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하다'

in #kr7 years ago

서르니일기, ray, 서르니.jpg

[서르니일기, 열 여덟 번째 이야기]
'나는 독하다'
.
.
#20180118
'독하다'

  1. 맛, 냄새, 성질 등이 독하다.
  2. 성격이 독하다.
  3. 의지, 결심 등이 독하다.
    .
    .
    .
    .
    나는 독했다.
    그런데 잊고 살았다.
    .
    .
    .
    .
    .
    군입대 전 날 밤,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다.
    2년 1개월 동안 어떻게 살 것인 목표를 적었다.
    그때 내 목표는 토익 점수도, 자격증도, 몸짱도 아니었다.
    .
    .
    .
    제대하는 날, 함께 생활한 모두에게 "어휴 이런 독한X. 넌 뭘 해도 될거다."
    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
    .
    .
    그때의 나는 스무살이 될 때까지 어떤 도전도 성공해본 적이 없었다.
    한자 과외(!)에, 한자 학원까지 다녔지만, 그 흔한 한자 3급 자격증을 따지 못 했다. 8번 시험을 보고, 8번 다 떨어졌다.
    5번은 공부를 안 해서 가지도 못했고, 2번은 40점을 받았다.
    딱 한 번 60점을 받았는데,
    이제와 고백하지만, 나보다 어렸던 초3짜리 답을 베꼈다.
    .
    .
    그럼에도 합격하지 못 했다.
    .
    .
    .
    .
    .
    그렇게 답없던 내게 하나 특이했던 점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
    .
    .
    '언젠가 정신차리면 난 잘 될거라는 근자감.'
    .
    .
    .
    그래서 입대하며 목표를 하나 세웠다.
    그 언젠가를 '지금'으로 만들자고.
    사람들이 군대가면 철든다고 했으니까, 나도 가능할꺼는 믿음으로.
    .
    .
    .
    .
    .
    .
    군대에 입대한 나는 평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책을 읽었다.
    만화로 된 삼국지에, 먼나라이웃나라 말고는 읽어본 적 없던 내가 책을 읽었다.
    .
    .
    .
    불빛이 나오는 볼펜을 빛삼아 이불 속에서 읽었고,
    미니책을 사서 다들 담배피러 간 사이에 책을 읽었다.
    읽는 속도도 느렸고, 이해도 바로바로 되진 않았지만 무작정 읽었다.
    .
    .
    .
    그렇게 조금씩 책을 좋아하게 됐다.
    TV에서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를 해도,
    주말에 낮잠 잘 수 있도록 자유시간을 줘도,
    나는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
    .
    .
    .
    .
    그리고 한자 시험을 준비했다.
    조그만 수첩에 글자를 적고, 틈만 나면 손에다, 땅에다, 밥에다 글씨를 썼다.
    .
    .
    .
    일병이 개념없이 공부한다고 욕먹는게 싫어,
    모두가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가서 공부를 했다.
    남들보다 2시간 늦게자고, 1시간 일찍 일어나면서 매일 책을 읽고, 한자를 공부했다.
    .
    .
    .
    그때부터 마음편히 공부할 수 있는 병장이 될 때까지,
    화장실은 내 독서실이고, 공부방이 되었다.
    .
    .
    .
    .
    .
    .
    돌이켜보면, 청주에 있던 군부대에서,
    내 나이만큼 오래된 89년에 지어진 컨테이너박스 화장실에서,
    처음으로 나를 믿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
    .
    .
    .
    1년이 지나 상병이 되었을 때,
    내게는 책 100권 리스트와 한자 3급 자격증이 있었다.
    .
    .
    .
    시간이 지나 병장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수능 시험을 치뤘고,
    .
    .
    .
    군대를 제대하던 날,
    73kg이 된 내 손에는 책 200권의 리스트와 한자 2급 자격증이 있었다.
    그리고 후임들과 상사분들에게 "이 독한 XX...잘 살아라!"라는 말을 들었다.
    .
    .
    .
    .
    나는 독하게, 어제의 나를 넘어서면서 2년 1개월을 살았다.
    제대 후에도 나는 매일 4시간씩 자면서 독하게 살았다.
    .
    .
    .
    .
    .
    시간이 흘러 나는 많이 나태해지고, 나약해졌다.
    그리다 문득 다시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
    .
    .
    .
    .
    다시 그때처럼 독하게 살고 싶어졌다.
    나를 믿고, '꿈'을 꾸던 그때처럼,
    .
    .
    .
    그래서 오늘 나는 스물 한 살 그때처럼, 다시 글을 적었다.
    .
    .
    .
    .
    .
    .
    .
    '나는 독하다. 난 뭘해도 될 X이다.'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5
JST 0.029
BTC 64440.63
ETH 2653.79
USDT 1.00
SBD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