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haped-Box 하트 모양 박스 29화

in #kr7 years ago

Heart Shaped-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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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는 딩동-하는 벨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일영은 말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잠깐의 정적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그는 막상 그녀를 바라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영지의 큰 눈에 단발머리, 창백한 얼굴은 자주 보는 것인데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수치가 없는 세계.

그녀가 먼저 입을 뗐다.
"문자도 없이 왠일이야? 이렇게 불쑥 찾아오고.."
"영지야."

일영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한참을 머뭇거렸다.
영지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랑 결혼할래?"
다시 정적.

영지는 입을 뗐다.
"너 미쳤어?"

일영은 깊은 한숨을 쉬다 말을 이어갔다.
"나 잠깐 너네 집에 있어도 될까..길게 얘기할게 있어."
영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다 결국 그의 손을 잡아끌고 탁자에 앉혔다.

다급한 손짓과 자세한 설명.
그는 한숨을 다시 쉬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참 동안의 이야기가 끝난 후 그는 입술을 깨물며 영지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약간 심드렁한 눈빛으로 일영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25살들을 결혼시키는 제도가 다음 년도부터..통과될 계획인데, 명색이 총리인 네가 비혼이면 안되니까, 그나마 믿을만한 내가 결혼을 해달라..?"

일영은 말을 아끼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안돼. 니가 쪼다라고 나까지 끌어들이진 마."
영지는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일영은 이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니 절박해져서 말했다.

"넌 이 좁은 방에서 평생 살고 싶어? 제발, 제발...네가 다른 인간들이랑 놀아나도 상관 없으니까 나 좀 살려줘.."

그녀는 일영을 외면하고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런 얘기 계속할 거면 나가. 결혼은 무슨..난 막장인생이 취향이야."
"영지야..제발.."

그녀는 잠깐 그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봤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그를 문 밖으로 밀어냈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닫기고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 눈물을 흘렸다.
'이젠 어떡해야 하나..'

그날 밤 일영은 꿈을 꾸었다.
감감한 어둠 속에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멀리서 한 줄기 빛이 깜빡였다.

일영은 처음에는 뛰어갔다.
그러나 빛은 닿을 것 같으면서도 항상 먼 거리에 있었다. 그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한없이 걸을 뿐이었다.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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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를 탓할 수도 없지만 일영도 불쌍하고.. ㅠ.ㅠ

ㅠㅠ.. 둘 다 이해는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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