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Chosun General Yi soon-shin(불멸의 이순신장군)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8 years ago (edited)

 

World battle experts who studied the naval battle changed the course of human history called ‘The four naval battle of world’ 

General Yi soon-shin is one of the most respectable Koreans. 

He fought for the country by paying his life when Chosun(now Korea)was at risk. 

He was the best of the best generals and this proves the following.  


 The four naval battle of world 

ㅇ Naval battle of salamis(BC 480) : Persia VS Greece 

ㅇ Naval battle of Calais(AD 1588) : Spain VS United kingdom 

ㅇ Naval battle of Hansan(AD 1592) : Japan VS Chosun(Korea) 

ㅇ Naval battle of Trafalgar(AD 1805) : France VS United kingdom

 One of the above four, Yi soon-shin was the general of chosun who led the naval battle of Hansan overthrow to victory. 

The reason why ‘naval battle of Hansan’ is so highly appreciated is because of the war method.  

That is ‘hakik’ war method. The meaning of ‘hakik’ refers to the way in which crane has spread its wings. 

This method is very convenient in encompassing enemies as if crane is spreading wings.  


Yi soon-shin was General of the three sea navy. Three sea is Korea's East sea, West sea and South sea.   


Major four naval battle of General Yi soon-shin 

ㅇ Naval battle of Okpo : Destroyed 26 Japanese battle ship 

ㅇ Naval battle of Hansan : famous of ‘Hakik’ war method 

ㅇ Naval battle of Myeonglyang : 13 ships VS 133 ships of enemy 

* Chosun navy use line type war method and turtle ship 

ㅇ Naval battle of Nolyang : The dead general Yi soon-shin wins the living enemy 

He comes to death and sacrifices his life for the country. The last words he said was "The war is in full swing, do not say I am dead" 

I respect the general Yi soon-shin most and look forward to seeing great talents like the general in the Republic of Korea. 

 

대한민국에 태어나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우리나라 온 국민이 한글을 사용하게 될 수 있는 수많은 이유 중 이순신 장군이 있었음으로 인해 당당히 그 하나의 이유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일반인들이었던 선조들의 노력이 있으셨겠지만 오늘 저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장군에 대한 수많은 책 중에 이순신 장군에 대해 역사의 이면에 관한 내용도 많음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교과서를 통해 제가 그리고 우리가 배웠던 모습이 모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릇 한 나라의 역사에서 ‘위인’으로 불리울 수 있는 인물에 대해 여러가지 미화가 가미되는 것은 그 어느나라의 역사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의종군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바쳐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나라를 구해내려 하였던 마음은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비록 글을 읽는 이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단 한 분이라도 저와 같은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이러한 위인을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4대 해전’이라 불리우는 수전의 역사에 ‘한산대첩’이 들어있다 아니다 라는 얘기가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구분법이란 생각에 저는 당연히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잠깐 4개의 해전이 선택된 사유와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 4대 해전’은 해당 수전으로 인해 인류사를 바꿀 만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경우 전쟁역사 전문가에 의해 선정됩니다.   

ㅇ 살라미르해전(BC 480)  

영화 ‘300’의 속편으로 제작된 배경이 된 해전으로 지중해의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해전으로 이 해전에서 그리스가 승리함으로 인해 동방의 서방에 대한 침입이 좌절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ㅇ 칼레해전(1588년)  

영국과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해상전투로 이 해전에서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해군에 의해 패배함으로 인해 2류국가 였었던 영국이 1류국가로 발돋움하게 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ㅇ 한산도 해전(1592년)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학익진’을 사용하여 일본 함대를 상대로 승리한 해전으로 대적하였던 아군과 적군의 함대수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학익진’이라는 획기적인 전술로 승리한 해전으로 임진왜란 7년 중 가장 위대한 전쟁으로 일컬어지며 이로 인해 일본군이 보급품을 지원받지 못해 전략적으로 큰 시련을 겪는 전쟁의 변곡점으로 작용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ㅇ 트라팔가르 해전(1805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우리도 잘 아는 영국 넬슨 제독의 승리로 인하여 나폴레옹의 세계재패가 좌절되었으며 영국이 최강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이 해전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이 세계 4대 해전을 간략하게 줄인 내용이며 이제 이순신 장군의 4대 해전을 잠깐 살펴보면  

ㅇ 옥포해전(玉浦海戰) 1592년 5월 7일  

옥포는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일본의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으로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한 해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ㅇ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거짓 후퇴로 유인하여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일본 수군을 크게 이긴 해전으로 ‘학익진’이란 해상에서 사용키 힘든 전법의 완벽한 적용과 함께 거북선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해전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ㅇ 명량대첩(鳴梁大捷) 1597년 9월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일본에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한 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의 대규모 수군과의 전쟁에서 대승한 해전으로 조선은 이 해전으로 다시금 해상권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ㅇ 노량해전(露梁海戰) 1598년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펼쳐진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마지막 해전으로 450여 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괴멸시켰으나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시게 되는 마음 아픈 해전입니다.    

저의 글재주가 미흡하여 이순신 장군의 치적을 제가 느끼는 만큼 글로 모두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노량해전 중 적의 탄환에 장군은 전사하셨지만 간신들의 꾐에 넘어가 전시에도 장군을 백의종군 시켰던 선조를 생각하면 승전하여 금의환향하여 돌아오셨을 장군을 그대로 두었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아쉽게 전사하셨으나 “전쟁이 한창이니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라는 장군의 마지막 말씀으로 인하여 한국인의 마음에 이순신 장군은 “불멸의 이순신”, “멸사봉공의 정신”이라는 수식어에 딱 맞는 위인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것에 하늘에서는 웃음 지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만족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꾸라지들이 대한민국을 더럽혀 놓은 지금 이 시대에도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인이 그 어딘가에 계실거란 희망을 가지며 글을 마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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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one more hope :)

Thank you for adding hope.
Korea will probably develop in the future!

@sochul nim, I love his story!

His wisdom and cunning plans really worked against the enemy. Huge sacrifice and a very smart move not to tell he was actually shot with an arrow and dying to check mate the war.

General Yi soon-shin's history is proud of Korea.
And I am thankful that you also like it.

@sochul nim, I heard about him from my student. Very interesting story am glad you shared :)
Have a great weekend!

Thank you for your comment and enjoy weekend you too

저 어렸을 때, 100인 위인전 중에 이순신 장군님 책을 젤 아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아직 책상에 있다는..ㅎㅎ

네 zefa님 이미 옛날돈이 되어버렸지만 오백원 지폐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가 왜 그리도 멋져보였는지 지금도 갖고 있네요 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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