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노가다 아저씨와 분유

in #kr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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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가난한 집에서 자라지 않았다. 아주 부유한 집이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서민 아니 중산층에 가까운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고 두 분의 직장은 꽤 안정적이었다. 어렸을 적 대한민국을 휩쓴 IMF가 뭔지도 모르고 자랐으니 이 정도면 유복한 집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난 생계를 위해 혹은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노가다를 뛰게 된건 참 웃긴 이유에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사이에선 노가다가 어떤 신체적인 우월성을 나타내는 지표와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옆 반 누군가가 주말에 노가다를 뛰고 왔다고 하면 '우와 쩌네? 하긴 키도 크고 몸도 좋으니까' 라는 식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오직 그 이유에서였다. 나도 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서 자랑하고 싶어서 노가다를 뛰었다.

노가다 인력시장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시작해 남들이 하루를 시작하려 일어날때 쯤 끝난다. 흔히 불성실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너 커서 노가다 할래?' 라는 말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노가다는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일을 잡을 수 없다.

그 날 내가 팔려간 곳은 어느 외곽지역의 주택공사현장이었다. 어느 아저씨 2명과 같이 갔는데 두 아저씨는 친구사이인듯 하였다. 봉고차에 몸을 싣고 가는 내낸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군대는 어디를 다녀왔느냐, 왜 노가다를 뛰느냐 등등. 난 고등학생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의 거짓말을 쳐댔다.
" 아 철원에서 근무했고 복학하기전에 용돈 벌려고 하는중이에요."
다행히 아저씨들은 나의 말을 믿어주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엄청 단순했다. 시멘트 가루를 삽으로 퍼서 수레에 담고 그걸 현장까지 옮겨만 주는 일이었다. 아저씨들은 굉장히 유쾌하였고 일을 하는 내내 농담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덩달아 나까지 신나서 삽으로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즐겁게 일을 하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태양은 지표면의 모든것을 녹여버릴 기세로 에너지를 쏟아냈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까진 그럭저럭 할만했지만 해가 중천에 떠버리고 땅이 달구어지기 시작하니 체력이 쑥쑥 빠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때문에 아저씨들이 더 고생하는건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악물고 삽질을 하였다.

그렇게 하루 일이 다 끝났다. 삽과 수레를 반납하고 일당을 받으러 사무실에 갔다. 내가 일당을 받을때가 됐는데 그 관리자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 넌 좀 적게 넣다."
'뭔 소리야?' 하면서 봉투를 확인해보니 4만원이 들어있었다. 그 당시 성인 기준 일당은 7만원 정도였고 옆에서 잡일해주는 아줌마 일당이 4만원 정도였으니 난 아줌마 일당을 받은 것이었다.

지금 이 나이에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가만히 않있었겠지만 17살의 나는 벙쪄 말문이 막혔었다.

"뭡니까 이게? 같이 일했는데 학생만 4만원이 뭐에요? 우리랑 똑같이 일하는거 못봤어요?"
"셋이서 똑같이 삽질했는데 어리다고 돈 적게 주는겁니까?"
아저씨 두분은 나 대신 관리자에게 따졌다.

관리자는 이마를 훑으며 말했다.

"난들 뭐 이렇게 주고 싶어서 주나. 한시간전에 건물 주인이 한바퀴 돌고가다가 저 학생 일 열심히 안하는거 같다고 이렇게 주라는걸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난 뭐 맘 좋겠어."

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약 계속 항의를 하다 혹시라도 미성년자인게 탄로날까봐여서였다.

"알겠어요."

난 사무실을 나왔고 아저씨들은 좀 더 실랑이를 하다가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봉고차 분위기는 아침과는 조금 달랐다. 아저씨들은 내 눈치를 살피는거 같았다.

"괜찮아요 아저씨. 뭐 4만원도 큰 돈이잖아요."

난 애써웃었다.

어느덧 봉고차는 우리가 새벽에 만났던 소개소 앞에 도착하였다. 봉고차에서 내리고 아저씨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오늘 잘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뒤돌아서는데 아저씨가 나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만원짜리 2장이었다.

"받어 그냥"

아저씨는 어린 내가 오늘일 때문에 혹시라도 세상을 나쁘게 볼까봐 걱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각자 일당에서 만원씩을 빼서 나에게 주는 것이라 하였다. 정말로 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미안해 하지말고 받으라고, 너 덕분에 우리도 일 편하게 했으니 그걸로 된거라고. 그리고 세상엔 저렇게 나쁜 놈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 전부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말하셨다.

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만원짜리 두장을 움켜쥐고 집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날 새참시간에 있었던 아저씨들의 대화를 생각했다.

" 요즘 분유값이 너무 비싸서 탈이여. 그래도 오늘은 일 팔려서 다행이네 휴일인디."
"요즘 안비싼게 있나. 초등학교 들어가봐라. 아주 돈돈돈 부지런하게 벌어놔"
그렇게 웃으시며 맛깔난 담배연기를 뿜어대시던 아저씨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가다를 거칠고 되는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것이다. 그들에게 말해주고싶다.
자식의 분유값을 나누어 어린 학생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던 따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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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감동적인 글입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값진 경험 하셨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와.....정말 잘 읽었습니다. 진짜로...
특히나 코인 주제가 주류인 스티밋에서 이런 글을 접할 줄 몰랐네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으셧다니 저도 보람차네요!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