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회상 2 신작로 너머

in #kr8 years ago (edited)

영선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원래는 농사를 짓기 위한 저수지가 있었다. 영선못이었다. 아마도 625 전쟁이후에 피난민들이 모여살지 않았나 싶다. 내가 기억하는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그 동네는 모두 판자촌이었다. 저수지를 메우고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시장이 만들어졌다. 주변은 전체가 논이었다.

영선시장에서 왼쪽으로 저 멀리 앞산이 보였다. 덩치가 큰 앞산은 어린시절 나에게 성지와 같았다.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산주변에 서려있는 기운이 늘 나를 압도하곤했다. 영선시장앞에는 큰 신작로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신작로는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차도 다니지 않는데 검은 색 길이 나있었다. 왕복 4차선 정도였는데 나는 그 길이 무척 넓다고 생각했었다.

어릴때 크고 넓다고 기억했던 것들이 나이 들어서 보면 정말 하찮지도 않고 작고 보잘것 없었던 경험을 하곤했다. 아마 대부분 한번 씩은 다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그 신작로는 엄청나게 큰 길이었다.

어린나이지만 그 신작로는 많은 것을 가르는 길이었다. 신작로 윗쪽으로는 영선시장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대구교대가 있었다. 영선시장쪽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넘기는 곳이었고 신작로 너머에는 삶의 풍요가 넘쳐 나는 곳이었다. 철도 들기전에 나는 잘사는 것과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었다.

가난한 곳의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잘사는 곳으로 넘어갔다. 그곳의 학교는 내가 다니던 학교와 달랐다. 미끄럼틀도 제대로 있었고 이런 저런 놀이기구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이 부러웠고 몇몇이서 그곳에 놀러가곤했다. 그곳에 가서 채 얼마 놀기도 전에 학교 소사가 나타났다. 그리곤 우리를 쫒아 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인데도 어떻게 알고 그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내서 나가라고 하는지 당체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행색이 달랐던 게다. 우리들은 몰랐지만 사람들은 영선시장 아이들과 아래동네 부자집 아이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행색이 너무나 완연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학교소사는 우리를 윽박지르듯이 쫒아 내면서 너희 동네 가서 놀라고 했다. 우리는 늘상 당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챙피함도 느꼈지만 좀 더 놀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쫒겨나면서도 다음에는 꼭 좀 더 놀고 오겠다는 의지를 키우곤 했다. 삼삼오로 집으로 오면서
"오늘 억수로 재미있었다 아이가"
"나는 소사한테 쫒기 가다가 넘어져 가꼬 무르팍 까졌다 아이가"
하고 낄낄 대면서 신작로를 넘어 원래 속해 있던 세상으로 돌아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쫒겨나는 것이 싫었다. 그 학교는 대구교대 부속국민학교였다. 어린 나이지만 교육대학이 교사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는 것은 알았다. 선생을 만들어 내는 학교에서 우리같은 학동을 쫒아내는 것이 맞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했다. 조숙했었나 보다. 한번은 소사들한데 두들겨 맞다시피했다. 왜 여기서 놀면 안되냐고 대들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곳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그때 그 마음의 경험을 35년은 지나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일원동에 살고 있다. 수서 일원동은 묘한 동네이다. 수서개발로 제일 안쪽에 임대아파트를 만들어 저소득층을 모아놓았다. 수서에도 벽이 존재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어릴적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조금 더 잘사는 아이들의 동네로 침투했다. 사단이 난 것은 어느날 저녁이었다. 밖에 시끄러워서 나가보니 초등학교 3학년이던 둘째와 1학년이던 셋째가 누구랑 싸우고 있었다. 둘다 엉엉 울면서 누구에게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대들고 있었다.

상대는 중학교 2학년 정도 되는 여자아이였다. 꼭 붙는 청바지에 나름 멋을 낸 아이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어색했다.나이들어 보이려고 한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경비아저씨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여자아이가 우리 아이를 때리고 돈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더욱 더 의기 양양했다. 꼬맹이 둘은 원군이 왔으니 더욱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난감했다. 그래서 여자아이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말을 하지 않았다. 경비아저씨가 임대사는 아이라고 말을 했다. 어찌해야되나 고민하다가 집전화번호를 물었다. 아이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는 경비실에 잡혀와서도 절대로 부모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소리도 없이 그냥 보내 다란다. 난 순간 부모에게 이런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직감같은 것을 느꼈다.

끝까지 버티던 아이도 경찰이 온다고 하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안경을 낀 40대 중반의 아버지가 왔다. 남자는 자기혼자 아이와 산다고 했다. 경비가 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 아이가 우리 아파트만 아니라 여기저기 다른 아파트 돌아다니면서 동네 아이들 괴롭힌다고 했다. 자기들 동네에도 놀이터가 좋은데 왜 여기서 노는지 모르겠단다. 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그아이가 내 어릴적의 초상처럼 다가왔다. 동경의 세계에 대한 희구. 내가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 마음. 그래서 어서 빨리 크고 싶은 마음.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같았다. 아이가 아버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시 잡았으면 했다. 내가 아이의 아버지를 부른 이유를 무표정하게 말하고 절대로 혼내지 말고 잘 타이르라고 했다. 내가 동정을 보이면 그 애비는 자존심을 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자아이 주머니에 만원짜리 몇장을 쥐어주었다. 그 여자아이는 내 어릴적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빨리커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

아버지와 돌아서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가슴 속에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어린시절의 나에 대한 연민이었다. 내가 아이의 아버지에게 연락한 것이 좋은 결과가 되었기를 그저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왜 삶은 우리에게 너무나 똑 같은 마치 판화같은 그림을 보여주는가. 짓굿은 화가처럼...

신작로는 우리에게 신분의 상징이었다. 신작로 너머는 우리의 이상향이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좋은 비누냄세도 나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세탁비누로 씻었다. 그래도 내 어머니는 항상 사분으로 나를 씻기셨다. 사분은 비누를 이르키는 말이다. 대구지방에서는 비누를 불어의 발음와 유사한 사분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그렇게 신경을 썼것만 교대부속국민학교 소사들은 우리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마치 우리 마을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그 소녀의 소속을 구분해 내는 것 처럼. 그들은 그저 척 보기만 해도 우리의 출신성분을 아는 것 같았다.

쫒겨난 아이들이 다시 향하는 곳이 영남대학교 였다. 앞산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면 영남대학교가 있었다. 영남대학교에는 잘생긴 형아들과 누나들이 오가곤 했다. 여름날 여학생들이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색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이 무척 보기가 좋았다. 긴머리를 찰랑찰랑하고 걸어 다니는 누나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 설레이곤 했다.
영남대학교 입구를 지나자면 좌우에 잔디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그 잔디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의 표상이었다. 그 녹색은 신작로 너머에 사는 가난한 동네의 나를 갑자기 부속국민학교 학동들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녹색의 잔디는 나를 착각하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다. 영남대학교가 더 좋았던 것은 그곳에 드나드는데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정문을 용감하게 들어가면 되었다. 경비아저씨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무어라 하지않았다. 다만 여러명이 떼지어 가면 못가게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한명씩 한명씩 대학생주변에 묻어서 학교로 들어갔다. 그러나 영남대학교에는 놀이터도 없었고 탈 것도 없었기 때문에 별 재미가 없었다. 그냥 멋있다는 것 정도였다.

영남대학교교에서 앞산은 훨씬 더 가깝게 보였다. 어릴적 내 마음속의 이상향이었던 앞산은 그렇게 내마음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국민학교 6년간 나의 세상은 영선시장과 간혹 들렀던 교대부속국민학교, 영남대학교 그리고 앞산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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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신작로.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네요... ㅎㅎ

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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