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하여: 콥트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기독교에 대하여: 콥트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펌) 위키백과
콥트 교회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주교제의 기독교 교파를 말한다.
콥트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복음사가 마르코가 1세기경인 42년에 알렉산드리아에 교회(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만 인정하는 단성설 신학으로 인해 로마 교회와 분리되었다. 콥트 교회는 신학적으로는 수도원 운동 등의 초대교회(고대교회) 신앙과 전통을 보존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들의 콥트어 성서는 성서학적으로 가치가 큰 고전 문헌이다.
현재 이집트,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미국, 리비아, 오스트레일리아에 콥트 기독교도가 있다. 이집트 국민의 10%는 기독교 신자인데, 이들 대부분이 콥트 교회에 속한다. 20세기에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분리했지만, 교리상의 차이는 없다.
또한 가톨릭 콥트 교회는 동방 가톨릭 교회이며 다른 조직이다.
교회의 수장은 알렉산드리아 콥트 정교회의 교황으로 불리며 현재 교황은 2012년 착좌한 타와드로스 2세 이다.
오리엔트 정교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고백하고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경배한다. 「마태 복음」에 성가족의 이집트 탈출의 기사가 있기 때문에, 콥트 교회의 마리아 경배는 매우 활발하다.
이 교회들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단죄 받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에 흡수되었으며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느님이시다"라는 소위 단성론 신학을 받아들인 교회들로 알려져 있으나,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하는 많은 교회들은 비 칼케돈파이면서 동시에 단성론 역시 이단으로 취급한다.
현재는 칼케돈파 교회(성공회,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개신교회)와 신학적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져 칼케돈-비 칼케돈 교회들 사이에서 많은 분야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완벽한 성사교류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으며 일부가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 심지어 개신교로 귀일하는 경우는 있다.
이들 교회의 본고장은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이슬람교가 거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수자로 여겨지고 있다.
시리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는 "안티오키아와 전 중근동의 총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교회로 이 교회에서 단성론 신학을 크게 발전시킨 사제"야코부스 바라데스"의 이름을 따서 흔히 "야코부스 교회(Jacobite Church)"라고 불렸다. 그러나 현재 시리아 정교회에서는 이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들을 "Syrian(Syriac) Orthodox"라고 불리길 원한다. 안티오키아 전례에서 유래한 서 시리아 전례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도 토마스 이래 뿌리를 내려 온 인도의 기독교 교회들 중 가장 오래된 집단들도 시리아 정교회 계열로 분류된다.
이집트 콥트교회: 이집트 콥트교회는 "알렉산드리아와 전 아프리카의 총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교회로 이 교회에서는 고대 이집트 교회가 가지고 있던 전통을 많이 지니고 있다. 특히 이 교회에서 사용하는 콥트어는 고대 이집트어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집트 콥트교회 역시 그리스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처럼 '교황'이라는 직함을 사용하며, 알렉산드리아 전례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콥트어 전례를 사용한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70인 사도 중 성 타대오의 선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이며, 313년 최초로 국교 지위를 받아 아르메니아의 국가교회로써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아르메니아 지역의 전통 교회로 원래 터키 킬리기아 지역에서부터 현재 아르메니아 지역까지 넓은 교세를 지녔으나, 아르메니아가 여러차례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현재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주로 신봉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외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 레바논 등지에도 주교와 신도들이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6세기 드진 공의회에서 칼케돈 신조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원래 이집트 콥트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휘하에 있던 교회였으나 후에 독립하여 현재 "에티오피아의 총대주교"가 수장으로 있다. "테와히도"라는 말은 "하나로 만들어진, 통일된"이라는 뜻의 게즈어로 그리스도의 본성이 하나라는 그들의 믿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에티오피아 제국에서 국교로 신봉하였으며 에티오피아 황실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군부의 쿠데타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에티오피아 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신도이며 독특한 그들만의 교회 문화와 이미 일상에서 사어가 된 게즈어를 보존하여 에티오피아 문화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인도의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에리트레아의 에리트레아 테와히도 정교회 등이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한다.
이 교회들은 모두 완벽한 성사교류와 교회일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지체(Communion)을 이루고 있어, 동방 정교회와 거의 비슷한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론'을 위시로 신앙의 일치를 이룬 네 개의 교회는 서로간의 활발한 교류가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 수장 착좌식에 서로 대표단을 파견하여 주교 안수때 참석하기도 한다.
콥트어( Met.Remenkīmi)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고대 이집트어의 직계이다. 후기 이집트어, 현대 이집트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스 문자에 이집트 신관문자, 이집트 민중문자에서 비롯된 몇 자모를 더한 콥트 문자로 표기된다. 17세기 무렵에 구어로서의 수명은 다했으며, 현재는 콥트 교회의 예배 언어로 사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어받고 있으나, 콥트 교회에 대한 탄압과 아랍어의 일상화로 사멸될 위기에 놓여 있다.
콥트어는 이집트인의 본래의 모국어이지만, 현재는 구어로는 거의 사멸 상태에 있는 언어이다. 이러한 경향은 7세기 이슬람의 이집트 정복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이집트인은 동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공용어인 그리스어와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상언어로서 초기 콥트어를 사용하는 바이링구얼(이중언어)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침략과 정복을 통해 아랍어가 행정적인 공용어로 쓰이면서 이전의 그리스어를 대신함에 따라 이집트인은 새로운 바이링구얼에 노출되었다.
그후 약 3세기 ~ 4세기 동안은 콥트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아랍어를 공적인 언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구얼 상태(때로는 과거의 공용어인 그리스어를 첨가한 삼중언어 상태)를 계속하다가 점차 아랍어가 득세함에 따라 모국어가 대체되었다. 하이집트에서는 늦어도 11세기까지 아랍어가 콥트어를 대신하여 지배적이 되었으며, 상이집트에서도 14세기 무렵에는 아랍어가 지배적인 일상적인 언어로 쓰이게 됐다. 이집트 아랍어는 이 과정에서 다소의 차용어를 콥트어와 그리스어에서 받아들였지만, 그것 이외에 거의 이들의 기층 언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콥트어는 상이집트에서 17세기까지 콥트 정교회 공동체 사이에서 일상 언어로서 또 전례 언어로 유지되었다.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와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콥트어에서 신성 문자해독을 시도하고 이집트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슬람 정권의 압력으로 점차 콥트어는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사라지는 교회의 작은 의례 등에서 사용될 뿐이었다. 현재는 콥트어의 부활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일상 언어로 콥트어를 사용한 가정은 상당히 적으며, 기록 언어로서의 미래도 불확실하고 있다.
콥트교회가 이런거였군요~
의복들이 특이해서 궁금했었는데 알게되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