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 리뷰3 - 사내정치의 세계

in #kr6 years ago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박동훈이 다니는 회사 삼안E&C에는 두 개의 라인이 있다.
도준영 라인과 왕전무 라인...
이 회사에서는 차기 최고 경영자 자리를 놓고 두 라인간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창립자인 장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지만 끝까지 회사를 놓지 않는다.

왕전무는 삼안의 일등공신이다.
지금의 삼안이 있기까지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지만 그렇기에 견제가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회장이 아들 같은 모양새로 끌어들여 대표이사로 앉힌 인물이 도준영이다.
도준영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잘 생긴데다 좋은 학벌을 가졌고 외국에서 MBA도 했다.
젊은 야심가의 전형이다.
노회한 왕전무를 긴장시키기에 적격인 인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느 재벌가의 황태자처럼 장회장과의 혈연관계는 없다.
이것이 그의 아킬레스 건이다.
도준영의 갑작스러고도 화려한 등장은 삼안에 파란을 몰고 온다.
그에게 경영권을 넘어가리라 확신한 윤상무가 도준영 라인에 서고 왕전무는 긴장한다.
도준영의 등장으로 삼안의 조직 내부에서는 차기 권력을 놓고 첨예한 대립구도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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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TVING tvN 나의 아저씨)

예로부터 권력자들은 이런 장난질을 즐겨왔다.
차기권력을 두고 후보자 둘을 정해놓고는 이들을 경쟁시킨다. 이것이 선의의 경쟁이 되는 경우는 없다. 패배할 경우 초라한 모습으로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충성경쟁으로 변질되고 여기에 음모와 공작이 개입되면 매우 음습한 양상을 띄기도 한다.
권력자들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절대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자신의 권력이 강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정부기관 등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조직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펼쳐지는 사내풍경을 보고 기시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이런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예전에 한 지인이 내게 회사 측으로부터 이사직을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난 그 분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니지만 정치인에게는 요구되는 자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위선'이다.
그분에게는 이것이 없었다.
만약 그분이 제안을 받고 내게 의견을 물었다면 난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분은 이미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사내정치의 세계는 유치하고 지저분했다.
나도 내 지인과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사내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그러나 사내정치는 인간성의 현실상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의 상무님은 회식자리에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임마.. 사람이 여럿 모였는데 어떻게 정치가 없어?"

허긴 그렇다. 사람 둘셋만 모여도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게 인간사회니까...

그러나 난 사내정치를 하더라도 라인을 타고 줄을 서는 행태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정치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라인보다는 실력과 자질이 인사에 중점적으로 반영되도록 만들 수는 있다.
회사마다 인사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것은 권력자의 의지 앞에 맥을 못추는 경우가 많다.
인사시스템은 많은 경우에 권력자들에게 의해 망가진다.

옛 로마에서는 유력가문의 자제가 30세가 되면 회계감사관에 출마할 자격을 얻었다.
여기에서 선출되어 1년 임기를 마치면 원로원 의원이 된다.
이후 8년 동안 원로원 의원으로 경험을 쌓은 뒤 39세가 되면 법무관에 출마할 자격을 얻었다.
법무관은 2개 군단 1만 5천 명 이상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
법무관에 선출되어 임기 1년을 마치면 속주의 총독으로 파견된다.
속주의 총독으로 통치와 방위를 2년간 경험하고 나서야 42세에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에 출마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이런 과정을 '명예로운 경력'이라고 불렀다.

무려 2000년 전에 존재했던 제국에 이런 인사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술라의 개혁 이후 600명이 됐다는 로마의 원로원은 인재풀이었던 셈이다.

BC 216년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를 침공한 한니발은 그 유명한 칸나에 회전에서 무려 8만 명이나 되는 로마의 중무장 보병을 궤멸시킨다.
당시 한니발에 대항할 만 한 전략적 재능을 가진 장군이 없었던 로마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끝내 로마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 로마군은 이후 로마의 인사시스템이 주기적으로 배출하는 집정관들이 번갈아가며 지휘을 맡아 지구전법으로 일관한다.
이것을 두고 로마인 이야기를 저술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로마군은 한니발에게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지도 않았다.'

나보다 앞서 사회경력을 쌓은 선배들은 사내정치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그들의 말은 정답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뜻밖에도 고대 로마인들이 이 문제에 효과적인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지 않은가?

인사시스템과 이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라면 충분히 라인을 만들고 줄을 서는 꼴불견을 연출하지 않을 수 있다.
정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은 맞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세련되며 고급진 것도 있고 유치하고 조악한 것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권력자들은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스템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여놓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 않으려 하고 더 나아가서는 시스템을 무력화하려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내정치의 거북한 풍경은 한국사회가 시스템을 거부하는 권력자들에게 휘둘려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들... 명색이 첨단산업이라고 하는데 지배구조는 봉건시대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의 조직 내부에서 이런 풍경은 일상화되어 있다.

때때로 드라마는 시대상을 비춰주는 진실의 거울 역할을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보여주는 사내정치의 현장을 보면서 난 재미와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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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정치... 회사라는 곳도 내부적으로 한정된 자원(연봉, 진급)을 두고 경쟁하는 곳이죠. 결국 뭉치는 쪽이 뭉치지 않는 사람들보다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쉽다보니 라인이라는 게 생겨나는 듯 합니다. 아랫사람은 윗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윗 사람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게 되죠.
사실 저는 사내정치라는 걸 나쁘게만 보지 않아요. 그럼에도 감정적인 적대시로 이어지는 경우 참 씁슬하더라구요.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사내정치라는 걸 조금 더 발전적으로 수용할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내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현실적인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러나 라인 만들고 줄 세우지 말고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서로 합의해서 최대한 해결해나가다 보면 불편한 장면을 보는 일이 많이 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내정치를 좋다 나쁘다, 어떻게 사람들이 모인곳에 정치가
없을수 있냐. 이런 관점보다는

정치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떻게 이것을 이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좀 더 조직이 조직답게 유지되게 할 수 있을까.
룰,시스템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솔라님 말대로 그 시스템을 기득권이 세우지 않아 문제이긴
하지만요...

결국 리더의 문제인걸까요..?

저도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정치가 필요하다면 좀 세련되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야죠. 공작하고 뒷조사하는.. 그런 음험한 방식은 이제 쓰레기통에 던져넣구요. 합의된 룰과 시스템을 통해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리더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것을 허문 사례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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