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말고보통] 돈이 쪼개버린 사랑
사랑은 스스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생존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결코 스스로 가난해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에서 느끼는 생존의 불안은 실제적인 부유함의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Winer takes all'이라는 구호처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존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부유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일정 정도 모두 생존의 불안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포섭된 관계의 사랑만을 진짜 사랑이라 믿게 된 게다.
자본주의가 양산한 생존의 불안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협소해진 게다. 생존의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일단 나부터, 내 가족부터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어렵지 않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 되는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교육받고 그것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안다. 돈이 없다면, 나와 내 가족이 언제든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지금과 같은 병적인 자본주의 형태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연관된 관계(연인, 배우자, 부모, 자녀) 이외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내 애인, 내 가족부터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제 3자를 사랑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거나 꿍꿍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돈에 대한 압박감, 두려움,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공적인 영역에 대한 사랑은 점점 사라져갈 것이다.
사적인 사랑에 매몰되고, 공적인 영역의 사랑을 잊어버렸던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내몰았던 자본주의 탓이 절대적으로 크다. 이제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안전망이나 복지를 외치는 말이다. 경제 민주화나 복지를 그리도 외치는 것은 그들이 종북좌파에 빨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적인 영역보다 조금 더 넓은 영역의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사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 그리도 사회적 안정망이나 복지를 외치는 것이다. 인간답게 서로를 돌보며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