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도 변한다

in #kr8 years ago (edited)


웹핑을 하다가 보았다.
난 나이가 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는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               ☆                ☆

지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주말이 되면 서울로 올라온다. 흔히들 말하는 주말부부이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편한점도 없지 않다. 샤워하고 수건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아도 마누라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되고 팬티 벗고 여기저기 돌아 다녀도 무어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 완전히 자유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는 고독을 동반한다. 간혹 빈방에 덩그라니 혼자 앉아 있자면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한심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난 도데체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지를 회의하게 된다. 강보에 쌓였을 때 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할머니는 "우리 맏상주 우리 맏상주"하시며 날 떠 받들다시피하셨다. 그야말로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 뉘시면서 뼈골이 삭도록 날 돌보셨다.

우리 할머니가 나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으셨는지는 우리 어머니가 내 아들놈에게 하시는 것을 보고 알았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을 돌보시느라 침식을 잊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가 하며 경탄했던 생각이난다. 집안 어른들은 우리 할머니의 나에 대한 유별난 사랑을 환갑을 앞둔 지금까지도 이야기할 정도였다.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승급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한때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여인도 안중에 없어졌다. 미친듯이 일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진급에서 떨어졌다. 하늘이 캄캄했다. 사무실에서 집에까지 4시간 정도를 아무 생각없이 걸어갔다. 아니 생각하기 싫었다. 어슴프레한 한강벤치에 앉아서 캔 맥주를 한잔 마셨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니 마누라는 아이들하고 자고 있었다. 졸리는 목소리로 왜 이리 늦었냐고 물었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 누웠다.
마누라는 진급 떨어졌어? 라고 물었다.
난 응 하고 대답했다. 위안이라도 얻고 싶었다.
마누라는 에이 씨 하더니 좀 있더가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음에 하면되지뭐 하고는 다시 잔다.
사람들이 진급떨어지고 나면 마누라를 위로해주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난 위로고 뭐고 할 건덕지도 없었다.
나는 천정을 보고 누워서 세상 사람 마음이 다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슴이 아픈데 마누라는 그냥 자버리다니. ..
며칠 지나니 나도 기분이 평상시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간 마음 고생 때문인지 몸살기가 왔다.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더니 집사람이 호들갑을 떤다. 죽을 쑨다. 콩나물국을 끓인다. 바쁘다. 가만히 누워서 집사람에게 내 진급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집사람은 내 진급보다는 내가 아픈 것이 더 심각한 것이었다.
혼자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만.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이 흘렀다. 최근들어 좌골 신경통이 온다.
한의사 하는 친구놈은 디스크라한다.
병원에 갔더니 무슨 염증이라한다.
집에가서 아프다했는데 마눌님께서 아무런 반응이없다.
막내의 대입 논술시험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 나중에 보자한다.
난 서운했다.
나 무지 아픈데...
막내 얼굴보고 말도 끄내지 못했다. 아이는 초죽음이었다.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저렇게 가혹행위를 할까?
아픈다리를 이끌고 학교시험장까지 갔다.
말한마디 못하고...

일요일 저녁 쇼파에 기대어 나 아픈데라고 운을 끄냈다.
집사람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막내 대학입시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었다.
난 서글픈 신세가 되었다.
난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곤 중요한 것도 자꾸 변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때 나에게는 진급이 제일 중요했다.
그때 집사람은 내 건강이 중요했다.
지금 난 내 건강이 중요하다. 한번 아파봐라. 아무생각없다.
이제 집사람에게는 막내 대학 입시가 제일 중요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자꾸 변한다. 우리들 마음도 시시각각 변한다. 그것만 알아도 쓸데없는데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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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커피한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군요...^^

당시에는 죽고 못살던 있이 지금 생각하면 특별하지도 유일하지도 않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이럴땐 마음 한 켠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중요한 무언가가 항상 내 곁에 있다는것에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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