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방위)대 이야기 4] - 그 점퍼는 아니길..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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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폴(@sha135)입니다.

내일부터는 설연휴가 시작되네요.
아, 물론 연휴에도 지구(방위)대는 24시간 쉬지 않고 교대근무로 돌아갑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그동안 지내온 얘기도 나누고, 올 한해를 시작하는 덕담도 주고 받는 설명절이지요.
그런데 이런 자리가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례상 준비며 가족들 뒤치닥거리에 힘들어할 우리 아내분들도 그럴 수 있구요,
올해도 왜 결혼 안하냐는 잔소리에 시달려야 할 미혼남녀 분들도 그런 마음일 수 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취직 못했냐는 핀잔을 들을 생각에 명절 가족모임 불참을 벌써 선언해버린 취업 준비생들이 아마 가장 명절이 반갑지 않은 분들일 겁니다.
저 역시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다보니 누구보다 그 맘을 잘 압니다.

취직,
직업을 얻는 일,
누구나 성인이 되면 일을 해야하니 참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단어가 쉽지 않은 요즘 세상입니다.
취직이 뭐길래, 이리도 이 땅의 젊은이들을 괴롭히는 걸까요.

2018년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추위가 매섭던 어느 날,
시촌동생이 카카오톡으로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들이 유서같은 것을 써 두고 나갔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도 접수되었습니다.

두 신고 내용의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같은 사람, 28살의 청년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엄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아들이 왜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하단 이야기를 써놓고 나갔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엄마는 발을 동동 굴렀고,

평소 친형처럼 따르던 사촌형에게만 말했다는 그의 사연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님께 미안해하다 작년 가을 병원에 정직원으로 취업했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기뻐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몇 달 동안 사실을 알리지 못해 괴로워하다 오늘 그 사실을 사촌형에게 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의 괴로움을 눈치채지 못한 것에 미안해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에 담배에 불을 붙이는 두 손이 떨렸습니다.

일단 휴대폰 전원이 꺼진 마지막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전 직원들에게 아들의 사진을 전송하고 아들이 입고 나간 붉은색 K브랜드 등산점퍼를 입을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종종 있던 자살 신고들처럼 차라리 술에 취해 어딘가에 쓰러져있기라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화가 마지막으로 걸려온 지역을 뒤졌습니다.

1시간 후..

인근 지구대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한 아파트 주민이 주차장 화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는 신고였습니다.

함께 출동한 119에서는 의식이 없고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불길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무전으로 확인했습니다.

아니기를 바랬지만..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남자가 입은 옷은..

붉은색 K브랜드 등산점퍼였습니다..

아들을 확인하러 온 부모님은 주저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취직때문에 괴로워하다 거짓말까지 하게 된,
이제 겨우 스물 여덟인 아들은 그렇게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1월의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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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무 슬프고 아프고 안타갑네요..ㅜㅜ

삶에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을텐데..
취직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린 젊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ㅠㅠ
지구방위대란 말을 이제야 알겠네요.
항상 수고하십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나 있는 지구방위대이지요^^

안타깝습니다.. 이런일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느껴졌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고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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