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익 이야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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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 이야기를 하려면 군대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정말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살다가 20살의 빠른 나이에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의무병으로 입대했는데 자대에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토익공부를 하겠다고 책을 가져왔다.

갓 전입온 이등병이 일 배울 생각은 안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선임들이 보기에 안좋았을까?

정말 크게 혼난 후 공부는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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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이 되었다.

부대에 대해서 모든것을 알고 자유롭게 내 하고싶은것을 할 수가 있었다.

일과중에는 하루종일 기타연습을 했고

10시 취침점호 후에 12시까지 도서관에서 독서 연등이라는 이름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매일 2시간마다 영어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에 14시간도 공부했던 나였는데,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를 한건지, 아니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는척을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것은 남들 잘때에 2시간씩 책을 더 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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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앞두고 말년휴가를 나가서 라섹 수술을 했다.

첫날부터 앞이 안보였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프면서 앞이 안보였다.

뭘 할 수가 없었다

군대에서 혼자 생각 많이 하고왔는데 혼자 생각하는것 말고는 할게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앞이 조금씩은 보이기 시작했고 선글라스를 끼고 외출 할 수 는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토익학원에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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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강의도 많고 강사도 많았다.

목표 점수대에 따라 강의가 다양했다

내가 학원에 도착하고 얼마 후에 850점을 목표로 하는 반의 수업이 있었고 그 수업을 듣기로 한다.

결제를 하고 바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하나도 아무것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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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세상과 단절되어 군대에 있었다.

"예" 보다는 "알겠습니다" 가 익숙하고

"네?" 보다는 "잘 못 들었습니다?" 가 입에 붙어 있는 나였다.

위계질서만 존재하던 군대에서 상관 혹은 후임과 대화를 하던 내가

젊은 여자 강사의 수업을 알아 듣는다는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든 느낌은

설국열차에 부정승차한 승객이 된 기분이었다.

정말 빠르게 궤도를 달리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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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강사는 나를 불렀다.

"오늘한거 part 6,7 오답해오시구요, 단어 이거랑 이거 외워 오시고 part5는 문제 뽑아서 다 풀어오세요. 문제는 인터넷 사이트 ~~~~~~에 있고 아이디랑 비밀번호는 ~~~니까 들어가서 뽑아오시면 되요."

..........

"제가 하는말 알아 듣고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part5 는 뭔줄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여기 왜 왔어요?"

...................

"여기 왜 왔어요?"

전역을 앞두고 말년병장의 신분으로, 라섹수술을 해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상태로 공부를 해보겠다고 학원을 찾은 나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그리고 강사는 깊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니 오늘 하루종일 해야할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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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속에서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군대에서 병장이었던 나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존심이 정말 상했고, 더욱이 내일 수업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게 더 큰 문제였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우리집 앞 지하철역 벤치에 앉았다

오늘 배웠던 것과 강사가 시킨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정리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2년이라는 공백이 이렇게 컸던걸까?

그렇게 약 1시간동안

지하철역 벤치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이렇게 힘들면서 사회에 적응 할 수 있을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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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해서 달렸다.

한번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공부했다.

9시반부터 11시까지 수업이었는데 11시부터 해가 질때까지 과제를 했다.

사실 남들은 2~3시간이면 끝나는 과제인데, 나는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또 강사는 수업시간마다 나의 태도를 지적했다.

평일 오전반이었기 때문에 나이대가 높은 취준생들이 많았는데 나를 혼내며 반의 분위기를 잡은것 같다고 할까?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해도

나오지 않는 성적에, 결과에,

강사에게 칭찬도 받고 싶은데

항상 꾸짖기만하는 강사가 밉기도 했지만 그냥 그렇게 계속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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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인 신분이라는걸 밝히지는 않았다.

말년 휴가때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전역을 위해서 부대에 복귀 해야했다.

그때 강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 내일 군대 가야해서 못와요."

"예비군 가요?"

"아뇨 전역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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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식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지금 이 순간" 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향하는데 참 많이 울었다.

공부를 하루라도 더하기 위해

말년 휴가때 놀지 않고 공부를 했던 나인데

이날 하루만큼은 쉬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날 묶어 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 (지금 이순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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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날부터 다시 공부를 했다

달리고 달렸다.

문제를 풀고 음성을 듣고 지문을 읽고 단어를 외웠다.

성적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커졌다.

그리고 1달반쯤 공부를 한 시점에서 첫 시험을 치러 간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정말 실망스러운 성적이 나왔다.

정말 첫 시험이었기 때문에 시험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일까, 아니면 긴장을 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걸까?

결과는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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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실망하지 않았다.

계속 공부했다.

2주후에도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2주후의 시험에서 말도 안되는 성적을 받았고

그 성적으로

지난 3년간 교환학생을 포함한 정말 많은 대외 활동에 참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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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그 설국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서면으로 갔다.

3년전 내가 들었던 음악을 들으며 ㅋㅋㅋ

"내 과거는 어렸지 그리고 난 아직도 22" 라는 가사의 노래를 참 좋아했는데 22살의 청년은 어느새 25살이 되어있었다.

설국열차에 올라탔다.

어땠을까?

열차의 속도는 여전히 빨랐는데

열차의 크기가 작아진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커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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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싫음을 측정하는 어떤적인 수치가 있다면.

22살의 나의 수치는

지금의 나의 수치의 몇배는 될건데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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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학원에 간다.

스스로를 조이기 위해 아침 수업을 신청했다.

공부하자

아마 어쩌면

내 인생에서 토익성적으로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을 찬스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

최고점 한번 찍어보자.

내일도 가즈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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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다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ㅎㅎ

스티미언 여러분들도 내일도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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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환경속에서 출발하였으나..
결국 결과마저도 낙심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이제서야 돌아보면
그러한 일들마저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게 아닐까 싶네요

속된말로 이렇게 포스트를 기재하는것도 포함해서 말이죠(소곤)

그렇게 시작하셨네요.
좋은 성과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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