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보다연애] 타자의 발견
연애를 통해 발견하는 건, ‘단독적’인 ‘타자’다.
연애를 통해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건 ‘타자’다. 이 타자라는 건, 이성과는 다르다. 철학에서 ‘타자’는 ‘나와 다른 어떤 존재’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타자’가 나와 다른 존재라면 이성은 역시 타자 아닌가? 이성은 분명 나와 다른 존재니까. 여기서 ‘단독성’singularity이라는 철학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이 ‘단독성’은 「안티오이티푸스」를 공저한 철학자 ‘들뢰즈’와 정신과의사 ‘가타리’가 사용한 개념이다.
‘단독성’은 쉽게 말해,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이고 유일한 것을 의미한다. 연애를 통해 발견되는 타자는 바로 ‘단독성’을 가진 타자다. 놀랍게도 진짜 연애를 몇 번 해보면 알게 된다. 여자도 남자도 없다는 걸. 오직 ‘예빈’, ‘유나’, ‘수향’, ‘정은’, ‘동환’, ‘우진’, ‘선빈’, ‘진규’ 같은 어떤 것으로도 환원(바꿀 수 없는)되지 않는 개별적이고 유일한 한 사람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연애를 하면 추상적인 여자 혹은 남자라는 이성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이고 유일한 ‘단독적’인 ‘타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여자·남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이지 않은가? 세상에 여자가 어디 있나? 또 남자는 어디 있나? 있으면 데려 와보라. ‘예빈’, ‘유나’, ‘수향’, ‘정은’이라는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 여자·남자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로도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이고 유일한 ‘단독성’을 가진 ‘타자’를 알게 된다.
의구심이 든다. 그 타자라는 것을 꼭 연애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위에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존재하던가. 그러니 꼭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예빈’, ‘수향’, ‘정은’, ‘동환’, ‘우진’, ‘선빈’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 우리의 치명적인 오해가 숨어 있다. 우리는 타자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전혀 모른다. 우리는 오직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서만 단독적인 타자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 동료, 선후배들을 알고 있을까? 모른다. 단독적 타자라는 것은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직장 동료나 선배가 “네 생일에 못 갈 것 같아”라고 말해도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 간다. 하지만 그 상대가 연인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내 생일에 여자(남자)친구가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 무슨 일인지 또 그 일이 내 생일보다 더 중요한지 집요하게 묻고 싶어진다.
내 마음과 같아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타자
사랑하는 이에게 바란다. 내 마음과 같기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 역시 살아왔던 삶의 맥락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맘과 같기를 바라지만,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단독성을 가진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아, 내 생일이 여자(남자)친구의 아버지 기일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밤마다 통화가 안 되는 건, 우울증 치료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있기 때문이었구나’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일상적 관계에서 단독적인 타자를 발견할 일은 없다. 애초에 직장동료나 선배에게는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지 않는 까닭이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연인이 내 마음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그 불가능한 요구. 그 불가능한 요구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단독적인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연애를 통해 알게 되는 건, 이성이 아니라 타자다. 어떤 존재도로 바꿀 수 없는 단독적인 타자.
많은 연애를 했지만, 단독적인 타자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여자(남자)만 발견했다면,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연애를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유령과 만난 것일 테니까. 진짜 연애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이성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과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하고 단독적인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연애다. 이제 우리에게 물어볼 차례다. “나는 연애를 한 적이 있을까?” “나는 단독적인 타자를 발견한 적 있을까?”
재밌게 읽었습니다^^ 단독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되네요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생각이 깊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