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in #kr6 years ago (edited)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꽃은 아름답지만 며칠 가지 못한다.
꽃이 져도 봄은 봄이다.

세잎 클로버와 네잎 클로버의 꽃말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행운(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세잎 클로버)를 짓밟는다는 이야기…
(사실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 아니다 두둥!!)
아마도 봄의 꽃을 비유하자면 행운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봄의 하이라이트이자 모두가 동경하는 꽃
꽃을 찾기 위해, 꽃구경을 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계절이다.

하지만 나는 그 꽃을 위해 밟혀지고, 잊혀진 연녹색의 봄을 선호한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삭막한 겨울의 끝을 알려주는 그 연녹색…
이 연녹색의 잎이야 말로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갈색의 삭막했던 겨울 산이 연녹색으로 덮이는 순간
삭막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잎이 좋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꽃을 통해 식물은 교배를 하고, 과실을 맺는다.
생명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 자신의 DNA를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꽃에 끌리는 이유는 성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잎은 생장을 돕는다.
묵묵히 광합성을 하며 녹말을 합성하고, 이렇게 쉬지않고 일해 합성한 녹말을 꽃에게 보낸다.
그리고 줄기로 보내고 뿌리로 보낸다.
그리고 자식 같은 열매에게 보낸다.
정작 자신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나눠주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가지에서 떨어져 쓸쓸한 최후를 맞는… 아버지 같은 존재…
나는 이런 잎이 좋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그리고 꽃구경 온 사람들이 다 떠난 그 봄.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공원에 갔다 왔습니다.
시험기간이라 밖에서 놀지 못했던 것을 풀기 위해 조금 멀리, 따뜻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올림픽공원으로 말이죠.
초등학교때 였는지 유치원때 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함께 왔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러고보니 아버지와 어디 놀러간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가지 일로 바쁘셨던 아버지, 그리고 바쁜 척을 한 아들…
이제는 먼저 다가가서 놀자고 하기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네요.
언제 한번 같이 놀러가자고 말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야구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 데이트가 적당하겠네요.

아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샛네요. 뭐 일기니까 이정도는 괜찮겠지요.
아무튼 올림픽공원에 갔습니다.
공원이란 공원에선 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듯 했습니다.
뻔한 코스지만, 걷기 싫었던 저는 자전거를 빌려 탔습니다.

경사도 별로 없고, 자전거타기 딱 좋은 코스였습니다.
그렇게 자전거 한바퀴를 타고, 올림픽공원의 명물, ‘나홀로나무’를 보러 올라갔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자전거는 입구, 경비실 앞에 세워 뒀지요.
설마 경비실 앞에 있는 자전거를 가져갈까 하고 말이죠.

그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습니다.
두 세 그루 씩 있는 나무 사이, ‘나홀로나무’는 단 한 그루만 덩그러니 있더군요.
사실 ‘나홀로나무’는 혼자 있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홀로나무’처럼 사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주변에 사람이 없을 거라면, 억지로 한두 명 잡아 두지 말자.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자전거는 없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온 그 길을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습니다.
경비실 앞에 자전거를 누가 훔쳐갔을까, 렌트한 자전거인데 얼마를 물어줘야 할까…
이런 걱정을 하던 도중, 어차피 걱정해봐야 해결될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즐기기로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올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15분정도 행복하게 걸었습니다.
초록색 풀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 덕분이겠죠.
나름 행복한 봄 나들이였습니다.

다행히 자전거는 ‘누군가가 타고 가다가 길바닥에 버리고 갔고’, 주인아저씨가 찾았다고 했습니다.
자전거를 물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행복해지더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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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잎클로버 얘기 누구한테 듣고 엄청 감탄했었는데 fake news였던가요 ㅎㅎ 그래도 멋진 이야기임은 틀림 없습니다.

나홀로 나무의 이야기도 참 사색에 잠기게 하네요. 그나저나 일기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정주행인데 너무 좋은 글들이 많아 보팅게이지가 0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ㅎㅎ

Fake news면 어떻습니까 ㅎㅎ 그 이야기가가 전달하는 의미가 중요하죠 ㅎㅎ

확실히 다들 글을 너무 잘쓰셔서 읽는맛이 나네요
이런 이벤트가 지속됐으면 합니다 :)

아버님이 야구 좋아하시면 같이 가 드리세요.
아마 정말 좋아하실듯 합니다. 제가 그렇거던요.

오타 있습니다.

꽃은 식믈의 생식기관이다.

일기투어 중에 들렸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아버지랑 야구장을 가고싶지만 예매하기가 힘드네요 ㅠㅠ
최대한 같이 가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

저는 봄에 특히 곡우절기를 지나고 온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푸르게 변하는 것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리고 나무에서 새로 품어져나오는 애기잎사귀들은 정말 앙증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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