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시간인가: 한병철 <시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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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현대 사회의 특정 현상을 '질병'으로 지목하곤 한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시간의 질병이란 시간에 떠밀리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그 대안으로 느리게 살기가 열풍이다. 그러나 '느리게 살기는 하나의 증상일 뿐. 증상으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한병철은 현대 사회의 시간에 무게를 더해주는 의미의 중심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된 결과 활동적인 삶(vita activa)이 절대화 되었기 때문이다. '의미의 중력'이 사라진 곳에는 휘발적인 시간만이 남았다.

인간은 시간을 정복하고, 공간을 소유한다. 그렇게 신의 자리에 선다. 그러나 삶을 정복하지는 못한다. 삶이란 것이 '불시에' 죽음으로 인해 끝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대자의 자리에 선 인간은 사실 '작은 점'으로 '쪼그라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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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현대인에게 밤은 공허하고, 불안하다.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유한성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대체된 오늘날, 현대인들은 속도를 높여 달린다. 가속도가 붙은 삶은 무수한 쾌락을 선사하지만 쾌락은 금세 증발한다. 그렇기에 또 다른 쾌락을 위해서는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전보다 더 빠르게.

끝은 없고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이다. 가능성을 마주하고, 도전하는 삶은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추앙받는다. 영원히 마무리 되지 않는 가능성, 우주처럼 무한한 그 공백과 허무 속에서 매일의 밤이 초조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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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서 의미의 구조들이 떨어져 나간다면 '시간은 원자화되고, 평면화되고, 희석되고, 단축되어 버린다. 그렇게 시간의 향기도 사라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정보다. 정보는 이야기에서 시간을 뺀 것이다. 정보에는 향기가 없다.

이제 시간은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은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만 쓸모가 있다. 역사의 의미만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p.42

시간이 전보다 빠르게 가고 있다면,사건들이 경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이야기들이 단순한 연대기로 대체된다. 그렇게 사건들은 이야기되지 않고, '나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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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시간은 '앞으로 쏘기'였다. 근대는 목표를 향해 걷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동떨어져 있는 현재를 추동하는 건 압(박)력이다. 목적이 없는 포스트 모던은 어떤가. 한병철은 바우만의 이야기를 들어 이야기한다. '더 이상 현대에는 산책자도 방랑자도 없다'고. 유유자적함이나 경쾌함이 사라진 곳에는 '조급함, 부산스러움, 불안'이 잡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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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자유는 '사랑하다'는 어원을 갖는다. 따라서 보편적인 통념과는 달리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자유-관계는 삶의 풍성함을 위해서라면 이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한병철은 이를 위해 '사건의 수'가 아닌 '지속성의 경험'을 강조한다. 시간의 향기가 깃든 순간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향기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한별철은 '사색 중심의 삶'을 제시한다. 그러나 시간과 인간이 애초부터 구조 속에 잠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증상'으로 질병을 치유하려는 일은 아닐런지. 그러므로 관건은 어떻게 궤도를 이탈할 것인가와 더불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궤도를 이탈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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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자유를 찾기란 어떤 목표를 좇아야한다는 압박이 아닌 유유자적함이겠네요. 한병철교수님 책이 다 너무 좋아요 😊

저는 이번에 막 읽기 시작했는데 유명해지신 이유가 있는 거 같더라구요. 글이 묵직하면서도 말랑말랑 한 거 같아요 ㅎㅎ

2, 3번 글은 특히나 와닿는 구절이 많네요.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이 분 책을 몇권 읽었는데,,,제겐 너무 어려워서 정말 책 한권 거의 줄을 친건 같아요. 읽으면서 이걸 잘 이해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어요. 이 책은 제가 읽기 전에 책이네요. 동생이 추천했던 기억이 나요.

사색을 해야 하는 제게 꼭 필요한 책인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잘 이해가 안되는 문장은 두 어번 읽어보고 그냥 넘어갑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이해가 될 때가 있더라구요ㅎㅎ

mmerlin님이 thewriting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mmerlin님의 [스팀방송국] 어느 날, 갑자기.. 총수님들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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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읽을 땐 꽤 오래 꼭꼭 씹어내려갔는데, 이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흥미로운 글 감사해요. 내일 서점 들려야겠어요. ㅎㅎ

음. 저는 <피로 사회>를 읽어봐야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