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uple Time #2] 한숨 같은 목소리, 유언 같은 노래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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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 방향으로 200m쯤 떨어진 삼거리에 레코드포럼이라는 음반점이 있다. 아니, 있었다. 소위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산 증인이 되어 이리저리 옮겨다닌 끝에 작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사람이 너댓 명만 들어차도 운신을 하기 힘들 만큼 작은 가게였지만, ‘있었다’는 과거형이 어색할 만큼 오랫동안 홍대 앞의 랜드마크였던 곳이다.

사실 레코드포럼은 홍대 앞을 좀 다녀봤다는 사람이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삼거리의 어느 방향에서 진입하든 길을 건너거나 지나려면 걸리는 절묘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길거리 쪽으로 들리도록 매일 크게 틀어놓는 이름 모를 음악들은 구구절절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지나가다가 음악에 이끌려 들어가서 음반을 손에 쥐고 나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걸 감안하면, 한마디로 탁월한 판매전략이었던 셈이다. 레코드포럼 음악 들으려고 맞은편 커피빈 야외테이블에 종일 널브러져 있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나도 홍대 앞을 대략 15년 이상 닳도록 드나든 사람이지만, 정작 레코드포럼에 들어가서 음반을 산 건 단 한 번뿐이다. 아마도 2010년의 어느 비오는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덜너덜한 기분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늘 그랬듯 레코드포럼 앞을 그냥 지나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나를 붙잡았다. 마치 둔탁한 베이스 음이 진창처럼 들러붙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되돌아와 가게로 들어갔고, 지금 나오는 음악 누구 거냐고 묻지도 않고 CD를 달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때 내 수중에는 정확히 현금 2만 8천 원이 있었고, 꽤나 비쌌던 그 수입음반의 가격은 2만 8천 원이었다. 라사 데 셀라(Lhasa de Sela)라는 이름의 그녀가 멕시코계 미국 싱어송라이터이며,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유방암으로 죽은 지 얼마 안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앨범을 사서 한참 듣고 난 뒤의 일이다. 유작이 된 이 앨범에는 마지막을 앞둔 그녀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것도.

요절하거나 생이 파란만장했던 뮤지션들의 음악에 장식처럼 붙는 도식화된 표현을 싫어한다.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냥 그게 쿨한 태도로 보이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왜 일찍 죽은 사람들의 어떤 노래는 예외 없이 유언처럼 들리는 걸까. 엘리엇 스미스도, 비올레타 파라도, 김광석도. 그녀의 한숨 같은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자 어떤 의미도 없지만, 그래도 생각하게 된다.

음악에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허상인지도 모른다. 사실 음악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나 죽음이 노래에 흔적처럼 새겨지고, 그게 듣는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것까지, 그리고 그 힘을 기꺼이 믿는 사람들까지 굳이 방해할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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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는 건 글로 표현하기 참 힘든 것 같아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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