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섬에 대한 짧은 상념] 성수동 구두골목 이야기
- <Holden!>에 실렸던 "서울의 한 섬에 대한 짧은 상념" 3부작 중 2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흔히들 말하는, 서울의 '힙'한 동네 중 하나인 성수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기본적으로 저는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을 낳는다는 맹자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술인들이 특정 공간을 신명나게 바꿔놓더라도, 그 이면을 지탱하는 이들이 어떤지에 대해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도 그런 소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글의 수준은 여전히 조악하기 이를 데 없으나, 이런 시선도 있다는 느낌으로 가벼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KBS 2TV 《다큐멘터리3일》 2011. 2. 10.(일) 자 방송에서 성수동 구두골목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관심있는 분의 시청을 권합니다. (http://www.kbs.co.kr/2tv/sisa/3days/view/old_view/1701410_1141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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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회 내의 ‘평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 내지 주의(ism)에 대한 일차적 반응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당위 또는 규범론적인 모습을 띤다. 그러나 정작 그 평균이 나의 처지가 되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다는 이율배반 역시 발견된다. 이른바 '양극화의 시대'에서, '평균'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여러 개의 개별적 평균이 씨줄과 날줄로 엮고 엮이며 자아내는 관계망은 한 단어로 형언하기 힘든 경탄을 제공한다. 다만 그것은 평균 밖의 관찰자에게 더욱 잘 탐색된다는 지독한 모순이 전제되어 있다. 우리는 스스로 평균 속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본 졸문(拙文)도 이와 같은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어찌 보면 부끄러움이다.
'생산비용이 상승하여 생산 거점의 해외 이동, 그에 따른 공동화, 요소 부존도의 상대적 차이로 일어나는 무역의 발생, 그에 따른 생산요소 조정'.
위 진술은 경제학 또는 경영학에서 다뤄질 법한 일종의 가설(假說)이다. 그러나 그 안의 일반/추상어가 품고 있는 삶의 단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를테면 '생산비용'은 노임(勞賃), 다르게 말하면 한 가장의 월급일 수도 있고 소규모공장을 운영하는 업주의 '재료비'일 수도 있다. 생산요소 '조정'이라는 것은, 생산공정 자동화로 인해 노동자 박씨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해직(解職)일 수도 있다. 성수동 "구두거리"는 가설(假說)이 가설(可設)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좋은 예증(例證)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구두골목은 1980년대 ‘수제화의 메카’였다. 전성기 때는 구두관련업체 1200여 곳이 밀집해 있었다. 일명 ‘살롱 구두’가 유행하던 1980년대 중반까지는 전성기를 누렸다. 국내 수제화 생산의 90%를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백화점에 납품을 하던 대다수 영세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수입 명품과 중국의 저가제품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이에 따라 성동구는 2011년 서울성수수제화타운(SSST)을 지하철 2호선 성수역 1번 출구 앞에 개관하는 등 시책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후 꾸준히 매출이 증가하고 성수동 제화협회 회원 수도 110여개 업체로 늘어 2012년 12월에는 행정안전부 인증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긍정적인 자평이 있는가 하면, “20만~30만 원에 팔리는 구두의 공장도 가격은 4만~7만 원 선으로 켤레당 마진이 3000원을 밑돈다. 이마저도 최근 베트남·중국 공장에 밀려 주문 물량이 줄면서 도산하는 공장이 줄을 잇고 있다”, “또 다른 판로인 동대문 상권도 침체돼 있어 판로 개척이 가장 어렵다. 공장 임차료 내기도 팍팍하다”라는 아우성도 존재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삶의 팍팍함과 고달픔이라는 '평균적 진리'만은 어찌 그렇게 약속이나 한 듯이 언제,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구두거리와 그 주변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단순한 구두거리라고만 일컫기에는 주변에 소규모 공장 내지 공업지도 상당히 많다. 되려 공단지역이라고 일컬어야 할 정도이다. 자동차 수리점, 금형 공업, 인쇄업, 심지어 기업 납품을 주로 하는 식품가게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종류의 밥벌이가 목격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공간은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각적으로도 철과 기름과 같은 암회색 계열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휴식을 위해 만들어놓은 공원녹지는 어색하기까지 하다.
구두만이 아니라 관련한 산업까지 모두 입점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구두 제조의 주요 재료인 피혁을 취급하는 가게, 구두 형틀을 제작하는 기계공장, 구두 부속(장식) 전문가게, 거기서 일하는 이를 상대하는 식당까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들이 묘하게 공존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비좁기 이를 데 없는 가장 '평균'의 주택이 산재(散在)한다. 분명히 저마다의 동네에서 보았음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두거리라는 공간적 특성은 평균을 평균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공단 사이의 저소득층 주택'이라는 선입견이 머리를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는 선험적 의견은 보기 좋게 파쇄(破碎)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장 2절, 흠정역 성경)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留)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장 13~14절, 개역성경)
성수동 구두거리에서 이뤄지는 상행위도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이러한 헛된 행위에서 얻어지기에, 알면서도 다시 그 헛됨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다. 허무함이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것이 서울살이, 아니 인생살이라고 하면 너무나 비관적인 관찰인가.
- 참고자료
- 서울신문 2013년 6월 10일자 18면, 손형준기자, [포토 다큐 줌인]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성수동 수제화타운’ 젊은이들이, 외국인들이 찾아왔다… 다시 살아난 ‘장인의 거리’
- 성동구청 기획예산과 작성, 2012년 1월 16일, <성수동, 한국 수제화의 메카로 거듭나다>, http://www.sd.go.kr/sd/main.do?op=view&boardSeq=210&groupSeq=124&displayCount=118&kind=B&mCode=13F060000000&displayId=040080
- 한국경제매거진 제 896호 (2013년 01월), 이현주 기자, 전통 명맥 지키는 성수동 수제화 타운 르포 “위기의식 공유…부활 신호탄 쏘다”
- 더하는 말(添言)
- 제목에 '두 번째'가 들어간 것은 Holden 2호에 실린 처녀작과의 연속성을 굳이 밝히기 위함이다.
- '양극화'에 대해서, 미국의 카토 연구소는 아예 허황된 개념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본 주장의 수용여부는 독자의 몫이다.
수제화거리 한 번씩 거닐던 때가 생각나네요. 주로 소비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하고 밀도에서 했지만...
어메이징..... 논란의 중심에 선 곳 중 하나이죠 ^^;;;;
스팀에서 이런글도 만나니 색다르네요, 잘보았습니다.
그냥 저 쓰고 싶은 대로 썼을 뿐인데... 감격입니다! 감사해요 :)
좋은 글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만 있어서 장소적인 부분은 이해가 쉽지는 않지만, 저 역시 나이를 들어가면서 어릴적, 옛것에 대한 그리움, 또는 그 감성이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대구 내의 소규모 공업단지를 떠올리면 아마 와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시는 서로 닮는 면이 많으니까요. 감사합니다 :)
아 그렇군요! 어쩌면 대구 약전골목 이런 조금 오래된 곳과 비슷할수도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항상 좋게 봐주시니 무섭습니다 ㅠ.ㅠ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팔로우하고 가요!
그저 제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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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자주 자주 서로 찾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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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걸음하셨네요. 감사합니다 ^_^
성수동 수제화거리, 가면 모두가 열정적으로 본업을 즐기며 살아가시는 것 같아보여 항상 자극받고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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