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0 가족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망.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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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할머니가 조금 더 건강하셨을 때. 왜 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신다. 내가 말라위에 가 있는 사이 할머니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몇 개월 동안은 아버지께서 돌보셨는데 아무래도 힘에 부쳐서 요양원에 가시는 것으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요양원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서운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올라가서 4월까지, 할머니와 지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게 조금 각별하다.

어제 아버지가 지내시는 곳으로 가는 길에 요양원에 들렀다. 이모할머니(할머니 여동생)도 같은 곳에서 지내고 계셨다. 그래서 조금 안심은 됐다.

도착한지 10분만에 아빠가 이제 가자고 했다. 엄마가 5분만 더 있자고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만 같이 있다가 나왔다.

나오면서 아빠는,
오래 있어봤자 괜히 정 들고 헤어지기만 힘들다고, 그래서 10분이면 충분하다면서, 속으로는 아쉽고 애달픈 마음을 그렇게 머쓱하게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그랬다.
나와 언니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셨을 때에도 아빠는, 강아지는 우리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떠나는 걸 보는 것은 너무 슬프니까 안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아빠는 늘 미래에 올 것이 반드시 예정된 이별을 견디기 어려워하셨다. 그것은 아빠의 경험에 의한 것이었겠지만, 그것은 내게도 마치 유전처럼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조금 달랐다.

나에게도 이별은 아프고,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슬프다.
다만 나는 이별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여버렸다는 것, 어쩌면 때로 그것에 굳이 뛰어들기도 한다는 것 정도가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무모하도록, 어리석도록.

이별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별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별이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별을 마주하는 것은, 이별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이별이 아니라 상처. 이별이 부르는 상처 때문에, 나는 때로 머뭇거리곤 했다.

하지만 또다시 어리석은 사랑을 시도하는 이유는,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아픔도, 내가 떠난 후에 느끼는 쓸쓸함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앞으로 또 다시 아파해야함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두려움을 뛰어넘는 것이 사랑이라 믿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서 조금 더 많은 사랑을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 때문에.

우리 아빠는 그래서 덜 아팠을까. 그래서 덜 외로웠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외롭고 아픈 시간을 지켜보았고, 또 함께 했다. 그는 피하고자 했지만, 이별은 결코 그만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 조금 달라졌고, 그것이 그에게는 성장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렇게 사랑을 배워가고 있지 않는가. 그토록 그가 이별을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은, 그만큼이나 사랑이 그에게도 간절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빠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도 아니었다. 상처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이별에 대한 아빠의 두려움과 닮아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경험이 이별을 거절하라 말했던 것처럼, 나의 경험은 상처에 부딪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플 것을 알면서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고, 울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사랑하나보다.
그렇게 아프고 나서야,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되고, 당신을 조금 더 바라보게 되고, 사랑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나.

틀렸는지도 모르지만, 결단코 후회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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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지난 겨울. 사랑하는 우리 아빠. 앞으로도 우리,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함께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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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희 아버지는 너무나도 담대해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신 저희 3형제와 소주를 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을 보냈다 라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시고는 집에 오는 길에 마치 들으실 것처럼 고맙습니다 라며 소리치셨어요..우리는 슬프게도 이별을 해야하는 존재로 언젠가는 그 때가 옵니다. 계실 때 잘 해드리시고 잘 계실겁니다.

진심 담긴 댓글 너무 감사드려요. 늘 이별하게 될 것을 잊지 말고 순간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참 알면서도 또 쉽지 않은게 가족인거같습니다

늘 어렵고, 그래도 곁에 있어주니 고맙고, 그렇네요:-)

It looks like Your grandma thinks this stuff is suspicious :))

Maybe you are right:-) She didn't recognized that I was taking selfies at the moment haha. I'm sorry that I couldn't translate it when I uploaded it...T.T

Next time, let him do it :)) Let see what she say for us :))

Honestly this photo was taken in last year, and she is in the care home in this time, so not sure if I can get any chance to hear her opinion about it! But I may upload about her again later:-) Thanks!

ok... I hope she is ok .
And you have lot fun and memories what him .

Thank you for your wish, and actually she looked better at the care home than at her own place alone:-) Yes, I have a lot of beautiful memories with her. Just I'm not living in korea, so it's too sad that I can't have much time to see her. I'm going to follow your post. Hope I can see your story one day, too!> <

Thank you!! I try every day make photos... it is not easy but I try :)

마음을 울리는 글이네요 ^-^ 이별이라는 걸 마주하는 자세는 비단 부녀지간이라도 이리 다르네요. 아무쪼록 할머니께서 건강하실동안 사랑하는 딸 아들, 손자 손녀와 많은 추억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하늘나라에 계신 우리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져요... ^-^ 써니님 할머니 자주 뵈어요~

네 다시 말라위 가기까지 한국에 있는 날이 별로 안남았는데 한번은 다시 뵙고 가려고 해요:-) 감사합니다!

'있을 때 잘해' 라는 옛날 개그 유행어가 정말 진리입니다...

그러니까요. 누구와 있든지 함께 있는 순간이 늘 마지막인 것처럼:-)

묘한 감정의 딜레마군요.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그 상처를 미리 대비하기 위한 마음의 다짐,,,

그리고 또 그만큼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큰 딜레마인 것이겠죠ㅎㅎ아버지도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어쩌면.. 아빠가 느끼는 것을 한편으로는 이해할 것도 같고 .. 어쨌든 ‘가족’은 한가지 감정만 갖고 있지 않은 단어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어른들은 그 때 왜 그랬을까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써니샤이니님 제가 써니샤이니님 2018년도 소망릴레이 지목했어요! 시간나시면 한번 보세요 :-)

오마나 감사합니다^^!!!

이별에 대한 아픔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것보다는
많은 사랑을 해보고
아픔을 겪는 것이 더욱 소중하기에
겁내지 말라고 했던 선배의말이 생각나네요.

백프로 동감이예요! 아파도 보고 기뻐도 보고 그러는거니까:-)

두려움을 뛰어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습니다. 밤에 읽었는데,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 글이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별이란 참으로 슬픈 것이네요.. 그리고 이별을 할 것을 알고있다는 것 자체도..

그러니까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더 사랑해야겠지요😌

안녕하세요!! 노래 작업을 포스팅 하는 뉴비입니다^^
우연히 들르게 됐습니다 ㅎㅎ
여유가 되신다면 방문해주세요!!
따뜻한 글 감사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ㅎㅎ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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