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8: 측은지심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in #kr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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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8: 측은지심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용서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행동이 아니다.

미움을 어찌 잊을 수 있을런지?

잊으려 들면 더욱 기억되는 것이 미움이다.

그러니 용서는 한순간에 끝나는 감정이 아니다.

용서는 끊임없이 닦고 또 닦아야 하는 덕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용서에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용서 훈련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용서란 삶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도

평온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서 불쑥 솟아나는 화를 다스리고,

우리의 상처 받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용서라고 말한다.

용서는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용서했다는 순간의 결심이 매일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내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과정, 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극복해 가는 매순간이 모여서 용서라는 인간의 위대한 행위가 완성되는 것이다.

측은지심 도 노력이 필요하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

惻 : 슬퍼할 측
隱 : 근심할 은
之 : 의 지
心 : 마음 심

다음은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가운데서 나오는 말로,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있는 말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智之端也].

이 말은 맹자가 독창적으로 주창한 인성론으로서 ‘사단설’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한다. 성선설이란 사람의 본성은 ‘선(善)’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확충작용에 의해 덕성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 4단(四端)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맹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왕도정치인데, 이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보고, 그 마음을 확대하여 나가면 ‘인의예지’ 네 가지 덕을 완성하여, 다시 이 덕행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왕도정치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왕이 먼저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여,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마치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굴림과 같이 아주 쉽게 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며 성선설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진다.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하여 그러는 까닭도 아니며, 그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맹자는 사람들은 다 차마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앞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즉,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 근심하고 깊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반드시 달려가 구하려고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근본 마음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동정 (Sympathy), 연민 (Compassion) 그리고 감정이입 (Empathy)

측은지심을 한글로 번역하면 어떤 단어가 제격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연민, 동정보다는 감정이입 (상대방 감정의 완전한 이해)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정이입은 타인(他人)이나 자연물(自然物) 또는 예술 작품 등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이입시켜 자신과 그 대상물과의 융화를 꾀하는 정신작용입니다.

용서도 훈련을 받아야 하듯이 측은지심도 훈력을 해야 할겁니다. 타고난 착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사용하지 않았다면 마음 속에 숨어있던지 감춰져있으니 노력을 해서 찾아야 할겁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보다는 우리들의 감정이나 정신을 이입시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측은지심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고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이해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동정이나 연민은 이해하는 과정없이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이지도 않습니다.

이해를 한다면 소통도 가능하고 다음 단계로 발전을 할수도 있을겁니다. 맹자가 왕도정치를 원했다면 왕에게 백성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원했을겁니다. 그리고 맹자는 왕들에게 측은지심을 느꼈어야 하는데, 전국시대의 왕들은 맹자에게 왕도정치보다는 부국강병의 방법을 원했습니다.

15년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왕도정치에 대해서 유세해지만 이상적인 왕도정치보다는 현실적인 부국강병을 택했던 전국시대의 왕들에게 맹자는 측은지심을 느꼈을까요, 용서를 했을까요 아니면 왕도정치를 안하는 왕들에게 분노를 느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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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서에 대해 말을 해도
여전히 어려운 덕목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 하셨지만
한 번의 용서에도 걸려 넘어지곤합니다.
측은지심도 내가 아닌 상대를
온전히 내 마음 가운데 놓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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