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과정

in #kr7 years ago (edited)

어렸을 때 익혀두면 사는 데 유용한 스킬들이 있다. 맛있게 라면을 끓이는 법, 신발 끈을 잘 묶는 법, 정리를 잘 하는 법 같이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유용한 것들 말이다. 못한다고 해서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익혀두면 꽤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많다. 이런 일들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잘 풀고, 좋은 직장에 가는 게 더 훌륭한 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더 유용한 것은 어릴 때 배우는 사소한 일들이 아닐까 싶다. 배워두면 유용한 스킬 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 타기'일 것이다. 유원지에 놀러가서 자전거를 빌려 이리저리 바람을 만끽하며 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어렸을 때 배웠어야 했는데 내가 배우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두발자전거 타는 법이다. 세발자전거도 타봤고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도 타봤지만, 진정한 자전거라고 할 수 있는 두발자전거(bicycle)는 어떻게 타는지 배우지 못했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끝내 내가 타던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뜯지 못했다. 뒷바퀴 양쪽에 달린 작은 2개의 바퀴가 나를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게 좋았다. 혹여나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를 타다 무릎이라도 까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기 때문에 끝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자전거에 치여서 다친 일때문에 막연히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같다. 4살 때 쯤 동네에서 놀다가 몇 살 위의 동네 아이가 타고 지나가던 두발자전거에 치인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이라 치인 순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무릎 뒤 쪽이 모두 까져서 앉아있기도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이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자전거 타기에 도전을 못한 것은 아닐까.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가면 나만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상황을 종종 마주했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에 앉아보게 되었다. 두발 자전거를 타고 비틀거리며 연습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결국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그 이후로 한참동안 자전거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완벽히 익히기 전에 타는 것은 역시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해지기 전 연습을 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야만 한다는 게 딜레마였다.

작년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자전거를 잘 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 자전거까지 샀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종종 자전거를 타면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페달을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브레이크는 어떻게 잡는지 같은 것들은 연습했다. 매번 자전거에 오르기 전 내가 과연 중심을 잡고 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어찌어찌 어설프게 자전거를 타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무언가 서툰 일,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중간에 좌절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용기를 내는 와중에 좌절을 맛보면 더 쉽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에 자전거를 연습하던 중 작은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친구의 실수로 인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고 만 것이다. 넘어지는 게 싫어서 그렇게 조심조심 신경을 쓰면서, 온 몸이 긴장한 상태로 타고 있었는데 너무 허무하게 친구와 부딪혀 넘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동안 다시 자전거에 오르지 않았다.

넘어진다는 건 늘 아픈 일이다. 쉽게 넘기기 힘들다. 더구나 넘어진 후에 일어나서 다시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넘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는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확실하게 탈 줄 안다고 얘기할 수 없다. 그 동안 몇 번 연습을 했었으니 내 몸이 타는 법을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자전거를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절대 없다. 자전거 타기는 거의 20년 동안 배우지 못한 일이다. 거의 20년 동안 넘어지고 있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 늘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일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타기를 계속해서 정복하지 못한 일로 남겨두면 어떨까?'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넘어졌을 때 그 좌절을 잘 견디는 게, 그 다음 다시 일어나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들 일어나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지만, 사실은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다시 일어서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저 말에 묻혀 이런 사소한 진실을 잊고 지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고, 증거가 없으면 보지 못한다. 그렇게 단순한 게 사람 사는 일이다. 그래서 넘어지는 일은 힘들고 일어나는 일은 더 힘들다는 증거로 자전거타기를 남겨두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큰 좌절을 맛봤을 때, 이걸 이겨내는 건 원래 힘든 일이니 지금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할 수 있게 말이다.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것도 그렇게 아픈 일이었으니 이런 좌절에 아픈 게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게 말이다.

앞으로 살면서 수없이 넘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넘어진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넘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20년 째 자전거를 타며 넘어지고 있지만 아직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 사는 것도 자전거타기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틀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바람을 만끽하는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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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렇게 엄청난 글을 쓰시는 작가분을 아직도 몰랐다니... 제 불찰입니다. 이렇게 백일장으로나마 알게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수없는 실패를 딛고 일어난 뒤 맛보는 성공은 가치를 메길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현인들과 선대 지식인들이 그것을 증명해주셨지요 ..ㅎㅎ

@tangerine 님의 자전거 타기와 삶의 목표한 바들을 응원합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과찬이십니다ㅎㅎ읽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올리다보니 보팅을 많이 받는 것도 좋지만 댓글이 달렸을 때 가장 즐겁더라구요.

이렇게 풍성한 글을 써주셨는데 잘 읽었으면 감사의 글을 남기는게 당연하지요 ㅎㅎ 앞으로 더 큰 관심을 받으셔서 항상 즐겁게 스팀잇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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