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쉬 이야기

in #kr6 years ago

조쉬 이야기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쓰는 짧은 이야기.

Green Tortoise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밤은 언제나 시끌벅적 했다. 8명 남짓이 사용하는 방에는 브라질, 인도 등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무얼 할지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몇몇은 가까운 스트립바를 찾았고, 좀 더 고상한 척하는 몇몇은 오래된 재즈바를 찾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에서 온, 자칭 영 치료사인 토마스와 나는 주변의 재즈바를 들르고, Tobacco 가게에서 물담배를 피며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우리가 방을 나설 즈음, 해가 질 때니 7시 정도가 되면 말없이 침대에 혼자 누워 이불을 끝까지 덮고 잠을 청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조쉬였다. 우리와는 생활 사이클이 완전 다르고, 말도 잘 하지 않던 친구라 나는 그가 우리 방에서 생활하는 지를 3일정도 지나서야 알게 됐다. 별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 기색이 보이지 않아 아무도 그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딜 가나 뒷담화는 대상이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사람을 결집시키는 힘이 있고, 토마스와 나는 물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 친구 이야기를 했다. 난 걔가 좀 이상한 놈 같다고 했다, 왜 멀리 여행 와서 혼자 쳐박혀 지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지만 스스로 영적 치료 경험과 능력이 있다는 토마스는 잠깐 스친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고 했다. 깊은 슬픔과 죄책감...이랬다. 난 비웃으며 우리나라에도 너 같은 애들이 있는데, 무당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기꾼들 이라고. 그는 그 사람들을 가볍게 보지 말라며 세상엔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정중히 대꾸했다. 가벼운 장난에 정중히 나오니 미안하기도 하고 딱히 대꾸할 것도 없고 해서, 그럼 얘기 나온 김에 숙소로 돌아가서 조쉬랑 얘기 좀 해보자고, 건방지게도 그 친구를 구원(?) 해주자고 얘기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4시쯤이니 그 녀석이 일어나 있을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에 도착하니 마침 조쉬는 깨어 있었다. 전에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데면데면해서, 내가 쭈뼛거리자 토마스가 조쉬에게 같이 아침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의외로 조쉬는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고, 샤워로 담배 냄새를 벗겨낸 후 셋이 함께 근처의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조쉬가 꽤나 괜찮은 녀석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부류 중 하나는,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 나서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하며, 그에게서 배려 받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젠틀한 친구였다.

우리는 작은 중국집에서 딤섬과 국수를 시킨 후 으레 그렇듯 어디서 왔냐, 뭐 하냐, 시블링은 몇몇이냐 등의 호구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은 캐나다에서 왔으며 가죽 공예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토마스가 영 치료사인데, 어제 너보고 깊은 슬픔이 있는 것 같다고 얘기 했다고 웃으며 전해주었다. 그러자 조쉬는 살짝 놀라며 자기가 여행을 오게 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는 내가 3달 동안 다닌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조쉬는 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행을 끝마치고,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쉬는 20살이 되기 전까지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살았었다. 그러다 20살이 되어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출생을 비밀을 들었다. 조쉬의 어머니가 10대였던 시절, 그녀는 캘리포니아 어느 지역의 요가 수련원에 머물렀다. 그러다 선생 중 한 명으로 있었던 조쉬의 아버지를 만났고, 짧은 시간 사랑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캐나다로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됐지만, 굳이 그를 다시 찾지 않았다고 한다. 나를 위해 또박또박 천천히 이야기를 하던 조쉬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시 묻기엔 분위기가 너무 엄숙했다. 조쉬는 어머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갓 성인이 된 아들을 앉혀두고선 조쉬가 나에게 조곤조곤 말하듯 이야기를 했다. 왜 이제야 얘길 했냐는 그의 질문에 어머니는 너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될 나이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는 그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뒤로 3년 동안 어머니를 보지 않았고 집을 나온 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죽 공예를 배우며 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행의 경비를 마련했다.

조쉬는 아버지가 있는 수련원과 아버지의 이름을 알았지만 선뜻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가서 아버지의 존재를 눈에 담고 오고 싶었단다. 하지만 그 수련원을 찾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그가 도착하기 몇 달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한다. 몇 년 동안 그 순간을 기다렸던 조쉬로서는 허무함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어느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그 곳의 선생이 다가와 그 곳이 그의 아버지가 해질녘에 자주 앉았던 곳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조쉬는 자기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어떤 의미인지 모를 눈물을 그루터기 위에다 한참을 흘리다가 문득 어머니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다 식을 때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토마스와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었고, 중간중간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끌어냈지만, 정작 다 듣고 나서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비록 성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위로나 격려라는 건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알고 있다. 섣부른 위로로 젠틀한 친구에게 작은 실망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언젠가는 꼭 이 이야기를 어딘가에라도 적어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조쉬는 그 날 점심이 되기 전에 숙소를 떠났다. 토마스도 다음날에 오리건 주로 올라간다며 도시를 떠났다. 난 그런 샌프란시스코가 썩 마음에 들어 몇 날을 더 혼자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돌아다녔지만, 이후로 또 다시 누군가와 친해지지는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하루 전 날, 로댕의 작품이 Legion of honor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았지만 생각보단 감흥이 없었고, 다만 Lands End 공원에서 해가 질 때까지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들었다. 조쉬가 떠난 후 주변의 공기가 가볍게 느껴졌다. 숙소의 마지막 날 나는 조쉬처럼 잠에 일찍 들었고, 예정된 한국행 비행기를 조금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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