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는 날

in #kr7 years ago




(노래를 들으면서 읽으면 더 좋아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나입니다.

오늘은 몇 년째 저를 쫓아다니고 있는 친구 두 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바로 우울증과 불안장애라는 친구들이에요. 꾸준히 치료를 받아오곤 있지만 가끔은 이 친구들이 나를 떠나는 날이 찾아오긴 할까? 싶을 정도로 괴로운 날이 있어요.


우울하지 않다면 당신은 진지한 작가가 될 수 없다. 커트 보네거트의 말이에요. 저는 이 말에서 위안을 찾곤 해요. 우울감은 예술을 하는 데 있어 훌륭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도록 만들기도 해요.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슈베르트, 말러... 이들 모두 우울증을 앓았고 위대한 거장이었어요. 저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울한 날이면 머릿속을 부유하며 괴롭히는 생각들로 글을 많이 썼어요. 내가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거든요.

그런데 도저히 견디어지지 않는 날들도 있어요. 아주 깊은 곳까지 가라앉어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기분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이에요. 글도 쓰여지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고, 착 가라앉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야 해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였어요.

오늘은 지나간 날들을 반추하며, 힘들 때마다 쓴 글들을 읽어 봤어요.



스무 살

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다

온전한 분노의 계절

다른 무엇도 끼어들 틈 없던
그 계절

그 시절 난,
조금만 말할까
아니 아무 말도 말자

나는 곧 바위가 되었고
가만히 앉아 폭포를 맞았다


세상이 나를 아프게 했다. 우연히 전해들은 소식에도 난 슬퍼해야 했고,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했다.

우울함의 뒷면에 다른 어떤 감정이 놓일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옷장 속 환상의 세계를 발견하듯
내 삶 또한 대체로 그랬다

소명처럼 찾아오는 깨달음들과
우발적인 일련의 사건들

정작 열의를 가지고 해 보려던 일들은
하나같이 보기 좋게 어긋나곤 했다

삶이란 건 애초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따라와 줄 생각은 전혀 없었고
꽤나 일찍 그걸 알아차린 나 또한
삶에 이끌리진 않도록 자신을 괴롭해왔다.


커다란 무력감이 종일 나를 짓눌렀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고 그냥 멍하니 누워
이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만
그런 마음만 가득했어요

내 존재가 거대하게 부풀었다가
한순간 빵 하고 터져버렸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보고싶었어요 온종일



이런 글들을 읽다 보면, 그래도 제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힘들고 우울한 날에는 온종일 우울감에서 벗어나질 못했거든요. 우울함에 취해 죽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하고, 나는 왜 이런 걸까 하는 자기비하도 잔뜩 하고 했었지만 이제는 이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옛 친구의 방문처럼, 우울증도 그런 것 같아요. 연연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단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올 테면 와 봐라' 하는 식으로요.



오늘도 애써 뭔가를 하려기보다는 드라마를 보며 마음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하루를 부드럽게 흘러보내려고 애썼어요.

잘 되지는 않았어요.

하루 온종일 이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반복했어요.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내야 할까 하는 마음이 한 편,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편.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굳이 우울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하는 마음들이 컸어요. 그래도,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는 것처럼, 가끔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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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덟 시간도 넘게 이 글에 매달렸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글쓰기 버튼이 무척 무겁게 느껴져요. 글을 올리고 나면 민망함과 부끄러움으로 댓글을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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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는 법. 저 또한 글쓴분처럼 큰 어려움은 아니지만 저딴에 힘든 일이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은 끝이 있더라구요. 요나님 또한 터널의 끝을 나올수 있으리라 믿어요. 괴로움을 마주보실만큼 강하시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음... 불안하고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 저도 요즘 비슷한 상태라 공감이 됩니다. ㅠ
올려주신 노래, 드라마 이미지를 제가 다 알고있는 내용이라니
그와중에 반갑다고 해야할지...?

저는 빨간머리앤 3화까지 보다가 힘들어서 포기했거든요. 하아... 내 삶도 힘든데 드라마 주인공의 삶은 더 불편하니 ....;; 놀자고 틀어놓은 드라마가 저를 더 힘들게 하더라구요.;;; )

저도 감성적인 글들.. 우울할 때 쓴 글들이 정말 정말 많아요.
누구나 마음에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죠. 그걸 이해하라고도 알아달라고도 못해요. 하지만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싶네요.
니체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나를 성숙시킨다." 정확히는 생각이 안 떠오르네요.
마음이 편한 사람 옆에 잠깐 기대어도 좋을 것 같아요.

스스로 강해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충분히 강해 보이시네요.

힘내세요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겪는다고 해서 내 고통이 덜해지지는 않지요. 일부러 걱정이나 우울을 없애려고 애쓰면 더 힘든 것 같아요. 그저 담담히 지켜보면서 이것도 내 모습의 일부니 사랑해주세요.
저도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쓰고 싶은 글 쓰고, 듣고 싶은 음악 들으며요나님 기분이 조금이나마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읽어 내려가니 참 말로표현하기 거시기 하네요^^//

그래도 요나님은 본인이 우울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시는 용기 있는 분이시네요 :)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 하기는 매우 힘드니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 보는 게 좋죠!

또 이렇게 우울함은 가고, 평소의 내가 찾아오겠죠?

'그 시절 난, 조금만 말할까 아니 아무 말도 말자 나는 곧 바위가 되었고 가만히 앉아 폭포를 맞았다'
저는 이 대목이 참 와닿네요. 이런 순간들이 20대에 너무나 많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요나님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할 지, 어떤 말이 도움이 될지 생각하게 되네요.
부디 요나님이 표현한 친구. 떠나가길 바라는 친구들이 요나님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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