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이야기 2

in #kr7 years ago (edited)

지난번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이다. 자꾸 과거를 더듬어 올라가는 걸 보면 이제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들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개인 홈페이지든 블로그든 만들어서 글로 기록해두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여기 스팀잇에 나의 기억을 하나씩 글로 저장해둘 참이다.

대입 재수 시절, 대부분의 재수생들이 그렇듯 연초에 품은 비장한 각오는 서서히 무뎌지고 성적은 점점 떨어져갔다. 어쩌면 대부분의 재수생들과는 다른 상위권 아이들과 같이 있어서 더욱 위축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반에서 중간만 해도 ‘SKY’에 간다는 J학원에 다녔는데, 반에서 중간을 간 적이 한번도 없었던 나는 서서히 다른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이과여서 국어2를 공부할 필요가 없었지만 여러 종의 국어2 교과서들에 일부만 실린 단편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 소설을 쓴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까지 찾아서 읽게 되었다. 김동인, 김유정, 염상섭, 채만식, KAPF작가들을 지나 김동리, 황순원, 최인훈, 이청준에 이르기까지, 학원에서 맨 뒷줄에 앉아 소설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결정적으로 그 해 발간된 소설가 전상국 선생의 책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에 소개된 70~80년대 주옥같은 소설들을 접하면서 소설 읽는 재미에 점점 빠져들었고, 기어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고야 말았다.

소설을 쓰려면 뭘 공부해야 하지? 그때 내 뇌리를 스친 건 모의고사 성적표 뒷면의 대학배치표에서 보았던 문예창작학과였다. 지금은 문예창작학과가 여러 대학에 있지만 당시 4년제 대학 문예창작학과는 전국에 단 두 곳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지방 분교(공식 명칭은 제2캠퍼스였지만 나는 지방 분교라는 말에 더 정이 간다)의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했다. 학창시절과 재수시절을 거치면서 약간 삐뚤어져 있었던 나는 하루빨리 집에서 떨어져 나오고 싶었다. 후에 입학하고 나서 보니 서울에서 통학을 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지만 지원할 때 나는 당연히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기숙사에 들어갔고 그것도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바로 뛰쳐나와 졸업할 때까지 자취를 했다. 집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은 완벽히 성공했다. 하지만 소설을 쓰려면 꼭 그곳에 가지 않았어도 됐다. 간혹 재학중에 등단하는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후배들과 어울려 밤새워 술 마시며 인생을 논하느라 글은 쓰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글은 따로 뭘 배워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곳을 선택한 것과 그곳에서 보낸 시절에 후회는 없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삶의 가치관을 정립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의 허락도 예상 외로 쉽게 떨어졌다. 이미 모의고사 성적표에 적힌 등수로 나에 대한 기대를 많이 내려놓으신 상태였고 내가 초등학교 때 글짓기 상을 곧잘 받아왔다는 것을 용케 기억해내셨는지, 네가 잘 하는 걸 해보라면서 격려까지 해주셨다. 말씀은 그렇게 해도 아버지는 내가 법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던 당신의 뜻을 거스르고 이과를 택한 것도 아쉬운데, 당시 인기 있던 컴퓨터공학과 쯤은 졸업해서 밥벌이는 하려니 했던 내가 터무니없는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겠다고 하니 내심 섭섭하신 눈치였다. 옆에서 어머니는 서울에 국문과도 많은데 글을 쓰려면 굳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하냐고 한마디 하셨다.(역시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어쨌든 나는 C대학 제2캠퍼스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했고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했다. 내가 지원하기 몇 년 전까지 실기시험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리 때는 거의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선발했다. 만약 실기시험이 있었다면 문과 시험과목을 원서 내고 나서부터(학력고사는 선지원 후시험제였다) 공부하기 시작했던 내가 수석으로 합격하기란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입학해서 보니 동기들 중 많은 친구들이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이나 방송반 활동을 했고 개중에는 이미 신춘문예 투고를 해본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만 가진 초짜 문학청년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방 분교에서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배꽃과 알싸한 밤꽃 향기에 취하고, 겨울이면 매섭게 부는 바람과 분지의 추위를 견디며 방학 때도 거의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꼬박 4년을 그 지방 사람인 것처럼 살았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지만 졸업 후에도 생각날 때면 혼자 슬쩍 다녀오곤 했다. 그 시절이 지금까지 내 기억의, 어쩌면 내 삶의 반은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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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음~? 흥미로운 포스팅이군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부모님의 기대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나의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은 허용의 의미 이상으로 응원,지지, 격려등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포스팅도 기대할 게요.

부모님께서 느린걸음님의 쉽지 않은 결정을 허락해주셨나봐요.
느린걸음님이 지금 가시는 길이 나중에 돌아보셨을 때 후회없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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