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의 무의식] 정의의 감각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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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이 살아납니다. 95 역무 녹대수 청병을 마시고 나니 단전이 살아납니다. 이 차는 작년에는 봉밀한 맛이 났습니다. 벌꿀같은 관능적이면서도 편안한 그런 달콤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맛이 성숙해서 이제는 제법 노숙해졌습니다. 차는 변화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생태계를 만들어 갑니다. 미생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0년의 미생물들에겐 포식자가 없습니다. 10년 후에는 그 미생물들을 잡아먹는 포식자 미생물이 보이차에 생깁니다. 그러면서 생태계는 더 풍성해 진다고 합니다. 차의 역능도 그때부터 좋아진다고 합니다. (홈쇼핑에서 사는 천일된 차와 비교가 안됩니다).

사람에게는 감각이 있습니다. 그 감각 중 하나가 정의의 감각입니다. 요즘 연구결과에서는 그 정의라는 게 본능이라고 하더군요. 즉 어떤 이성적 판단 이전에 본능적으로 있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본능이란 어떤 힘을 말하며, 또한 오랜 진화압을 견디어 살아남은 유용한 심리기제를 말합니다.

그 정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실험을 해 봤습니다. 유명한 최후통첩게임입니다. 위키에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인용해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은 게임 이론에 등장하는 게임 중 하나로, 실험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방법론이다.

기본적으로 최후통첩 게임에는 두 명의 참여자가 등장해 돈을 분배한다. 1번 참여자가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만약 2번 참여자가 '거절'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번 참여자가 '수용'을 선택하면 1번 참여자의 제안에 따라 돈이 분배된다.

돈을 받는 사람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 돈을 주는 사람도 돈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선택만 한다면,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제시하는 사람이 얼마를 주든 수락합니다. 즉 100만원에서 1만원을 주든, 2만원을 주든 수락하는 게 이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실험 결과 대다수가 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유입니다. 즉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비록 공짜지만) 공평하게 나눠가질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선택에서 이기적 합리성이 아니라 공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내는 실험입니다.

아이에게 케익을 공평하게 나눠갖게 하는 방법을 아시나요. 그건 한 아이가 자르고 다른 아이가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르는 아이도 공평하게 자르려고 합니다. 선택권은 자기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해 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누구나 공정이라는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첫째 반복된 게임상황입니다. 둘째 문화압력입니다. 즉 한번만 하는 게임이라면 그 사람이 손해를 보든 말든 자기만 이익을 보면 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게임 속에서는, 이런 관계라고 하죠, 상대방을 고려 안 할 수 없습니다. 단기간에 자신만 이익을 보면 나중엔 보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문화를 통한 압력입니다. 정의라는 게 제도화할 수 있으면 좋지만 거기엔 비용이 많이 듭니다. 타율적이어서 지키기도 힘듭니다. 가장 좋은 것은 소속된 사람들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기우뚱한 균형을 이룰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최후통첩게임에서 봤듯이 사람에게는 정의의 본능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많아도 이 생태계에서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감각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수억의 진화 선택압을 통해 단련된 감각이니깐요.

한가지 우려는, 진화의 선택압을 견디며 남겨진 또 다른 심리기제입니다. 그 기제는 희생양을 좋아합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누군가 당장 책임을 지고 희생하길 좋아합니다. 주술적 사고입니다. 시스템과 사람을 분리하지 못하는 심리기제입니다. 예를 들어 공동체의 나쁜 일이 있으면 가장 힘센 사람이 희생합니다. 아니면 가장 약한 사람이 희생하게 됩니다. 그런 심리기제의 힘은 다른 식으로 해소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의 힘을 빼면 됩니다. 그럼 발현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에로스가 타나토스를 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파울 클레의 Flower Myth를 봅니다. 여성의 몸을 상징하는 대지에 꽃도, 나무도, 새도, 그리고 해와 달도 뜹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타나토스가 죽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 활동하는 데미테론 여신이 농경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은 죽음의 신 하데스의 아네 페르세포네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 그녀의 걸음 걸음에 따라 꽃이 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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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트릭스에서 페르세포네를 연기한 모니카 벨루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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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본능이었군요. 제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전 본래 인간은 선하지 않단 생각을 갖고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닌 줄 알았는데.

희생양이 되는 것에 대한 지나친 경계감도 제 안에 있었군요. 지금 알았습니다. 그 바람에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었을 때 안도하며 스리슬쩍 못 본 체 넘어갑니다. 심지어 목청을 더 높히기도 합니다.

네, 저도 인간이란 게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자르고 선택하게 한다" 이보다 더 공정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대부분은 어떻게 잘랐는지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이긴 하겠지만요..

네 어떻게 자르는지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것인데, 이경우 최후통첩게임에서 보듯, 거절이라는 처벌이 있어야 합니다. 처벌이 없으면 공정이 유지되기 힘듧니다. 다운보팅, 평판하락 등이 그 장치겠지요.

공감합니다.
정의는 인간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인간만이 아닌 다른 동물들 역시도 불공정한 상황에 처했을때 분노를 표출한다고 하더라구요.

네~ 그래서 정의에 대해 이상적으로 매몰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접근하되, 지혜롭게 본능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우리 사회의 주제가 바로 공정함인듯 합니다.

최순실에 분노한 촛불들의 마음도 바로 그마음이죠
남북동계올림픽 하키팀도...

지난주 시사인 주제가 공정함이었죠.

  ·  last year (edited)

^^ 그렇지 않아도 오전 중에 그 기사 보고 다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스팀잇도 그 논의가 한창이네요.

우리 모두 감각적으로 정의를 구현할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요?

벌꿀같은 관능적이면서도 편안한 그런 달콤함

이런 차 저한테 어울릴것 같은데요 ㅋㅋㅋㅋ

ㅎㅎㅎ 감각적 판단 + 전략적 판단이 섞이는 게 좋아보입니다. 그래서 사실 힘든 부분이 있네요. ^^ 그러나 문화의 측면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선, 감각적 정의를 찾을 수 있도록 플레임 옵션 설계를 하는 게 좋아 보여요.

ㅎㅎ 관능적인 차, 97 난창강이 어울릴 거 같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보이차 마신 다음 홍차, 그리고 다음 보이차로 마무리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덕분에 작가 한 분 배워갑니다. 글도 공감하지만, 빨간색의 강렬한 인상이 크게 남네요. 스위스에 여행갈 기회가 생긴다면 미술관을 꼭 포함시켜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이 빨간색이 좋죠. 빨간색이면 강렬하기 쉽상인데 어떤 편안함이 있어요. 토중 화라고나 할까. (덕분에 다음 글 주제가 생각났어요).

  ·  last year (edited)

으이구. 가슴밖에 안보이네요. ^^

증말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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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 굳이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각적으로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직감적으로 먼저 느껴지고 그 이후에 이해관계와 합리성을 따져보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도 스팀잇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싶네요

네~ 사실 윤리에 있어서 직관적 윤리와 메타적 윤리의 부딪힘이 있습니다. 메타의 입장에서 보면 직관이 부족주의에 휩싸이기 쉽다는 것이고, 직관의 입장에서 보면 메타가 내용이 없다는 것이겠죠.

전 아직은 직관의 윤리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실험경제학에서 공공재게임의 사례만 봐도 반복적이고 직관적인 보상과 처벌은 협력을 증대시키거든요. 물론 문화에 따라 다른 경향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 그리고 스팀잇의 상황이라면 직관의 윤리에 무게를 둡니다.