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연애] 권태기로 고민하는 당신에게

in #kr6 years ago

[하루키와 연애] 권태기로 고민하는 당신에게

연애를 할 때마다 3개월을 못 넘기던 내가 여자친구와 3년쯤 사귀었을 때 쯤이었나? (그녀와는 5년을 만나고 헤어졌다.) 주변에 내 지인들은 나만 보면 안부를 묻듯 이렇게 물었다. "야, 안질리냐?" 아마도 녀석들은 갑자기 장기 연애를 하는 내가 신기해 보였거나 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질리긴, 난 아직도 좋은데?"라고 대답을 했다. 녀석들은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동일한 자극에 분비되는 호르몬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30개월이라며 내게 정신차리라고 했지만 난 정말 3년이 지나도 그녀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는 3년이 넘었기에 더 좋았다. (정말로!)

나이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즐거운 철인 3종 경기, 무라카미 하루키


당신도 물이 절반 담긴 물컵 이야기를 알 것이다. 똑같은 물이 절반 담긴 물컵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물이 절반 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당신의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한잔의 물컵을 바라보는 것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분이 다른데 연애는 어떻겠는가? 당신이 연애를 단순히 가슴 설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오래된 연애 혹은 자연스러운 권태기가 사형선고 만큼이나 끔찍할 것이다. 설렘이 연애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설레지 않으니 이건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안 들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한 2년쯤 만났을 때, 데이트를 하는 게 나이 든 교수의 행정학원론 수업을 듣는 것만큼 지루하다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한 달 정도는 실제 행정학원론 수업 때 그랬던 것처럼 대충 출석? 만하고 딴짓을 하거나 별의별 핑계를 대며 출석조차 하지 않기도 했다. 셀렘이 없으니 당연히 헤어지는 게 맞다 생각했고, 헤어지자는 말을 할 구실을 찾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이별을 결심하고 그녀를 자주 가던 이자까야로 불러냈다.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메뉴판을 펼치고 항상 함께 먹던 메뉴를 주문을 했다. "여기요, 월계관 준마이 750, 꼬치 5종 세트, 타코와사비 주세요." 너무나 웃기게도 그 한마디에 헤어지기로 했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동안 연애는 설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서로를 잘 알고 편한 감정도 연애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녀가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경험은 뭐랄까 정말 기적과 같았다. 방금 전까지 헤어지려고 했다가 갑자기 사랑에 충만해지다니!

이제 데이트가 별로 설레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달리 생각하니 괜한 부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뭔가 대화할 소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만큼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남들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이뿐인가? 이젠 딱히 머리 아프게 데이트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알아서 이번 주엔 영화 다음주엔 서점 그러다 가끔씩 전시회 등 나름의 질서 있는 데이트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이 바뀌니 갑자기 그녀가 사랑스러워지고 또 한없이 소중해졌다. 나는 갑자기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을 하고 그녀 옆으로 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물론 그녀는 더우니까 저리 비키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 난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인데 에너지는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일 없이 열, 전기, 자기, 빛, 역학적 에너지 등 서로 형태만 바뀌고 총량은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시켜보자. (사랑도 일종의 에너지 아닌가!?) 처음 시작은 설렘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설렘은 줄어들지만 대신 편안함, 신뢰, 친밀감이 늘어난다.

"쉽게 말해 당신이 상대를 사랑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달리할 뿐인 거다."

권태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권태기는 노화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당신이 권태기를 두려워하면 할수록 당신의 연애를 어두워져만 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거다. 어쩌면 이런 나의 말들이 말장난처럼 느껴지겠지만 권태기를 맞은 당신에겐 매우 중요한 말장난이다.

앞서 말했듯 어떻게 생각하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감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당신이 연애를 설렘으로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누구와 연애를 하든 항상 설렘이 줄어드는 필연적으로 이별할 수밖에 없는 연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당신이 생각만 조금 바꾸면 설렘으로 시작해서 편안함, 안정감, 신뢰, 친밀감 등의 다양한 감정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연애를 즐길 수 있을 거다.

바쁜 스티미언들을 위한 요약

결국 모든것은 관점의 차이다. 권태기를 열정이 식어버린 것으로 보느냐, 드디에 서로에게 편안한 관계에 도달했느냐에 따라 권태기는 당신에게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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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관점의 차이인것 같아요.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어서 단지 설레임이나 뜨거운 사랑만이 늘 최고는 아닌 것 같아요. 권태기나 익숙함의 시간이 여러 생각을 하고 이끄는 방향으로 더 나아갈수도 아닐 수도 있게 성숙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해 당신이 상대를 사랑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달리할 뿐인 거다."

이런식의 발상은 안해봤는데 ㅎㅎ
다음번 연애할때는 권태기가 오더라도 조금더 성숙한 자세로 극복할수 있을거 같네요!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그래도 다음 권태기는 또 왔고 또 오죠.................

전 여러번의 연애동안
아직 권태기는 못느껴본것같아요.
권태기보다는 실망을 느낄때 헤어진거 같은데
실망도 결국 관점이 문제이지 않나싶네요.

함께하고자하는 마음이 더 크냐 작으냐에 따라서요..:)

5년 차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달달한 로맨스가 필요할 듯한 위험한 생각을 심어주십니다...ㅎㅎ
그 앤트로피 증가의 법칙도 있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형 글 매우 잘봤어요!! 이제 형이라고 부를래요 ㅎㅎㅎ 잘봤어요 진짜로.

엔트로피란 우주 내부 어떤 시스템에서 생기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에너지로 변화하는 량의 척도이다.

결국 유용한 에너지도 언젠간 무용한 에너지로 변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관점의 차이겠죠 이것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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