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 혹은 철학자] 24. 삶에서 강해진다는 것
-비트겐슈타인과 로드리게즈-
나는 복서가 되고 싶다. 그건 링에서뿐만 아니라 삶도 강건하게 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에서 강해진다는 건 어떤 걸까? 많은 지식을 얻고, 많은 돈을 얻고, 많은 권력을 얻고, 큰 명성을 얻으면 강해질까? 아닐 게다. 그런 것들은 얻으면 얻을수록 더 유약해지기도 한다.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은 많지만, 그 아는 것에 갇혀 허영만 가득 찬 지식인들은 얼마나 유약한가? 악착 같이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부자들은 얼마나 유약한가? 권력과 명예를 얻은 이들을 보라.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쫒아온 그들은 얼마나 유약한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 영민했고,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끝을 맺는「논리-철학논고」로 시대의 천재로 올라선다. 하지만 그는 ‘철학은 질병’이라고, 철학 교수로서의 삶은 ‘살아 있는 죽음’이라고 말하며, 당대 최고의 대학, 케임브리지의 철학교수자리를 거절했다. 교수가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그는 런던의 한 약국에서 배달 사원으로, 나중에는 임상연구 실험실에서 일했다. 이 얼마나 강건한가? 철학을 공부했지만, 철학이 질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강건함. 제 발로 교수 자리를 걷어차고 노동자의 삶을 택한 강건함. 이보다 더 삶을 강건하게 살아내었던 사람이 또 있을까?
‘로드리게즈’라는 가수가 있다.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가수였다. 하지만 그는 몇 십 년이 흐른 뒤 지구반대편 남아공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노숙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 국빈 대접을 받으며 콘서트를 열게 된다. 돈, 명성, 인기를 단숨에 얻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하며 다시 가난한 삶을 돌아갔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들을 얻었지만, 그는 기꺼이 자발적 가난을 택했다. 이보다 더 강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을 버릴 수 있는 그는 얼마나 강한가.
링에서 강해지려면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만큼 강해질 수 있다. 돌아보면 그렇다. 우리가 사장 앞에서 주눅 들고 상사 앞에서 눈치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월급을 내려놓을 각오가 없기 때문 아닌가. 일부 유명 인사들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이 쌓아왔던 명성, 인기를 내려놓을 각오가 없기 때문 아닌가. 이처럼 삶에서 유약해지는 건 언제나 어떤 것을 포기할 각오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얻으면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버릴 수 있는 만큼 강해질 수 있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얼마나 강건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를 판가름 할 테다. 갈비뼈 골절로 인해 쉬는 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링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또 물었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링에서도 삶에서도 강해질 수 있다는 답 만은 분명히 얻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팔로우, 리스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