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람 3명 죽인 재벌기업 질소가스 사고, 벌금형이라니

in #kr6 years ago

SK하이닉스 산재사고 솜방망이처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절실

최근 2015년에 발생한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질소가스 사고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 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SK하이닉스 임직원 6명과 법인 등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들과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판결인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유지했다. 이 사고는 질소가스 질식에 의해 3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한 중대재해로 SK하이닉스가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려다 대형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았다.

SK하이닉스 공사 일정 20일 앞당기고 무리하게 시운전 진행
질소 투입하고도 하청 노동자들에게 사실 알리지 않아
3명 사망 전까지 1년 간 3차례 가스누출 사고, 처벌 받지 않아

원심에서 법원은 상무 김모씨 등 3명에게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 설비 책임자 한모씨 등 직원 3명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SK하이닉스 법인은 벌금 500만원, 설비업체 법인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조사에서 SK하이닉스는 공장을 빨리 가동해 수익을 내려고 공사일정을 20여일 정도 앞당기면서 무리하게 시운전 진행 중 사고가 발생한 것이 밝혀졌다. SK하이닉스는 사고 전날 반도체 생산에 사용된 가스 등 유기화합물을 연소해 배출하는 시설에 공기공급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임시로 질소를 하루종일 공급했다. 하지만 질소를 투입하고도, 사고 당일에 시설 내부를 점검하러 들어간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질소에 질식해 숨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하청 업체에 위험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노동자들한테는 관련 정보가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이 사고 이전에도 SK하이닉스에서는 수차례 가스누출 사고가 있었다. 질산 질식사고 일주일 전에는 이천 하이닉스 반도체 크린룸(M10A라인)에서 가스가 다량 누출돼 전원이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 2015년 3월에는 해당 라인에서 절연제 용도로 쓰이는 지르코늄옥사이드 가스가 누출돼 13명이 경상을 입었다. 2014년 7월에는 D램 반도체 공정라인에서 이산화규소 가스가 누출돼 작업자 2명이 병원치료를 받은 바 있다. 3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최근 1년 간에만 3차례나 가스누출 사고가 있었고, 15명이 부상했지만 SK하이닉스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특히 사측이 산업재해보고도 하지 않았지만 노동부는 어떠한 권고나 징계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3명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살인행위다. 또한 산재사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살인 방조나 마찬가지다. 책임과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최소한 반복되는 사고는 막을 것이다.

최근 사망사고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 발생
하청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한 원청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
사법부는 위험 외주화와 사고 책임전가의 동조자

촛불혁명에 의해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와 전쟁을 하고 있다. 최근의 사망사고는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하청, 비정규노동자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대기업은 하청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고,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에 대한 원청의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기업의 최고책임자나 원청 대기업은 처벌에서 모조리 빠져나가고 있다. 사법부는 위험의 외주화와 사고 책임전가의 동조자인 것이다.

우리의 법체계상 사고를 유발한 조직과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점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관의 재량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것이 문제다. 무분별하게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도 원청이 지지 않는 현실에서는 제2의 구의역 참사, 제2의 메르스, 가습기살균제 참사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라고 하였고, 산업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하지만, 실제 기업처벌 과정에서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경우는 법원이 검찰 구형과 달리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2016년 메탄올 실명사고는 검찰의 항소에도 기각 처리되었고, 고려아연 황산누출사고는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원청에게 있는 상황에서도 하청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내렸다. 2017년 M5532번 7중 추돌사고는 검찰이 경영진을 기소하거나 구속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사고 때만 언급 반복

이번 SK하이닉스 질소가스 사고 판결은 위험이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을 또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기업처벌에 있어 법관의 재량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 없이 처벌 강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위험에 대한 비용이 노동자·시민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 관료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를 유발한 기업과 정부에 조직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미 20대 국회에 2명의 의원(노회찬, 박주민)에 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발의되어 있다.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이 법은 사망사고 때만 반짝 언급되고 마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하반기 국회에서는 제정 흐름을 만들고, 실제 입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탐욕스런 기업들에 의한 구조적 살인을 막아내는 일에 노동자와 시민이 힘을 모으고, 국회는 이 시대적 요구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 기사 :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사무국장)
  •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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