐터. 부디 잘 살아가길 바라.

어떻게 보면 오지랖일수도 있는데 가장 고르고 골라서 만나도 어렵고 힘든게 결혼이던데. 암튼 난 그랬어. H 동생 이젠 널 보면 기운 돋는 얘기만 잔뜩 해줄게. 앞으로 더 잘되길 바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말이 없는 너도 잘 되길 바라.

댓글 주는 너도 잘 되길 바라.

다들 잘 살길 바라.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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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이야 키스를 어떻게 하건~
근데 뭔 교정기를 5년씩이나... 이게 정상인건가?
암튼... 상체가 가난한 찡여사... 괜찮아~ 결혼했잖아~ ㅋ

이 글의 요지는 가난한 나으 상체가 아닐텐데요?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웃지요? 대답해주시죠 npc양반

ㅎㅎㅎㅎㅎㅎㅎㅎ ㅠㅠㅠㅠㅠㅠㅠㅠ
내 동생이라면 결혼 말리고 싶다.

찐사랑일수도 있고, 사람 앞날은 모르는것이니 걍 행복하라고 해줬으여

삭제금지요청 ㅋㅋㅋ 이거시 찡이지! ㅋㅋㅋ

ㅋㅋㅋㅋㅋ역시 오잉ㅋㅋ

조금 각색해서 이달의 작가에 도전~!! 어떰?ㅎㅎㅎ

이...이건 소설이 아닌디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조금 각색해서 소설로 ㅎㅎㅎ
저 어마어마한 상금이 보이지 않는가!!!

알겠오!형! 용기를 조금 가져볼겡!!

ㅋㅋㅋㅋㅋㅋㅋ 몰입감 최고!!!ㅋㅋㅋ
문장 구성력, 단어 선택력 최고!! ㅎㅎㅎ
내 댓글 읽어주는 찡형도 잘 되길 바라!! 'ㅡ' ㅎㅎㅎ

헤에 뉴발 드디어 읽어줬구낭
고마웡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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