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5)

in #kr6 years ago (edited)

수업공개 학교 도착

수업공개를 하는 학교는 합천에 위치한 원경고등학교 였다.
원경고등학교는 원불교 경남교구에서 설립한 대안학교로 마음공부와 공동체교육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나는 수업공개 참가 공문만 보고 '가보자'라고 생각한 것이지 원경고등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심지어 '배움의 공동체'라는 것도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무엇이든 배워야 했고 그를 통해 아이들이 '살아 있는' 수업을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기에 이런 무모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도착한 원경고는 자그마한 학교였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학생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업공개 참관에 학교의 모든 교사가 참가한다고 한다.
따라서 수업공개 시간 전에 모든 일과가 마쳐져야 하는 것이다.
수업공개를 하는 반 학생들만 남고 그 반에 모든 교사들이 참가하여 수업공개가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그래서 일과가 끝난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량(?)스러워 보일 수 있는 복장의 아이들이었는데 밝게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유로운 두발에 사복차림 그리고 심지어 화장을 한 모습은 나에겐 불량스러워 보였다.
지금은 왜 그것이 불량스러운 것이었을까 생각할 정도이니 나 스스로도 많이 변한 거 같다.

수업을 참관하다

많은 타교의 선생님들이 수업을 참관하러 와 있었다.
1.JPG

이토록 많은 선생님들이 수업을 바꾸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수업자 선생님은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수업의 주제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글의 중심 내용을 찾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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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시작되고, 14명의 학생들이 교과서를 펴 소설을 읽게 하고 소설의 내용을 찾을 수 있는 모둠 활동들을 하게 하였다.
늘상 수업을 참관하던데로 우리 4명의 교사는 교실 가장 뒤에 서서 교사를 중심으로 수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교사가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니 교사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화려한 언변도 시선을 끄는 제스쳐나 판서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농담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 당시 나는 수업 동기유발을 위해 열심히 개그콘서트를 보고 연습(?)했더랬다.
다만 교사는 아이들에게 활동을 제시하고 묵묵히 아이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을 불러 놓고 수업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그러다 몇몇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모둠 곁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무릎을 꿇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뭔가 귀한 말씀이라도 듣는 듯 경청하며 노트에 기록하고 있는 선생님도 있었다.
수업 전 나눠준 수업계획안에 있던 수업참관 방법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교사보다는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보라고 했었다.
학생들이 어떻게 배워가는지, 어느 부분에서 배움이 주춤거리는지를 봐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5.JPG

약간 고민하다가 그냥 해보자 싶어서 학생들 모둠 가까이 가서 학생들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무언가가 들리거나 보이진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참 관계가 좋고 서로 잘 의지하고 잘 물어보는 구나 싶었을 뿐이었다.
(사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놓치고 있었다.)
근데 이상한 점은 나의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활동을 시키면 몇 초 지나지 않아 나를, 즉 수업자를 찾는 학생들의 요청이 빗발치는데 이 수업에서는 수업자 선생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자기네들끼리 어설프지만 뭔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너무 안 될 때 수업자 선생님이 와서 다시 글을 읽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가는 모습이 종종 보일 뿐 교사의 개입은 적었다.
수업은 학생들의 발표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발표하는 친구를 향해 몸을 돌리고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는 즐거운 표정으로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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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업에서 발표를 시키면 보통 교사인 나를 향해 발표하기 일쑤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 발표를 전혀 듣지 않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기에 신기했다.
대안 학교니까 마음공부를 해온 아이들이니까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수업을 참관했지만...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수업협의회가 곧 있으니 모두 필히 참석해 달라는 말을 원경고 측에서 했다.
수업협의회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며 우리 4명의 교사는 이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수업을 보며 특별히 배워가야 할 것이 보이지 않다고 다들 이야기 했다.
"수업자가 들고 있던 '딱!' 소리나던 나무막대기가 아이들 집중에 좋겠다."
"교사의 강의나 정리가 없으니 수업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수업내용을 배웠을지 판단이 안 된다."
"이런 정도의 교사 역할이면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우리 학교에서 이대로 수업을 했을 때 수업이 지금처럼 이루어질까?"
"고등학생이라서, 공개되는 수업이라서 학생들이 이렇게 수업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나도 이 수업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고 이야기 할 것이 없었다.
다만 '교사의 비중이 적어 보이는 수업이 이뤄지긴 하는 구나'를 느낀 정도랄까.
한편 나로서는 국어수업 참관이었고 난 수학교사인데 이 수업의 협의회에 참석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수업협의회가 열리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사진 자료는 원경고등학교 홈페이지에서 공개 되어
있는 것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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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안 학교군요 아이들끼리 진행하기 힘들었을텐데 대단하네요

그렇게 활동이 수업 중에 이뤄지기 위해 학생들 간의 관계,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들을 믿고 기다리는 교사의 엄청난 노력이 뒤에 숨어있을 것입니다.

찍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대안학교 평소에 관심있는 주제였는데 흥미롭네요.
저도 중학교에서 수준별 교사로 1년 정도 일하면서 우리 나라 공교육에 많은 문제점을 직접 보고 느꼈어요. 그 후 어느 방송사에서 거꾸로 가는 교실 체험을 한 것을 보면서 점점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구나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현재도 여러 학교에서 많은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물론 대안학교에서는 더 진보적인 실천들이 있고요. 이러한 변화가 진보나 보수 등의 이념적 편가르기로 호도되어 사그라지지 않았으면 싶을 뿐입니다. 이념이 아닌 미래와 그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봐야지 싶습니다. 관심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관심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방적인 주입식 방식의 교육에서 탈피해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게 만드는 방식이었을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경청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자기가 직접 생각하고 고민해 답을 도출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답도 궁금해할테니까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정답을 교사가 알려주지 않고 심지어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이나 활동이라면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덜할 것이고 타인의 의견에 대한 궁금함을 가지고 비판적인 수용이 가능해 질 것이니까요. 여기서 관건은 이러한 관계를 학생들 사이에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요.

대안 학교가 교사의 비중이 적어보이는 건가요 ?

흠.. 수업은 자유로이 하고 그래도 가이드는 꼭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나 ? 라고 전 생각하는데 .. 부모된 입장에서 대안학교도 생각중이긴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ㅜㅜ

그 학교가 어떤 철학과 비전으로 운영되는지 확인해 보심이 좋아요.(교육과정도 들여다 보고요.) 직접 찾아가 아이들이 어떤 분위기에서 생활하는지 보는 것도 좋을 테고요. 학생의 활동을 중심에 두고 학생의 자율을 중시한다해도 교사의 역할이 아예 배제되는 건 아닙니다. 마냥 아이들에게 수업을 떠넘기는 게 아니죠. 수업디자인을 해서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하죠. 오히려 아이들의 맥락까지 보고 잘 가이드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사입장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이 부분은 계속 수업의 변화(배움중심수업)에서 다루게 될 거 같습니다.

오빠가 열심히 적는 모습이 사진에 보이네^^ @홍보해

저 땐 아무 것도 몰랐던 때라 뭘 그리 열심히 적었는지 기억도 안나....ㄷㄷ

@zaedol님 안녕하세요. 모찌 입니다. @kimssu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전 원불교 신자인데 대안학교가 이렇게 운영되는 모습을 보니 뭔가 뿌듯하네요 :)

학교가 계속 발전해 가길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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