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n's Essay] '나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견뎠다'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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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견뎠다.




이 이야기를 쓰기 까지 많은 고민과 고뇌가 있었다. 영원히 남기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 나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도 있기에 쓰고 있는 지금도, 정말 조심스럽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의 내가 쓴 글들에 편견의 색깔이 더 해질까봐. 이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내 부모를 내가 욕보이는 모습이 될까봐서이다. 지금은 부모님과의 사이가 양호하다. 그러니 이 글을 부모님에 대한 비난의 글로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1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극복했다는 걸 내 자신에게 다시금 일깨워주고 싶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분들과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비단 나만이 겪은 것들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얘기하면서 내 아픔이 남아 있다면 씻어내리고 싶고 나도 씻겨내려가는 것을 도와드리고 싶다. 이 경험을 겪거나 겪지 않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withme 님 글을 보기 전에 미리 써놓은 부분입니다.)


2
나의 첫 기억은, 집을 나서는 엄마를 보며 동생 손을 잡고 울고 있던 흐릿한 장면이다. 엄마는 맞았다. 아빠에게.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울며 하지말라고 하던 그때, 난 조그마한 손을 가진 어린 아이였다. 막을 수 없었다. 가슴이 아픈 게 뭔지도 몰랐다. 그냥 울었다. 본능이었다.

동생과 손을 잡고 짐을 싸는 엄마를 보며 울었다. 엄마가 나가는 순간의 시간은 새벽 2시 반쯤이었다. 아빠는 일찌감치 나가 버렸다. 가지말라며 울었는데, 엄마를 붙잡지 않았다. 6살이었다.

이 일이 있은 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 지냈다. 한 달 정도 지냈던 것 같다. 그 한 달 사이에도 세상이 너무하리만치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난 동생의 눈을 가리고, 집 앞의 논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한참 있다 들어가자며 말을 한 뒤 오랜 시간 동생과 논에 앉아있었다. 나중에 집을 가보니 경찰이 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술이 취해 우리가 실종된 줄 아시고 경찰에 신고하셨다. 경찰에는 별일 아니라고, 동생이랑 논에 잠시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기억이 끊겼다.


3
아빠가 욕 하면서 날 때렸다. 피멍이 들었다. 엄마가 내 머리를 발로 찼다. 아팠다. 날 밖으로 내쫒았다. 엘리베이터를 눌러주며 내려가서 다신 올라오지 말라고 그랬다. 어린 마음에 동생과 손을 잡고 팬티만 입고 그냥 1층에 서 있었다. 아는 이모가 우리를 보고 왜 그러냐며 물으셨다. 그냥 목놓아 울었다. 우리 집에 이모가 데려다 줬다. 엄마는 성질을 내며 왜 데리고 왔냐고 한다. 그 날 집에 들어가서 난 울지도 못했다.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자주 이랬다. 이후로 엘리베이터가 무서워서 14층이나 되는 집을 걸어 올라간 적도 있었다. 날 엄마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4
두 번째 기억은, 학교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나는 너무나 순진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가방을 들어달랜다. 친구니까, 들어주고 싶었다. 도움이 되고 싶어서. 생일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달랜다. 난 돈이 없었지만, 엄마에게 부탁해서 일주일에 3천원 남짓 받던 용돈을 억지로 당겨 받아 늦게 나마 선물로 주었다. 친구니까. 근데 하루 지나서 선물했다고 나를 욕하며 때렸다. 마음이 따가웠다.

친구가 장난으로 내 필통을 가져갔다. 그리곤 하교할 때 도로를 지나가던 포터 짐칸에 던져버렸다. 슬펐다. 친구라도. 엄마가 준 용돈으로 산건데. 속으로 생각했다.

친구가 내 옷에 침을 뱉었다. 장난이었다. 그냥 장난. 아이들이 날 보고 웃는다. 장난인 것이다. 그때부터였나, 내가 합리화를 시작했던 것이. 친구가 장난이라며 내 팔을 붙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아팠다. 몸이. 난 웃었다. 장난이니까. 친구니까. 집에 갔다. 팔이 안 굽혀졌다. 너무 아팠다. 친구 원망은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나 혼자 해결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결국 엄마에게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넘어졌어.' 난 이때 내 팔의 고통보다 더한 아픔을 느꼈다.



5
하교를 하던 길이었다. 친구가 내 뺨을 때렸다. 아팠다. 마음이. 내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욕을 해댔다.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불안했다. 내 편이 없었다. 학교 교실이다. 난 수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가 아니, 아이가 나를 불렀다. 놀러가쟀다. 근데 난 숙제를 해야한다고 했다. 그냥 숙제를 한다고 했다. 그 말만 했을 뿐인데, 난 뺨을 맞고 촛대 뼈 쪽의 살이 까지도록 발로 까였다. 울고 싶었다. 친구가 무서워졌다. 집에 가서 샤워하려고 옷을 다 벗었는데 왼쪽 팔뚝엔 멍이 들어 있다. 촛대뼈에도 멍이 들어있다. 엄마가 상처에 대해 물었다. '축구하다 까졌어요.' 이젠 먼저 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한다.

한 아이가 내 등을 펜으로 긁었다. 교복이 더러워졌다. 장난으로 살짝살짝 ''안들키겠지'' 하면서 긁는다. 집에 왔다. 난 내 손으로 처음 손빨래를 하게 되었다. 엄마한테 미안했다.


6
집에 오면 4시 쯤이었다. 티비를 켜면 도라에몽과 짱구가 방영했다. 난 저렇게 행복하지 못해서, 행복할 수가 없어서 티비에 나와서 웃는 캐릭터들을 보면 괜시리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이 넘치는 속의 울음을 뿜을 데가 없어, 4시에서 4시 30분까지 정확히 30분동안 난 매일 울기로 했다. 정말 내가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어떤 날은 몇 시간동안 울어버렸다. 실수였다. 엄마, 아빠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그 날, 날 보고 너무 놀라셔서 서로 사이가 안좋은 부모님은 억지로 날 데리고 외식을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다음 날부터 울지 않으려 울음을 틀어막았다. 정확히는 입을 막았다. 그리곤 차츰 멈추는 연습을 했다. 부모에게 내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조차 힘이 들었다.



7
내 생일이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가잰다. 근데 난 생일 파티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엄마에게 친구들이 오니까 먹을 것을 좀 준비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왔다. 엄마가 해주신 떡볶이와 여러가지 음식들을 먹고 집을 나가자마자 나를 때렸다. 울고 싶었다. 정말. 심장이 너무 아팠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엄마에게 앞치마를 입히면 안되었다. 그 때 그 부탁은 말았어야 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이 아이들을 엄마가 동네에서 보면 나를 보고 그랬다. "아들아, 너 친구 아니니?", "응, 엄마 그냥 가자." 몇 번 이런 일들이 있자 엄마는 그 뒤로 나에게 그 아이들을 동네에서 봐도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았어도 다 아셨을 것이다.


8
중학교 시절엔 친구가 없었다. 그저 몇 명. 고등학교는 비교적 잘 지냈다. 그래도 친구 몇 명 정도는 생겨봤다. 난 비로소 대학을 올라와서야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용기를 내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술이 참 좋더라. 응어리 진 것들이 뿜어져 나왔다. 내 아픔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말할 친구가 없었다. 또 아픔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정말.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아직까지도 절친한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9
나의 가족은 가부장적이다. 그래서 아빠를 닮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물론 아빠 덕분에 미래의 내 아내에겐, 내 자식들에겐,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신념 같은 것들이 생겼다. 나는 친구들의 배신에 대한 과거를 지녔다. 그래도 지금의 내 친구들은 날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다.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다. 많이 변하셨다. 나의 아픔들을 부모에게 원망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저 날 위해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날 왕따 시켰던 친구들도 용서했다. 이제 길을 가다 마주쳐도 적어도 손을 떨진 않게 되었다. 난 내 과거 때문이 아닌, 덕분에 폭력을 하지 않게 되었고, 성에 대한 공부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사람의 심리, 철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랑을 결심해서 시를 쓸 수 있었다. 사회성 부족인 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으로 홀서빙 알바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내가 싫어하던 것들에서 멀어지기 위해, 난 내가 원하는 이상을 위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면, 내딛지 못했을 내 발자국들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 지키고 싶은 신념, 가치관이 필요했다. 과거 '덕분에' 많은 것들을 얻기도 했다. 난 지금 내 안에 있는 뜨거운 것들을 내어놓았다. 그게 곧 나다. 과거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난 '지금' 행복하다.


10
난 나를 위해 인생을 사는 법을 강구하다, 비로소 과거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과거를 오래 붙들다 보니, 친구들도 잘 못 사귀고 응어리 진 것들만 나에게 남아있게 되었다. 그것들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난 진심어린 용서를 택했다. 사랑을. 앞으로 이런 일들이 사회에서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일어서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지만, 그런 일들을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어설 힘조차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아직 아픔을 앓고 있는 분들께 바친다. 부디 나의 보잘것 없는 경험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길. 도움의 손길이 되었길. @withme 님 with you 입니다.

me too.



마지막으로,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혹은 극복하지 못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나에게 속마음 털어놓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아픔을 함께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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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되는 댓글을 달아주고 싶은데 뭐라고 쓰면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저의 사춘기 학창시절을 곱씹어봤어요. 다른 형태이겠지만 다들 사춘기를 겪는데 대체 그들은 왜그랬을까... 다들 어딘가에서 만족이나 안정감을 느끼지못해 밖에서 친구에게 그런 행동들을 한것같아요. 그사람의 행동을보면 참 그 사람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구나 싶은 경우 많잖아요. 사춘기때엔 더더욱이 여실히 드러났겠죠... 모자란 사람들의 행동으로 받으신 상처 잘 극복하신것 같아 토닥토닥 해드리고 싶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sirin418님:) 저 @sirin418님 시 너무 좋아요~ㅎㅎ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 좋다는 말 너무 감동이에요!

<다들 어딘가에서 만족이나 안정감을 느끼지못해 밖에서 친구에게 그런 행동들을 한것같아요. 그사람의 행동을보면 참 그 사람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구나 싶은 경우 많잖아요. 사춘기때엔 더더욱이 여실히 드러났겠죠...>

이 말씀에 동감이 되네요.....

힘든 이야기 공개하시는게 쉽지 않았을것 같네요.

전 집에서나 친구에게는 안 맞았는데 저희동네의 특징인지 선생들에게 엄청 맞았어요. 뺨은 기본이고 각목으로 맞고 빗자루로 맞고 자로 맞고 책으로 맞고, 그나마 저는 양반이고 선생들에게 찍힌 아이들은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맞고, 어떤 애는 맞아서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왜 어린시절은 그렇게 힘든 시기였어야 하는 걸까요. 뭐 모두가 그랬던건 아니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중학교때 뺏지 안 달았다고 선생한테 뺨을 맞은 적 있는데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어요...

<왜 어린시절은 그렇게 힘든 시기였어야 하는 걸까요. 뭐 모두가 그랬던건 아니겠지만.>

전 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ㅜㅜ

그림이나 글들이 수준이 장난이 아닙니다.

훌륭하게 극복하시고,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루신 것 축하드립니다.

글을 읽으면서, 말하고 싶은 생각들이 무수히 많이 떠오르지만,
너무 많으니, 오히려 쓸수가 없네요.
천천히 한번 써보고 싶네요.

님의 미투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과거 '덕분에' 많은 것들을 얻기도 했다. 난 지금 내 안에 있는 뜨거운 것들을 내어놓았다. 그게 곧 나다. 과거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난 '지금' 행복하다.

최근에 듣고 본 말중에 가장 예쁜 단어로 조합한 가장 예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꺼내어놓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힘든 일이거든요.
용기도 많이 필요하지만, 이것을 꺼내놓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기억이 숨막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감히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이렇게 적어드려야 해서 너무 죄송스럽지만, 살아주셔서 행복하셔서 고맙습니다.

예쁜 말으로 들려서 기분 좋네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감사 잘 받겠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셨네요. 시린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잘 읽었어. 멋있다.

시린님을 통해 @withme 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시린님 또한 아픈 상처가 있어 조금 먹먹했어요. 누군가에게 알린다는것.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건데 두분다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증오대신 사랑이라니..시린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해서 좋은 기억들로 다 채워질수 있기를 바랄게요 :) 두분의 글 덕분에 제 마음 한켠도 조금 위로 받는것 같아요. 감사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로가 되었다니, 제 마음이 다 따듯해집니다. 단톡에서 뵈요!

너무 아프고 슬픈 이야기네요
하지만
참 대단하세요
앞으로 좋은일만 가득하시길요

응원 감사합니다. @jsj1215 님두요.

아픔을 극복하고, 솔직한 용기를 응원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하고, 응원 잘 간직하겠습니다.

원망은 도움이 되는 것 하나 없고 날 위해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솔직한 마음이 너무 와닿네요.
'지금' 행복한 @sirin418 님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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