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석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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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앉던 곳에 앉는다.
나는 아메리카노, 너는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밖은 지독했던 장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채
푸른 녹음과 맑게 개인 하늘로 눈부시다.

밀린 숙제를 하듯,
다소 지겨워보이는 너의 눈빛을
안타깝게도 읽어버린 나는
허둥대는 시선을 둘 곳을 서둘러 찾는다.

너는 사소하다고 말했고, 나는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화와 독백이 이어지며 무거운 침잠이 우리를 감싸왔다.

마침 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이어 붙일 말이 마땅치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네 앞에 놓인 아인슈페너를 바라본다.
크림이 녹으며 하얗게 가라앉는다.
한 때 달콤했던 기억들도 쓰라리게 녹아 사라진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투명한 유리잔 속 녹아내림을 눈으로 좇던 나는
너의 대화가 갈무리되는 것을 느끼며 상념에서 깬다.

일어나자고 하기에 짐을 챙겨서 앉던 곳을 떠난다.
왠지 다시 그 자리에 앉게 될 일이 없을 것 같아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다.

매미소리와 강렬한 햇빛 속에 우리의 침묵이 묻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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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가끔 전혀 다른 상황에 그 곳을 가게 되면....... 뭔가 모를 미묘한 씁쓸함이 느껴지더라구요. ㅎㅎㅎㅎㅎ

미묘한 씁쓸함이라.. 알 수 없는 감정이네요.. 쓰읍..

시간이 지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메말라가는 무언가가 안타깝네요.
다들 극복하면서 살고 있는걸까요?

그러게요.. 확실히 아는건 달라진 자신들을 발견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는 것?!

변하지 않는건 없으니까요

시작할 땐 상대와 나 사이에 루틴 같은 게 생기면 상대와 내가 드디어 서로에게 스며든 것 같고 그게 그렇게 설렐 수가 없는데, 감정이 식으면 그 루틴이 지겹고 숨막히게 느껴지는 게 참 신기한 일이죠.

오 그렇네요 루틴이 지겹고 숨막히게 느껴지게 된다..

아 드립이 생각났는데... 혼 날까봐 진짜..블록체인..제길!

쇼루한테 맞을까봐..

안때릴겁니다. 가즈아!

고참님 의견이 궁굼합니다. 저정도면 뭐 남자가 집착의 끝판 아닙니까?

이 형놈들이... 아니 형님들... 오타 죄송.. 블록체인이라 수정이 안되네요..

20180209_162836.jpg

제가 루돌프님을 대신 때려드렸습니다.

고참님 조금 더...

으음.... 익숙해져 버린..... 하지만 가슴아픈.... 떨어짐의 느낌이 나는군요

가슴 아픈 떨어짐.. 상처가 아물고 나서 딱지 떼는 느낌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어디서 읽은 글인데, 사랑할땐 상대방에게 서로 맞추면서 변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 마음이 식어가면서 변하기 전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해요. 그래서 서로가 변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원래 사랑하기 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 뿐이죠. 씁쓸합니다ㅜ

씁쓸하네요.. 코코아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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