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문이 샴페인을 만들게 된 사연

in #kr7 years ago

어쩌다 보니 와인 전문 에디터로 활동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문과여서 그런지, 아니면 미각이 발달하지 못해서 그런지...) 와인 자체의 복잡한 맛이나 품질보다는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관련 인물이나 에피소드를 찾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시야를 와인과 관련된 인물, 가문, 역사적 배경 등으로 돌려보면 언급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스차일드 와인과 가문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화해와 화합의 상징, 샴페인 바롱 드 로칠드> 라는 제목으로 WineOK.com에 게재했던 글을 여기에 옮겨 보았습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으로 명성 높은 로칠드 가문이 샴페인을 만들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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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깨나 마시는 이들 중에 ‘Rothschild(로칠드 또는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나 ‘샤토 무통 로칠드’ 같은 세계적인 명품 와인이 로칠드 가문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로칠드 가문은 중세 유럽 이후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혼란의 틈에서 기회를 포착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한 ‘투자의 귀재’로 묘사되곤 한다. 오늘날까지도 자본, 금융, 투자를 다루는 많은 자료에서 로칠드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참조 _ "채인택의 역사를 만든 부자들(1) 마이어 로트실트 ‘로스차일드 국제금융 제국’의 건설자" https://goo.gl/WiopFM).

다섯 개의 화살이 그려진 문양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로칠드 가문의 명성과 부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로 겹친 화살은 부러지거나 휘지 않는다.” 열악한 게토(유대인 강제거주지)에서 태어났지만 남다른 수완과 혜안으로 거대한 금융 제국을 일군 로칠드 가문의 창시자, 마이어 암셀 로칠드가 남긴 말이다. 이 때 다섯 개의 화살은, 당시 그가 유럽의 정세를 꿰뚫어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조력한 다섯 아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로칠드 가문의 번영과 존속이 다섯 아들과 후손들의 단합과 협력 여부에 달렸다는 것을, 그는 이처럼 다섯 개의 화살에 빗대어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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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로칠드 가문 내의 분파 간 경쟁과 갈등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라피트 로칠드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이와 관련한 가장 극적인 사례다. 당시 2등급이었던 샤토 무통 로칠드를 1등급으로 올리려는 필립 드 로칠드의 노력에,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소유하고 있던 그의 사촌 엘리 드 로칠드가 반기를 들며 노골적으로 제지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 둘 사이의 반목은, 개인적인 불화 외에도 상당 부분 경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샤토 무통 로칠드가 1등급을 획득하게 되면 보르도 1등급 와인들 사이에서 가격 경쟁이 심해지고, 샤토 라피트 로칠드가 기존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데(또는 가격을 더 올리는데) 방해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면, 둘 간의 전쟁은 1973년 샤토 무통 로칠드가 1등급을 획득하면서 필립의 승리로 돌아갔다(참조_ "The Rothschild Dynasty" https://goo.gl/phpvXc).

다행히도, 로칠드 가문의 두 와인이 나란히 1등급의 지위를 누리게 된 이후로 마이어의 다섯 개 화살은 본래의 의미(화합과 단결)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존속하는 로칠드 가문의 세 개 분파가 십여 년간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07년에 마침내 그 결정체를 내놓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샴페인 바롱 드 로칠드 Champagne Barons de Rothschild’다. 로칠드의 이름으로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어보자는 공동의 목표는, 이들 분파를 한데 모아 로칠드 가문의 결속력을 다지고 지금까지의 위업을 다시한번 세상에 공언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샹파뉴 지역의 유서 깊은 샴페인 하우스들도 로칠드 가문의 샹파뉴 상륙을 축하해주었다. 로칠드라는 이름이 가진 후광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로칠드 라는 이름에 걸맞는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만 사용한다. 특히 샴페인에 섬세함과 우아함을 부여하는 샤르도네 품종은 모두 그랑 크뤼 밭에서만 조달한다. 빈티지 샴페인 2종과 Non-Vintage 샴페인(Brut, Extra Brut, Blanc de Blancs, Rose) 4종 등 총 6종의 샴페인을 생산하며, 국내에는 수입사 나라셀라를 통해 Brut, Blanc de Blancs, Rose의 세 종류가 유통되고 있다. 국내에서 샴페인 바롱 드 로칠드는 매년 10%씩 매출이 성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지난 해에만 6천 병이 넘는 바롱 드 로칠드 샴페인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소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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